[창간 35주년] “현금 살포만으로 안 돼”… 세계 각국의 저출산 대책 사례 살펴보니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5.24 06:00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한국의 ‘세계 꼴찌’ 출산율

저출산 문제는 세계적 현상…WSJ “지난해 처음으로 2.1명 하회”

세계 각국의 저출산 대책은?…성공·실패 사례 주목

유아용품 한자리에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해외 코베 베이비페어에서 방문객들이 유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연합)

“한국이 홍콩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붕괴를 겪고 있다"




다자녀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과거 2022년 5월 25일 당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 이같이 경고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해외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CNN 등 주요 외신들은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0.72명으로 '세계 꼴찌'라고 소개하고 있고 미 뉴욕타임스(NYT)의 로스 다우서트 칼럼니스트는 지난해 12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 시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이달 초 '미국판 다보스 포럼'이라고 불리는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한국이 최악의 저출산 국가로 언급됐다. 머스크는 밀컨 연구소 회장인 마이클 밀컨과의 대담에서 “항상 나를 밤잠 못 이루게 하는 건 문명의 위험이고, 출산율이 계속 급락하는 것은 문명사적 위험"이라며 “출산율이 감소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것은 잠재적으로 쾅(bang) 하고 죽는 문명이 아니라 성인 기저귀를 차고 신음하다가 죽는 문명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이에 밀컨 회장은 “한국 같은 나라들이 있다. 한때 출산율이 6명이었던 나라가 지금은 0.75명이 됐다"고 했고 머스크는 이에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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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마이클 밀컨과 대담하는 모습(사진=로이터/연합)

문제는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가 갈수록 심각하다는 점에 있다. 정부는 올해 합계출산율을 0.68명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도 안되는 곳은 한국뿐이다. 합계 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저출산 대응에 예산 200조~300조원을 쏟아붇는 등 열심히 노력했지만 출산율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 선진국도, 개발도상국도 직면한 저출산


저출산은 비록 우리나라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출산율이 2.1명대로 떨어져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체 출산율을 하회한 것으로 예측됐다. 대체 출산율은 현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2.1 미만일 경우 저출산으로 분류된다.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았던 개발도상국에서도 감소 추이를 보이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이집트는 작년 출생아가 전년보다 17% 감소했고 케냐는 재작년에 18%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유엔은 지난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이 된 인도의 올해 합계 출산율이 1.98명으로 처음으로 2명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이미 1970년에 출산율이 대체 수준 이하로 떨어진 데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더 낮아졌다. 세계 양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우 지난해 출생아가 각각 359만명, 900만명으로 유엔 예측치보다 4%, 16% 적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1.62명을 기록, 1930년대 첫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요 선진국들의 인구 위기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15년 연속 출생아 수가 하락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경우 합계 출산율이 2022년 1.24명에서 지난해 1.20명으로 하락했다. 이탈리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 다음으로 출산율이 두 번째로 낮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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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사진=AFP/연합)

◇ 가족중심 정책·파격적 대책…반등 성공한 프랑스·독일·헝가리


이처럼 전 세계에서 이례적인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부 국가에선 출산율 반등이 성공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1993년 합계 출산율 1.66명으로 최저점을 기록했다가 2010년 2.02명까지 끌어올렸고 2017년부터는 1.8명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러한 배경엔 프랭스의 정책이 가족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지원예산은 2019년 기준 3.4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프랑스가 제공하는 수당은 총 9가지로 ▲영유아보육(PAJE, 출생, 입양, 기본, 육아분담, 보육 유형 자유선택 보조수당) 수당 ▲부양자녀 2인 이상인 가족 지원 수당 ▲자녀 3인 이상 가족에 대한 보충 수당 ▲장애아동 교육수당 ▲취학 아동에 대한 신학기 수당 ▲자녀 간병 부모에 대한 일일수당 ▲한부모 가족지원 수당 ▲아동 사망 시 지급하는 수당 ▲주택 수당 등이 있다.


아울러 3자녀 이상을 둔 부모에게 지급하는 '대가족 카드'는 자녀 수에 따라 30~75%의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국내의 '다둥이 행복카드'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할인폭과 사용처가 훨씬 넓다. 또 3자녀 이상일 경우 연금수령액이 10% 늘어난다.


독일도 출산율이 반등한 국가로 꼽힌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독일의 합계 출산율은 1994년 1.24명에 바닥을 찍은 후 2000년대 1.3명대를 이어오다 2016년엔 무려 1.6명까지 상승했다. 그 이후인 2022년에도 1.4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로 출산율이 하락하자 독일 정부는 일·가정 양립 정책에 중점을 뒀다. 학생이 오후 4시까지 학교에 머무를 수 있는 전일제 학교를 발전시켜 이 비중이 2002년 16.3%에서 2020년 71.5%로 대폭 확대됐다. 전일제 학교 확장을 위해 독일 정부는 2030년 이후 모든 초등학교를 전일제로 만들 계획이다. 또 자녀 수당은 가구 소득과 관계 없이 모든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매월 현금을 지급한다. 성인이 되더라도 취업을 안 할 경우 25세까지 자녀 수당이 지급된다. 우리나라는 만 8세까지만 지원한다.


파격적인 정책을 통해 출산율이 반등한 사례도 있다. GDP의 5%를 출산 장려 정책에 사용하는 헝가리의 경우 네 자녀 이상 출산하는 여성에게 소득세를 평생 면제하고 3자녀 이상 출산 시 3만6000달러(약 4880만원)에 이르는 대출액이 전액 탕감된다. 헝가리 정부는 또 자녀가 있는 가구가 생에 처음으로 주택을 구매할 때 3만5000유로(약 5150만원)를 보조금 형태로 지원한다. 그 결과 헝가리는 2011년 1.23명이던 합계 출산율을 2021년 1.61명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다음해인 2022년에도 1.56명대로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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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유아들(사진=AFP/연합)

◇ “문제는 시간", “현금 살포만으로 안돼"…다른 나라들은 왜 저출산 못잡나


출산율이 반등했다가 다시 하락 전환한 사례도 주목받는다. 이웃나라인 일본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합계 출산율이 1.5명대로 추락하자 일본 정부는 육아 휴직, 수당 지급 등을 비롯한 저출산 대책을 시작했다. 일본 출산율은 2005년 역대 최저치인 1.26명까지 떨어졌지만 이듬해부터 상승세로 전환해 2015년에는 1.45명까지 회복했다. 그러나 2016년부터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더니 2022년에는 1.26명으로 되돌아왔다.


이에 일본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저출산 대책을 담은 '어린이·육아 지원법' 개정안을 올해 초 승인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아동수당의 소득 한도가 사라지고 지급 대상 또한 18세까지 확대한다. 또 부모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급여의 100%를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세 자녀 이상 가구에는 대학비가 면제된다. 그러나 이노구치 쿠니코 참의원은 가정이 아이를 안갖는 이유는 돈보다 시간이라며 주4일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복지의 천국'으로 알려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우 출산율이 2010년부터 하락해 2020년엔 각각 1.67명, 1.48명, 1.66명을 기록했지만 다음해인 2021년엔 1.72명, 1.55명, 1.67명으로 일제히 반등했다.


그러나 2022년엔 각각 1.55명, 1.41명, 1.52명으로 다시 고꾸라졌고 작년인 2023년에는 1.50명, 1.4명, 1.45명으로 더 떨어졌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의 타일러 코웬 칼럼니스트는 “출산 지원금의 규모가 작을 경우 대부분의 결과는 고무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며 “노르딕 국가들은 다양한 아동 복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부모에게도 혜택이 많아 세계에서 후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출산율은 인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금 살포'만으로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기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싱가포르의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0.97명으로 한국과 마찬가지로 1명선이 붕괴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 두 자녀까지 1만4000 싱가포르 달러(약 1400만원), 셋째부턴 아이를 출산할 때마다 1만6000싱가포르 달러(약 1600만원)를 지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역국 경제분석기관 EIU의 웬 웨이 탠 애널리스트는 “더 많은 부부들이 아이를 갖도록 장려하기 위한 정부 정책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돈을 뿌리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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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지난 2월 5일 서울 중구 부영빌딩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다둥이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블룸버그, 韓 '1억원 지급' 조명…파격적 대책 필요성 시사


한편, 블룸버그의 코웬 칼럼니스트는 '7만 달러(약 9500만원)의 신생아 보너스가 한국의 출산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 정부가 과격한 저출산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코웬 칼럼니스트는 정부가 출산 가정에게 파격적 현금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 발표를 언급한 것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신생아 1명당 1억원을 현금으로 주는 방안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63%가 '출산의 동기 부여가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한국의 (1억원) 보조금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헝가리의 출산 정책과 가장 가깝다"며 “헝가리 출산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헝가리의 출산 장려책은 칭찬과 함께 면밀한 검토 대상"이라며 “인구 감소의 흐름을 반전시키지 못하더라도 이를 추진할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싱가포르 정부가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짚었다. 이어 파격적인 현금 지급으로 다자녀 가정이 많아지면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시사했다.


코웬 칼럼니스트는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서 이런 사회적 실험이 부족하다"며 “인류는 소멸을 막기 위해 뭐든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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