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정보’ 얼룩진 인터넷 댓글···“22대 국회서 해결책 마련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5.23 12:59

개인·기업 겨냥 악의적 댓글 사회문제 대두···“여론조작의 장 전락”

21대 국회 발의 법안 자동 폐기 수순

인터넷 댓글 창

▲자료사진. 인터넷 댓글 창 이미지.

개원을 앞둔 22대 국회에서 '인터넷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 강화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네티즌들의 실시간 소통과 온라인 공론의 장을 자임했던 온라인 댓글창들이 개인 또는 기업을 겨냥한 악의적 허위 정보와 편중된 여론조작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다.


◇ 일반인·유명인 가리지 않는 악성 댓글···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23일 정재계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 3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21대 국회에서도 악성 댓글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해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오는 29일 자동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개인에 대한 인터넷 댓글 속 악성 허위 및 미확인 정보는 신빙성이 없더라도 관심을 끌만한 자극적 내용들이기에 순식간에 퍼져나간다는 게 이용자들의 중론이다. 허위 정보를 그대로 수용한 다른 네티즌들의 댓글이 댓글 창을 뒤덮으며 어느새 루머가 팩트로 둔갑하기도 한다.




무분별하게 퍼지는 자극적 허위 정보는 군중 심리를 자극해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특정인에 대한 집단 괴롭힘을 뜻하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이른바 '좌표 찍기'로 이어지기 쉽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는 우울증을 앓거나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지난 3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김포시청 공무원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야간에 실시된 긴급 도로공사와 관련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차량 정체가 극심하다'며 담당 공무원 A씨의 신상과 개인정보가 올라왔다.




A씨는 당일 자정 이후까지 현장을 지켰지만 댓글창에는 '공사 승인하고 집에서 쉬고 계신 분이랍니다', '집에서 쉬고 있을 이 사람 멱살을 잡고 싶다' 등 허위 사실이 담긴 악성 댓글이 다수 달렸다. 지속되는 악성 댓글과 민원 등 비난에 괴로워하던 A씨는 닷새 뒤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 등 유명인을 겨냥한 악의적 허위 댓글은 더욱 심각하다. 특정 이슈가 발생하면 재빨리 콘텐츠를 만들어 조회 수로 돈벌이하는 '사이버 렉카'들이 이 같은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배구선수는 자신의 SNS에 “저를 괴롭혀온 악플은 이제 그만해 달라. 버티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12월 이선균 배우 사망 당시에도 사건과 관계없는 사생활을 충분한 취재나 확인 없이 경쟁적으로 폭로한 사이버 렉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지난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사이버 렉카가 사회적 문제라는 점에 공감하는 비율은 92%에 달했다. 사이버렉카 콘텐츠로 인한 유명인의 권리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94.3%)가 가장 많이 꼽혔다. '피해자 구제 제도 강화'(93.4%), '플랫폼 자율규제 강화'(88.2%) 등이 뒤를 이었다.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은 악성 허위 정보 또는 미확인 정보가 담긴 악성 댓글의 여과 없는 확산으로 자칫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최근 법원은 지난 2017년 경쟁업체에 대한 허위 비방 댓글을 조직적으로 작성해 손해를 끼친 한 유아매트 업체 B사 대표에게 이례적으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경쟁사 제품의 친환경인증이 취소되자 불법적으로 구매한 수백개의 아이디를 활용해 맘카페 등에서 소비자인 척후기 및 댓글을 조작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친환경 인증 취소에도 경쟁사 매트의 인체위해성은 없다고 밝혔지만, B사 대표 등은 경쟁사 매트가 '독극물 매트'라거나 경쟁사 매트를 없애니 아이의 아토피가 없어졌다는 등 불안감을 조성하는 거짓 후기와 댓글을 다수 게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업계 2위이던 B사는 1위로 올라서며 현재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경쟁사는 매출이 90% 이상 급감을 비롯해 이듬해 적자 전환 및 공장 매각 등 존폐 위기에 설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7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피해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악성 허위 댓글로 인한 피해는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16년 A사는 현대자동차가 자신의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 측은 기술 탈취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사법부는 1심과 항소심·상고심에서 모두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기술 탈취 등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는 소송이 진행된 기간 동안 '협력업체는 안중에 없느냐' 등 대기업을 향한 근거 없는비방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기술 탈취 의혹은 벗었지만, 악성 댓글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작성자 중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허위 사실임을 입증한 뒤에도 악성 댓글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피해 회복도 쉽지 않다"며 “저질 제품의 홍보 댓글을 돈을 받고 작성하는 전문대행사가 등장하는 등 온라인 댓글창은 이미 편중된 여론조작의 장"이라고 지적했다.


◇ 국민 10명 중 8명 '악성 댓글 규제' 찬성…“22대 국회 신속히 움직여야"


현행법상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등으로 업무를 방해했다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악성 댓글에 악의적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는 경우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도 가능하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악성 댓글 규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 및 처벌 강화를 통해 무분별한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은 지배적이라는 의미다.


지난 5년간 21대 국회에서 악의적 허위 사실 또는 미확인 정보를 포함한 게시글과 댓글에 대한 규제 및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10건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 만료에 따른 자동 폐기를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22대 국회 개원 후 악성 댓글에 대한 실효성 있는 민·형사적 규제 강화에 조속히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악성 댓글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 효과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규제 방안이라는 평가가 다수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일찍이 형성됐지만 표현의 자유 등에 가로막혀 번번이 법 개정이 좌초됐다"며 “조속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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