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 '큰 손' 엔비디아와 AMD가 나란히 새 인공지능(AI) 칩을 공개하면서 이른바 '대만 바람(風)'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에 따라 칩에 채택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면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도 더욱 경쟁적 환경에 놓이게 됐다.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아시아 최대 규모 정보기술(IT) 전시회인 '컴퓨텍스 2024'는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나흘간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특히 올해 컴퓨텍스 화두는 대만풍이 거센 제2의 산업혁명, 'AI'다.
라이칭더 대만 신임 총통도 개막식에 맞춰 전시장을 찾아 “올해 컴퓨텍스는 글로벌 기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슈퍼스타들이 다 모였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만을 'AI 스마트 섬'으로 건설하기 위해 대만 정부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올해 행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엔비디아 vs 반(反) 엔비디아'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AI 칩 부문에서 엔비디아 위상이 최근 들어 압도적이라는 방증으로 보인다.
이는 주식시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6월 처음 시가총액(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한 이후 불과 10개월 만인 지난 2월 2조 달러를 넘어섰다.
시총 2조 달러가 넘는 기업 가운데 최단 기간이었다.
엔비디아는 이번 컴퓨텍스에서도 6세대 HBM인 HBM4를 처음으로 채택한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Rubin)을 처음 공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컴퓨텍스 기조연설에서 GPU 기술 로드맵을 소개하며 루빈을 2026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루빈에 HBM4를 8개, 이어 2027년 출시할 루빈 울트라에 HBM4 12개를 탑재할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3월 새로운 GPU 플랫폼인 블랙웰을 공개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그다음 세대 제품인 루빈을 선보였다.
엔비디아 아성에 도전하는 AMD도 이번 컴퓨텍스에서 AI 가속기 개발 계획을 소개했다.
기조연설에서 리사 수 AMD CEO는 새로운 AI 가속기 'MI325X'를 올해 4분기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MI325X는 업계 최대인 288GB(기가바이트) 용량에 초고속 HBM3E 메모리를 탑재한 제품이다.
리사 수 CEO는 “최근 AI 도입의 가속화로 AMD의 고성능 컴퓨팅 플랫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AMD 시장 경쟁력을 부각했다.
두 기업 간 경쟁에 고성능 차세대 HBM 수요에 대한 기대 역시 부상하면서 국내 관련 기업들도 경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칩 절대 강자 엔비디아와 연합 전선을 구축해 HBM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추격자인 AMD에는 삼성전자가 손을 잡고 추격진을 짜는 모양새다.
SK하이닉스는 10년 전부터 HBM에 적극적으로 '베팅'한 결과 D램 1위 삼성전자를 제치고 수요가 폭증하는 HBM 시장 주도권을 잡았다.
엔비디아에 4세대 HBM인 HBM3를 사실상 독점 공급해온 SK하이닉스는 지금도 엔비디아에 8단 HBM3E를 유일하게 공급하는 업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를 목표로 HBM3E 12단 제품의 양산을 준비 중이며, 당초 2026년 공급 예정이던 HBM4 12단 제품을 내년으로 앞당겨 양산할 계획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생산 측면에서 HBM은 올해 이미 '솔드아웃'(완판)이고, 내년 역시 대부분 솔드아웃(완판)됐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HBM에서는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는 AMD에 HBM3를 공급하고 있다. AMD 새 가속기 MI325X에도 삼성전자 12단 HBM3E가 탑재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빼앗긴 삼성전자는 HBM3E 등 차세대 HBM 시장 선점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4월 HBM3E 8단 제품 초기 양산을 시작한 데 이어 2분기 이내에 12단 제품을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납품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젠슨 황 CEO가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의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실물 전시된 HBM3E 12단 제품에 '젠슨 승인'(JENSEN APPROVED)이라고 적어 기대감을 키웠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기 위한 테스트를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는 로이터통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황 CEO는 이날 삼성전자 HBM이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며 '테스트 실패설'을 직접 부인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제공한 HBM 반도체를 검사하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아직 어떤 인증 테스트에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삼성 HBM 제품은 더 많은 엔지니어링 작업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