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자본잠식’ 석유공사, 포항유전 단독 탐사 가능할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6.11 11:22

자원개발 전문가들 “리스크 쉐어 차원에서 외국 기업들과 컨소시엄 고려해야”

석유공사 완전자본잠식 상태, 에너지특별회계 및 석유기금 등 추가 편성해야

올해 개발 예산 최대 1000억원...5000억 이상 필요하지만 여야 대치로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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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석유 시추를 두고 이를 담당하고 있는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의 자본잠식 상태, 예산 부족 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자원개발 전문가들은 석유공사의 재무상태를 고려해 해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11일 신현돈 인하대 자원공학과 교수는 “시추 성공 확률이 크면 컨소시엄보다 단독으로 하는게 맞다. 컨소시엄을 하면 리스크도 공유하지만 당연히 성공했을 때의 이익도 나누게 된다"며 “자금조달 가능성과 리스크를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 시추선도 미리 계약을 해야하는 등 시추 전 준비 단계에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 또한 외국 업체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광구 재조정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석유공사가 단독으로 진행하려면 국회에서 내년도 산업부의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 정치 이슈화가 될 수록 석유공사의 자금조달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어 우려된다"며 “1조~2조원에 달하는 석유기금을 활용하려해도 에너지 특별회계로 묶여있어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주 석유공사는 물리탐사 용역을 맡긴 액트지오(ACT-GEO)로부터 실제 석유 매장 여부 확인을 위해서는 시추를 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을 받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탐사 시추비용이 한 번에 1000억원인데 석유공사는 정작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또한 정부의 올해 석유공사에 배정된 시추관련 예산은 700억원 정도이며 정부가 융자를 해줄 수 있는 금액도 최대 4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한 번 시추할 예산밖에 없는 상황이다. 해외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경제성이 확보돼야 한다. 리스크가 큰 만큼 광구 재조정 등을 통해 리스크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석유공사의 단독 탐사 가능성이 낮은 이유는 자본잠식에 빠진 재무 상태 때문이다. 실제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보면 지난해 석유공사의 자산총계는 18조2294억원, 부채총계는 19조5781억원으로 1조3486억원 자본잠식 상태이다.




매년 내야 하는 이자(5000억원)와 법인세(4000억원)를 합치면 연간 금융 부담이 9000억원에 이른다. 자구 노력만으로는 빚을 갚을 길이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석유공사를 재무위험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했고, 석유공사는 공기업 평가에서도 늘 좋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투자 부적격'에 해당할 만큼 재무구조가 나빠 내려진 성적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6년까지 동해 심해에 총 다섯 개의 시추공을 뚫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단순 계산해도 총 5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하다. 최근 2년 동안은 석유공사가 흑자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자본잠식 상태임을 고려하면 막대한 비용이다.


해외 메이저 회사들의 투자를 받거나 공동 개발(컨소시엄) 형태도 거론되지만 호주 우드사이드가 철수한 것과 석유공사의 재무상태로 인해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공사가 자본잠식 상태이니 사실상 컨소시엄을 맺은 해외 기업이 당장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성공률도 불확실하고 향후 개발에 따른 이익 분배 문제도 있어 참여할 기업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최근 4년간 탐사·시추 성공률이 '0%'인데다 신규 탐사가 10년째 없었으며 해외 광구는 잇따라 매각 수순을 밟거나 시추를 중단해왔다.


석유공사법 1조에 명시된 석유공사 설립 취지는 '석유 자원 개발'로 '에너지 수급 안정을 도모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부채를 줄인다며 신규 투자를 줄여왔고 해외 자산도 매각했다. 대신 '탄소중립' 추세에 발맞춰 국내외 기업들과 손잡고 수소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또한 정부는 수십년째 적자 상태였던 석유공사에 매년 예산 투입을 줄여왔다. 2010년 1조2556억원에 달했던 정부 출자액은 이후 매년 줄어 한 해 수백억원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2013년 이후 신규 탐사 사업은 지지부진하고, 유전 개발 성공사례도 전무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공사는 그동안 자원개발을 안 한 게 아니라 예산이 없어 못했다"며 “경영 악화가 자산 매각과 투자 감소로 이어지면서 생산량이 줄고 다시 경영 악화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굳어져 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회와 협의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거대 야당의 협조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먼저 발표하는 바람에 정치이슈가 돼버렸다"며 “여전히 특검, 거부권, 국회 원구성 등으로 여야가 극한대치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이 협조해줄리가 없다. 올해는 추가예산 편성은 물론 내년도 예산 반영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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