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산업통상자원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일색이다. 물론 원자력을 늘렸다는 생색내기도 포함되어 있다. 생색내기라고 폄하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재생에너지를 97 기가와트(GW) 늘리고 신규원전은 4.9 GW를 늘린다. 1/20 수준이다. 또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신규원전 건설이 아니라 계속운전을 통해서 가동원전 기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전부품 생태계가 살아나기 어렵다.
그러려고 산업부는 생태계 살리기에 여러 가지 지원을 했던 모양이다. 신규원전 건설을 하면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살아날 것인데 말이다. 2038년 전력수요를 적게 예측함으로써 원전 비중이 30%를 초과하도록 통계 수치를 만들어낸 느낌도 든다. 앞으로 탄소중립을 한다면 화력연료를 사용하던 것이 전력수요로 바뀔 것이다. 또 수소나 암모니아를 생산하는데에도 전기가 필요할 것이다.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 앞으로 전력수요가 폭증할 일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전력수요예측은 지난 전기본의 예측방식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이런 전기본의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 한전의 적자는 해결될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라는 값비싼 전원을 그렇게 늘려서는 답이 없다. 연료비 때문에 적자라는 것은 핑계다. 세계정세는 언제나 변화하고 연료비가 올라갈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 가격을 유지하려고 만드는 것이 에너지정책인데 에너지정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료비와 전기요금이 연동된다면 그건 정책을 잘못 수립한 것이다.
둘째, 한전의 적자는 전력망에 대한 투자를 못하게 할 것이다. 지금도 발전소가 있어도 전력망이 없어서 세워두는 발전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의 전력망 투자는 적극적이지 않다. 돈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전력망은 더 많은 재원을 요구한다. 전력망을 연결하는 것 뿐만 아니라 들쭉날쭉 생산되는 전력을 안정화하는데도 별도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
셋째 가장 큰 문제는 전력수급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수급계획은 이른바 수요를 공급하는 계획이다. 그런데 공급계획이 너무나 부실하다. 지난 전기본에서도 재생에너지는 늘릴 용량만 잡아놨지 사업자나 부지가 결정되지 않았다. 다른 발전소는 '영흥1,2호기' 이런 식으로 사업자와 부지가 결정되어야 전기본상의 공급원이 된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신재생 250메가와트' 이런 식으로 용량만 잡아놓은 것이다.
산업부가 편의대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전기본은 '비구속적 행정계획'이다. 즉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발전소도 지어도 되고 포함된 발전소도 짓지 않아도 된다. 물론 '실행력을 강화한다'는 앞의 말과는 상충되는 주장도 한다. 아무튼 건설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사업자에게는 임의대로 하면 되겠지만 전력수급에에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사업 주체와 부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표만 제시된 것을 전기본의 공급계획이라고 한다면 불안한 공급계획이다. 언제든 지켜지지 않을 수 있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작을 때는 이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젠 문제가 될 것이다.
조만간 산업부는 전기절약운동을 애국적으로(!) 펼칠 것이다. 책임을 지는 대신 에너지 절약이니 뭐니 하면서 전력수급의 실패를 덮고 넘어가려고 할 것이다.
넷째, 전기본에서 펑크가 나면 LNG(액화천연가스)가 그 공백을 메우게 될 것이다. 급히 LNG발전소를 건설해서 펑크를 메우다보면 우리나라에는 전력요금이 비싼 발전소가 늘어난다. 산업부의 낙하산 자리도 덤으로 늘어날 것이다.
다섯째, 산업부는 기막힌 행정적 스킬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전기본을 확정하기 전에 몇가지 절차가 남아있다. 제8차 전기본의 경우에는 12월 27일 국회보고, 28일 공청회, 29일 오전에 전력정책심의회를 통과 시켰다. 제9차의 경우에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국회보고 26일 공청회 그리고 그 다음 근무일에 통과시켰다. 행정절차를 적법하게 거쳤지만 법의 취지는 모두 우회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산업부가 전에도 전기본 실무안을 공개한 적이 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 왜 실무안을 공개했을까? 소위 '간보기'를 하려는 것일 것이다. 국회보고, 공청회도 있는데 왜 간보기를 했어야 했나? 도모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꺼림직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