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정쟁에 길 잃은 ICT 정책…올 연말까지 ‘식물 방통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8.04 10:55

이진숙 방통위원장 취임 3일 만에 탄핵…최소 4개월 직무 정지

김태규 부위원장 1인 체제 운영…의결 불가능해 업무 공백 예상

단통법 폐지 등 주요 현안 산적…입법 추진 동력 상실 우려 높아

과방위 현장 조사에 국정감사도 치러야…정책 수립 ‘시계제로’

과방위1

▲지난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가운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자리가 비어 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건강상 문제를 이유로 불출석했다. 사진=이태민 기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직무가 취임 3일 만에 정지되면서 방통위가 다시 개점 휴업 상태에 처했다. 실무 공백이 발생함에 따라 정상적인 업무 추진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에 방송·통신·플랫폼 등 정보통신기술(ICT) 현안을 해결할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정치권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2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원장 직무는 즉시 정지됐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심판은 최소 4개월 가량 소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김태규 부위원장 직무대행 단독 체제로 운영된다. 문제는 현행법상 주요 안건 심의가 불가능해 사실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상임위원 정족수는 5명이며, 이중 최소 2명이 채워져야 안건을 처리할 수 있다. 사실상 '식물 기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방통위가 올해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이던 정책 수립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 △인공지능(AI) 서비스 이용자 보호법 △빅테크 인앱결제 금지법 △망 무임승차 방지법 제정이 포함돼 있다.


특히 인앱결제 금지법 제정은 8개월째 미뤄지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해 10월 빅테크의 인앱결제 강제 행위에 대해 구글·애플에 과징금 총 680억원을 부과하는 시정조치안을 발표했지만 최종 처분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과방위2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지난 2일 열린 제6차 전체회의에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 불법성에 관한 청문회 실시계획서 등 안건을 단독 의결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사진=이태민 기자

망 무임승차 방지법 역시 업계 숙원 중 하나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CP)는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해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게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선 빅테크 납부를 의무화함으로써 투자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연내 추진을 계획했던 단통법 폐지 역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이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난 3월 번호이동 전환지원금을 도입한 바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해 불법보조금 단속에 구멍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잖다.




AI 서비스 이용자 보호법의 경우 최근 진행된 민관협의회 1차 회의에서 거론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올 하반기 중 입법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안갯속에 빠졌다.


이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통합미디어법 제정 계획도 불투명해졌다. 해당 법안은 지상파·유료방송 등 기존 미디어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아우르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방송법과 인터넷TV(IPTV)법, 전기통신사업자법 등 미디어 관련 법제를 통합해 OTT를 제도권으로 포섭하고 기존 방송 규제는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통해 급변하는 미디어 업계에 정책적인 힘을 싣겠다는 복안이다.


이외에도 △공정위의 통신 3사 담합조사 대응 △불법 스팸문자 피해 대책 마련 △OTT 해외 진출 지원 △전환지원금 제도 개선 △콘텐츠 사용료 대가산정 제도 개선 등도 시급한 현안으로 꼽힌다. 그러나 1인 체제에 따른 업무 공백 속 야당의 현장 검증 및 국정감사도 예정돼 있어 사실상 주요 현안 논의는 불가능할 전망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업계와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란 관측이 높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탄핵이 무효화된다 해도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둘러싼 정쟁에 현안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며 “시청률 및 가입자 수 감소로 인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책 결정권을 쥔 방통위가 제 기능을 수행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태민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