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 조기상환청구, 1년 전보다 40%↑
채권자들, “주가 상승 가능성 희박” 평가
풋옵션 증가 시 유동성 압박 리스크 확대
코스닥 상장 기업의 전환사채(CB)를 매입했던 투자자들이 만기일 전에 사채를 조기 상환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국내 증시 대폭락에 상장사들의 주가가 급락하자 해당 기업들의 주가 상승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한 사채권자들이 원금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이달(1~12일) 들어 코스닥·코넥스 상장사 가운데 '전환사채(해외전환사채포함) 발행 후 만기 전 사채 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17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2곳)과 비교하면 40%(5곳) 증가했다.
전환사채는 기업의 중요한 자금조달 창구 중 하나다. 상장사들은 사업자금 조달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환사채를 발행한다. 전환사채는 발행 당시 채권 성격을 띠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주식 전환을 통해 주가 상승 시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전환사채(해외전환사채포함) 발행 후 만기 전 사채 취득'은 말 그대로 전환사채를 발행한 이후 아직 만기일이 끝나기 전에 회사가 사채권자로부터 사채를 돌려받았다는 의미다.
'만기 전 사채 취득'은 크게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과 매도청구권(콜옵션)로 나뉜다. 다시 말해 채권자가 전환사채에 포함된 풋옵션 조항을 활용해 만기 이전에 사채를 상환해달라고 요구했거나 반대로 회사가 콜옵션을 통해 채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사채권자가 풋옵션을 행사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해당 기업의 채권이 가치가 하락하거나 주가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면 채권자 입장에서 만기 이후 주식으로 전환했을 때 수익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주가가 하락하거나 더 이상 주가 상승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에는 더 이상 채권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풋옵션을 행사하는 것이다.
최근 만기 전 사채취득 공시가 늘어난 이유 역시 주가 하락에 있다. 지난 5일 코스닥 지수는 미국발 경기 침체 공포와 인공지능(AI) 거품론 확산 여파로 하루 만에 11.30% 하락했다. 지난 5일 하루에만 코스닥 상장종목 1742개 중 1348개의 종목이 하락 마감했다. 이후 지수는 소폭 반등세를 보였지만 대폭락 이전 수준으로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채권자들의 풋옵션 행사는 기업에게는 곧 유동성 악화로 이어진다. 풋옵션 요구에 따라 전환사채를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줄어들 수 있다. 채권을 추가로 재매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단기간 주가가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스스로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시장에서는 증시 불안 속에서 사채업자들의 풋옵션 행사가 늘어날 수 있고 이 경우 기업은 유동성 압박 리스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증시 폭락 이전인 지난 1일과 2일에는 풋옵션 행사에 따른 만기 전 사채 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2곳이었으나 지난 12일에는 △대호특수강 △코아시아씨엠 △썸에이지 △케스피온 등 4곳으로 늘어났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지난 1일 대비 각각 7.2%, 8.1%, 4.1%, 7.9%씩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