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13회 연속 금리 묶어…최장 기간 동결
“유동성 과잉 공급해 집값 상승 자극해선 안돼”
금통위원 4명 “향후 3개월 인하 가능성 열어둬야”
“앞으로 나올 지표 보며 인하 시기 결정”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2일 “물가 수준만 보면 기준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고 판단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면서도 “한은이 이자율을 급히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한 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기준금리는 이날까지 13회 연속 동결됐는데, 한은 설립 이래 가장 동결 기간이 길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안정화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금리 인하가 시작될 예정이라 시장에서는 한은도 기준금리를 인하할 시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단 한은은 수도권 중심의 집값 상승과 가계대출 확대 등을 이유로 들며 금리 인하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집값·가계부채 증가 위험 신호…지금 막아야 한다고 판단"
이 총재는 “금리 인하가 늦어지면 내수 회복이 지연돼 성장 모멘텀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외환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킬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증가의 위험 신호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금융안정 측면에서 지금 들어오는 신호를 막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최근 수도권 중심의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확대가 이날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금통위원들은 이날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 결정을 내렸는데, 이 총재를 제외한 6명 중 4명은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7월 금통위 때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금통위원이 2명이었는데 이보다 늘었다. 이들은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부의 부동산 관련 정책이 발표돼 시행될 것이라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채 거시경제와 금융안정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나머지 2명의 위원은 정부 대책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시차가 필요하고, 향후 3개월 내인 11월까지는 금융안정에 보다 유의하는 것이 안정적인 정책이라는 생각에 금리 유지 의견을 냈다고 이 총재는 설명했다.
금리 인하가 늦어지며 국내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선 이 총재는 고용과 인구가 줄어드는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란 의견도 밝혔다. 고용의 경우 고령층에서는 늘어나고 있지만 인구 감소에 따라 20~40대에서는 줄어들고 있는데, 소비는 20~40대에서 많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통한 소비 진작 효과는 제약적일 것이란 설명이다. 이 총재는 “향후 금리 인하에 따라 내수의 투자 수요 등은 짧은 시차를 두고 영향을 주겠지만 소비는 긍정적으로 작용은 하겠으나 시간은 좀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향후 3개월에는 11월도 포함…10월 금리인하 확신은 일러"
한은이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리며 한미간 금리차는 최대 2%포인트(p)로 유지됐다.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9월에 금리를 0.25%p 낮추면 한미간 금리 차이는 최대 1.25%p로 좁혀진다.
이날 정치권에서는 한은의 금리 동결 결정을 두고 “내수 측면에서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한은의 독립된 금리 결정에 곧바로 입을 여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이 총재는 “지금 상황이 어느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한은을 두고 다양한 평가를 하는 것은 지금 상황으로는 당연하다. 그런 의견을 취합해 듣고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결정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는 “물가상승률이 5% 이렇게 오를 때는 금리를 한 방향으로 조정하면서도 커뮤니케이션이 쉬웠다"면서도 “지금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합리화되거나 욕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면 시차를 두고 반응할 수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나 가계부채가 올라가는 금융안정 문제는 이 시점에 잡아두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 총재는 10월 금리 인하 전망에 대해서도 확신하기에는 이르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향후 3개월 전망에는 10월과 11월이 모두 포함된다"며 “앞으로 나올 지표를 보면서 판단을 해야 하는데 10월이 될 수도, 11월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은은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4%로 0.1%포인트(p) 하향 조정했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2.6%에서 2.5%로 낮춰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