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칼럼] 중동의 삼국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8.27 23:02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중동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곳이다. 유럽 끝자락에서 서남아시아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종교와 사상, 제도가 다른 여러 나라가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이웃을 단지 경쟁자가 아니라 용서할 수 없는 원수로 여기고 나라의 명운을 건 투쟁을 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존재는 중동을 더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지역으로 만들었다. 대다수의 중동 지역 국가는 이스라엘과 공존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하마스 전쟁은 중동 지역에 파멸적인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되었다.




일반인들은 중동 문제가 이스라엘과 반이스라엘 세력 사이에서의 계속되는 반목과 투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이 속한 아랍 세계, 그리고 아랍 국가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 인종, 언어를 가진 이란 세력권 간의 3자 갈등이 원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아랍국가는 절대왕정과 강력한 독재 권력이 지배하는 수니파 이슬람의 거대 세력이다. 또한 아랍어를 국어나 공용어로 사용하는 아랍인이 살면서 서로 '형제 국가'라고 부르는 단일 문화권이다. 이번에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가 속한 팔레스타인도 아랍 형제 국가 중 하나며 22개 국가가 회원인 '아랍연맹'의 공식 구성원이다.


이란은 1979년에 혁명으로 이란이슬람공화국을 건국한 시야 이슬람 종주국이다. 고대부터 지역 패권자였던 페르시아 제국을 계승했고 고유 언어인 페르시아어를 사용한다. 이란은 레바논, 예멘, 이라크, 시리아 등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이슬람 혁명 세력을 지원하며 아랍국가와 갈등을 초래했다. 이란이 혁명을 수출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아랍국가는 오히려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등 이스라엘보다 이란을 견제하면서 중동의 정치가 더 꼬이게 되었다.



삼국지는 지금도 거의 모든 한국 젊은이를 열광하게 하는 인기 역사소설이다. 특히 남자들의 의리와 이상, 호연지기와 꿈을 향한 도전은 한국인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삼국지의 배경은 중국 한나라 멸망 이후 새로운 통일제국 건설을 위해 다양한 세력들이 투쟁하지만, 천하통일에 실패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세력권을 형성한 3개 국가가 안정적인 경쟁 구도를 구축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위 '발이 3개 달린 솥 이론'은 다리 하나만 없어져도 안정된 구도가 깨져 위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합집산을 통한 힘이 균형을 유지하는 게 평화를 도모하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중동도 마찬가지다. 보기에는 여러 국가가 서로 싸우는 것 같지만 현실은 이스라엘, 아랍 및 이란 등이 3개 큰 세력권을 구축해서 불안한 공존을 하고 있다. 비록 하마스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유대 보수 세력이 충돌하여 일촉즉발 상황이 계속되지만 이들 국가는 큰 판을 깨지는 않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지난 4월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격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피해 초래를 최소화하여 위기 확산을 통제하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였다. 이번에 하마스 지도자가 이란에서 암살당했기 때문에 이란이 이스라엘과 대규모 전면전을 벌인다는 것은 현재의 불안하지만, 안정적인 중동에서 삼국 구도를 깨는 것이다. 명분과 자존심에 타격을 입었지만 이란이 전면전이라는 선택을 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물론 각 세력권의 과격파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책동할 수 있지만, 만약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이는 예외적인 상황으로 봐야 한다. 현시점에서 전쟁은 명분을 위해 필요하지만, 패전 시 해당국 권력자들의 몰락과 이로 인한 중동 전체 지정학적 형상 변경은 전 세계적으로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비극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중동에서는 대규모 전면전은 막아야 하며, 이는 중동에서의 삼국 구도를 깨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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