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현대건설 주목···주력사 지분율 높고 총수 ‘실탄’ 역할
금감원·국민연금 등 기업 분할·합병 제동···“삼성·현대차그룹 영향 받을 듯”
재계 주요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면서 건설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이 그룹 체질 개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쪽으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 삼성물산 그룹 지주사···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합병 가능성 주목
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삼성물산이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5.01%), 삼성생명(19.34%), 삼성바이오로직스(43.06%) 등 주력사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는 삼성물산 지분 33% 가량을 들고 그룹 전체를 통솔한다.
문제는 이 회장이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 지분을 1.63%밖에 들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삼성생명(10.44%)을 통해 우회적으로 발휘하던 영향력도 국회 입법 리스크에 흔들릴 여지가 크다. 금산분리 이슈, 그룹 차원 지휘 본부를 만들기 힘들다는 점 등도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해야 할 이유로 꼽힌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역시 중장기적으로 그룹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다.
삼성그룹은 결국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체질 개선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삼바 등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주식을 일부 매각해 삼성생명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8.51%)을 사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럴 경우 국회에서 매번 입법이 추진되는 소위 '삼성생명법' 위험 부담을 덜 수 있다.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3%) 규정을 취득원가 대신 시장가로 바꾼다는 게 법안의 골자다.
삼성물산이 부문별 사업·투자회사를 모두 분할해 지주사를 세울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개선하고 현금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계열사 지분을 상당 수준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물산의 올해 상반기 기준 매출액은 21조8000억원이다. 이 중 건설 부문에서만 절반 가량인 10조49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10대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지닌데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을 정의선 회장이 효율적으로 증여받는 방법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순환출자 고리는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차다. 정 회장은 핵심 계열사 현대차 지분을 2.67%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현대차 최대주주(21.86%)인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0.33%로 더 낮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얼마나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따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윤곽 자체가 바뀔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 2017년에는 현대모비스 사업부를 인적 분할하고 A/S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해 '지배회사' 체제를 만드는 카드를 꺼냈지만 실패했다.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율(당시 29.99%, 특수관계인 포함)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정 회장에게 실탄을 제공할 수 있는 계열사는 보스턴다이내믹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토에버 등이다. 이 중 상장사인 현대글로비스(20%)는 분할·합병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오토에버(7.33%)는 상대적으로 금액이 적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 회장이 보유 중인 현대엔지니어링 지분(11.72%)에 눈길이 쏠리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비상장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을 현대건설과 합병해 정 회장이 한 번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예측이 일찍부터 나왔다. 최근 건설 업황이 부진해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 가치가 크게 낮아지긴 했지만 현대건설과 합병 비율을 잘 조절할 경우 정 회장에게는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상장 카드도 있다. 현대건설이 이미 현대엔지니어링 지분(38.62%)을 충분히 들고 있어서다.
◇ 두산·SK 지배구조 발목···삼성·현대차도 '예의주시'
삼성·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건설사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쉽게 움직이기는 힘든 상황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열사간 분할·합병 방식을 고민해야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사업구조 개편 차원에서 추진해 온 합병 계획안을 철회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지난달 29일 각각 긴급이사회를 소집하고 양사 간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을 해제하기로 결의했다.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든 뒤 두산밥캣을 상장 폐지하려 했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금융감독원이 사실상 두산그룹 행보에 제동을 건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감원은 두산그룹이 낸 분할합병·주식교환 증권신고서에 2차례나 정정을 요구했다.
국민연금기금은 지난달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에 반대표를 던졌다.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이유로 스튜어드십 코드 행보를 본격화했다는 점에 눈길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