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서 연이어 ‘침체 신호’···‘네옴시티’ 등 중동붐 기대도↓
PF 부실 등 기업별 기초체력도 천차만별···“정부 규제 등도 리스크”
국내 건설업계가 글로벌 자산 시장을 덮친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상승세로 접어들고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찾으며 업황 회복을 기대하는 시점에서 글로벌 경기 침체가 현실화될 경우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경기가 동력을 잃게 되면 건설업을 포함한 국내 경제도 수출감소, 환율급등, 원자재가격 상승, 소비심리 위축, 기업 이익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빠질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 자산 시장은 이미 미국에서 시작된 'R의 공포'에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미국 고용 지표를 두고 위기감이 고조된 데 따른 것이다. 비농업 고용이 전월에 비해 14만2000명 늘어나는 데 그쳐 시장 기대치(16만1000명)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채권 시장에서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해소되는 등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오는 17일(현지시간) 시작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금리 결정도 예측하기 힘들어진 상태다.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내리는 '빅컷'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미국 대선이 눈앞으로 다가와 기업들 입장에서는 각종 '정책 리스크'도 신경 써야 하는 시점이다.
중국도 흔들리고 있다. 경제 성장의 3분의 1을 부동산에 의존하고 있지만 시장 회복은 기대하기 힘든 형국이다. '헝다 사태'가 발생한 지 5년이 됐지만 관련 체질 개선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6월 기준 중국 내 미분양 아파트가 6000만채를 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지 경제매체 제일재경은 지난달 중국 상위 100대 부동산업체의 매출액이 2512억위안(약 47조원)으로 전월 대비 10% 하락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제2의 중동 붐' 기대감도 사라져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당초 '네옴 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해 눈길을 끌었다. 폭 200m, 높이 500m, 길이 170km의 '더 라인'을 세우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건설 계획을 밝혔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방한해 기업들에 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투자 유치에 실패해 해당 프로젝트는 축소 또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국내 경제 주체들이 긴장하고 있는 배경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원자재 가격 급등 여파로 힘든 시기를 보내다 이제 막 업황 회복 기미가 나타나고 있던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와 아파트 붕괴 사고 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건설 업종 고용보험 상시 가입자 수는 작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13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고금리 기조에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건설투자 및 관련 고용 부진이 큰 걸림돌이라고 짚었다.
올해 들어서는 각 사별 비용절감 작업에 돌입하고 부동산 시장이 회복하며 실적 반등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철근, 유연탄 등 건설 관련 원자재 가격도 안정화되고 있다. 정부는 원자재 가격 하락분이 제품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품목의 가격 하락을 유도하는 '공사비 안정화 방안'도 마련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62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성장했다. 같은 기간 현대건설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3982억원)을 기록했지만 매출액(17조1665억원)을 30% 이상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바닥을 찍고 업황 회복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R의 공포'를 만난 셈이다. 건설업은 경기 민감 업종인 탓에 자본시장이 경색되거나 수요가 위축되면 타격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부동산 시장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회복된 탓에 지방·중소 건설사들은 아직 온기를 느끼지도 못한 상태다. PF부실 노출도 등이 달라 재무 건전성 역시 천차만별이다.
업계는 우선 대출 규제 등을 통해 '집값 잡기'에 나선 정부 규제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서울 도심지에서는 아직 아파트 신고가 매매가 나오고 있지만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거래가가 조정 받는 상황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선별 수주를 이어온 대형사들은 향후 '알짜 입찰'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경기침체보다는 매우 완만한 둔화가 예상되고 이에 따라 유동성 공급(금리 인하)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가계 대출 증가와 연체율 등을 통제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는 (업황 회복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