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권한 강화 예고한 MBK·영풍
2대주주 거부권 노리는 최윤범 회장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당사자들이 임시 주주총회 일정을 확정하고 경영권 제도를 놓고 격돌한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은 집행임원제를 도입해 이사회 장악과 함께 현장 업무까지 함께 관리·감독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에 대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는 동시에 소수주주 다수결제도(MoM)을 제시해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의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향후 상대방이 경영권을 쥐게 되더라도 2대주주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고려아연은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임시 주주총회를 다음달에 개최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MBK·영풍 측이 임시 주주총회 개최 관련 법정 소송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일정을 확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MBK·영풍, 집행임원제 도입 예고…이사회 장악 동시에 현장 업무도 관리·감독
또 이번 이사회에서는 영풍·MBK가 요청한 신규 이사 선임 안건과 집행임원제도 도입 정관 개정 안건 등에 대해서도 검토한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MBK·영풍 측은 완전히 새로운 이사진 선임과 함께 집행임원제 도입을 임시 주주총회 안건으로 제시했다.
집행임원제는 이사회와 업무 집행 임원을 별도로 두는 제도다. 최고경영자(CEO), 재무집행임원(CFO), 기술집행임원(CTO) 등은 이사회에서 결정한 거시적인 안건들을 현장에 적용하는 역할에 가까워진다.
이 경우 이사회에서 의사 결정과 감독 기능, 집행임원 선임까지 아우르기 때문에 이사회의 힘이 강해진다. 이사회만 장악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현장 업무까지 어느정도 운영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다만 고려아연 내부에서는 집행임원제도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집행임원제를 적용하면 경영 효율성이 낮아지고 집행임원의 책임과 역할이 모호해진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환경에서는 아직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극소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글로벌 주요국 중에서도 집행임원제를 도입한 기업이 많지 않다. 해외에서 집행임원제를 도입한 대표적 기업으로는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 등을 꼽을 수 있는데, 도입 이후 이들의 실적이 우하향했다.
아울러 임시 주총이 열린다면 최 회장 측이 제시한 경영제도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측은 현재 이사회를 유지하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최 회장이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고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 중 선출해 맡기기로 했다.
◇최윤범 회장, 소수주주 다수결제도로 승부수…2대주주 입지 강화 포석
아울러 MoM 도입도 승부수로 던졌다. MoM은 비지배주주의 이익에 반할 수 있는 안건에 대해, 지배주주가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의결권을 제외하고 나머지 주주들의 의결권 과반수를 획득해야 하는 방식의 제도를 의미한다. 즉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 소수주주에게 일종의 반대권(veto)을 부여하는 것이다.
국내 상장기업에서는 아직 MoM이 도입된 사례가 없다. 이스라엘은 지난 2011년부터 상법에 MoM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제도화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익 편취 논란이 예상되는 안건에 한해 의결과정에서 지배주주가 참석하지 않는 방향의 관행이 정착돼 있다.
이에 대해 MBK·영풍 측은 최 회장이 2대주주의 입장에서 지배주주에 대한 실질적인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MBK·영풍은 입장문을 통해 “본인 또는 최씨 일가로 대변되는 2대주주가 실질적인 거부권을 행사해 최 회장 본인의 자리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이 내놓은 MoM 등은 반대편인 MBK·영풍 측의 동의가 없다면 통과하기 사실상 어렵다. 해당 경영제도는 정관변경이 선행돼야 하기에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66.66%)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즉 4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MBK·영풍이 반대한다면 MoM 등이 도입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임시 주총 표 대결을 앞두고 경영제도를 놓고 서로 견제와 수 싸움을 벌이는 상황"이라며 “임시 주총 일정이 확정되면 각자 기관투자자들에게 자신의 경영제도가 훨씬 합당하다며 선거전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