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탄탄해 보였던 미국 경제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1년 6개월 만에 다시 4%를 넘어 4.3%에 도달한 반면, 소비자신뢰지수는 전월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24년 미국 경제 성장률은 2.8%였으나, 올해는 2.0%로 둔화될 전망이며, 완전고용 상태로 평가받던 노동시장에서도 실업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은 아직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여부도 불확실하다. 여기에 국제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경제 불확실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환율시장에도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지난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한 직후에도 원화 환율이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였지만, 곧 급등하며 1,460원을 상회하고 있다. 지난 1월 중순 이후 약세를 보이던 미 달러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선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우리의 주 무역파트너인 미국의 성장둔화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부과 등이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어 원화는 그보다 더 가파른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경제 상황 역시 원화 약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내외금리차가 지속되면서 환율상승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내수와 수출 모두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결국 금리인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우리 경제가 그만큼 취약하며,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서라도 경기를 자극해야 하는 상황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에 일각에서는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성장둔화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거세질 경우, 미연준은 금리인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한국의 내외 금리 차는 지속되거나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며, 이는 국제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반면 일본은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며 미국과의 금리 차를 좁혀가고 있다. 이는 과거처럼 저렴한 엔화를 통해 공급되던 유동성이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오며, 한국으로 유입될 자금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자금 유출 가능성도 높아지는 상황을 초래한다.
급격한 투자자금의 유출이나 유입 중단은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으며, 우리처럼 시장 규모가 작은 국가에서는 환율 쏠림 현상이 발생해 급등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외환당국이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환경을 면밀히 주시하는 것이다. 환율이 급등할 조짐이 보이면, 시장개입을 통해 환율 변동성을 완화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시행해 안정을 도모한다. 하지만 환율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는 방식의 개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의 외환보유액 상당 부분이 장기채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현금성 자산의 비중이 낮아 환율이 급등할 경우 현금성 자산이 빠르게 고갈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장기채를 현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외환위기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결국 외환위기로 치닫게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러한 주장은 일부는 맞지만, 전적으로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 운용 방식을 통해 상당 부분을 수익성을 고려한 중장기 채권으로 보유하고 있음을 밝혀왔으며, 이는 이미 시장에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2009년 환율 급등 당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현금성 자산을 거의 소진했던 전례도 있다. 그러나 장기채권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