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美 헤리티지 재단 보고서 분석
“한국 경제자유 수준 전세계 17위에”
현대제철 노사간 ‘극한 대립’ 등 지적

▲현대제철이 직장폐쇄를 결정하면서 당진제철소 냉연공장 일부 라인이 멈춰서 있다.
경직된 노동규제와 노사 관계가 우리나라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관세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이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내부 결속부터 다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10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2025 경제자유지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가대상 184개국 중 종합순위 17위로 '거의 자유'(Mostly Free) 등급을 받았다.
한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 내에서 싱가포르(1위), 대만(4위), 호주(6위), 뉴질랜드(11위)의 뒤를 이었다. 해당 조사에서 스위스(2위), 아일랜드(3위) 등이 최상위권에 올랐지만 미국(26위), 일본(28위) 등은 경제력 대비 순위가 낮았다. 중국(151위)과 북한(176위)은 최하위권으로 평가됐다.
헤리티지 재단은 1995년부터 기업·개인 경제활동 자유 수준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국제노동기구(ILO) 등 자료를 분석해 작성한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경제자유지수' 한국 점수 변화. 한국은 최근 조사에서 평가대상국 184개국 중 17위에 올랐지만 '노동시장' 분야에서는 100위에 머물렀다.
재계에서 주목하는 점은 한국의 순위가 전년 대비 3계단 떨어졌다는 점이다. 종합 평가에서 74.0점을 기록했지만 노동시장(56.4점) 같은 주요 항목에서 '부자유(Mostly Unfree)' 등급을 받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노동시장 순위만 놓고 보면 한국은 전체 184개국 중 100위에 올랐다.
노동시장 항목은 근로시간, 채용, 해고 등 규제가 경직돼 있을수록 낮은 점수를 받는다. 지난 2005년 해당항목 신설 이후 한국은 지속해서 '부자유' 또는 '억압(Repressed)' 등급을 받고 있다.
'정치불안' 환경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개혁' 기치를 걸고 다양한 정책 추진을 약속했지만 현재는 사실상 멈춰섰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경영계와 노동계가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해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헤리티지 재단 역시 경제자유지수 관련 총평에서 “한국 경제가 경쟁력 있는 민간 부문에 힘입어 회복력을 보였으나 현재 정치적 혼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이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제22대 국회에서 최근 재발의된 것도 이 같은 상황과 그 궤를 같이한다.
산업계에서는 크고 작은 노사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노조와 성과급 지급액을 두고 갈등을 겪다 '창사 이래 첫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 회사 노조가 임금협상 과정에서 1인당 4500만원씩 성과급을 달라며 파업을 지속한 탓이다. 사측이 수백억원 규모 적자가 나더라도 2650만원씩 성과급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노조는 대화를 거부했다. 현대제철의 작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3144억원으로 전년(7983억원) 대비 60% 이상 빠졌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요 수출 기업 노사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수십년간 계속된 파업에 사측이 꺼낼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어진 상태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를 무작정 들어줄 수 없어 그동안 계속 업무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해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 주요 생산시설 중 상당수는 '고비용 저효율' 늪에 빠진 상태다.
배정연 경총 국제협력팀장은 “각국은 자국 기업 경쟁력 강화와 투자유치를 위해 앞다퉈 규제개선과 인센티브 지원에 나서고 있다"며 “한국 경제의 만성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경직된 노동규제 개선과 노사관계 선진화가 시급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