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거절’ 낸 회계법인, 법원서 정당성 인정
오히려 청탁 받고 ‘적정’ 내준 회계사 재판행
무형자산 부풀리기 통한 주가조작 시도 제동

▲카나리아바이오 CI
휴림에이텍(옛 디아크)와 현대사료(옛 카나리아바이오)의 실질적 지배세력으로 지목된 기업사냥꾼이자 전직 회계사 출신 이준민 일당이 회계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454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심 패소했다.
1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디아크는 캐나다 온코퀘스트(OncoQuest)로부터 난소암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오레고보맙'의 권리를 약 3751억원에 인수했다.
이 중 2129억원은 신주를 발행해 현물출자 방식으로 지급할 예정이었고, 이 거래로 인해 회사 자산은 4710억원까지 급증했다.
그러나 자산 대부분이 임상조차 완료되지 않은 신약후보물질로 채워지면서, 이에 대한 공정가치 평가에 의문이 제기됐다.
당시 창원지방법원은 오레고보맙에 대한 현물출자 인가 신청을 “객관성과 합리성이 부족하다"며 불허했다.
이에 따라 디아크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은 오레고보맙의 가치 평가 신뢰성, 회사의 계속기업 존속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2020년 재무제표에 대해 '감사의견 거절'을 통보했다.
이에 반발한 디아크 측과 주요 투자조합은 2022년 회계법인을 상대로 454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회계법인이 부당하게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 회사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고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1심법원은 최근 판결에서 회계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회계법인의 판단은 감사기준에 따라 보수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당시 상황에서 합리적이었다는 얘기다.
현물출자가 법원에서 불인가된 자산을 무리하게 자산으로 반영하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카나리아바이오의 전신 현대사료의 천안 공장 전경. 사진=강현창 기자
사실 이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이번 판결 이전부터 내려져있었다.
이 씨 일당이 회계법인의 '거절' 의견을 무력화하기 위해 또 다른 회계법인과 자산평가사에게 금품을 건냈다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2021년 디아크 재무제표에 대해 '적정' 의견을 내린 회계사 박모 씨를 허위감사 및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해 재판도 진행 중이다.
해당 회계사는 오레고보맙의 가치를 수천억 원대로 과장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로, 이 씨 측과 수차례 자산평가 작업을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들은 기업가치를 과장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시세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의 조직적 작전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레고보맙의 실제 가치도 결국 대부분 손상됐다. 임상 3상 진행 중 2024년 중간 평가에서 유효성 부족으로 시험이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약 1530억원의 무형자산 손상차손이 회계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결국 디아크 측이 감사의견 거절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내세운 '적정 의견'의 근거 자체가 모두 무용지물이 된 상태였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결과 청탁과 금품 제공 등의 불법행위가 드러난 사건으로 커졌다.

▲카나리아바이오 주주총회에서 나한익 대표(오른쪽 첫번째)가 주주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강현창 기자
시장 관계자들은 이 판결이 회계법인의 독립성과 감사보수 기준의 정당성을 방어한 첫 사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신약 후보물질 등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은 무형자산을 기반으로 투자유치를 시도하는 바이오 기업군에 경고 신호를 보냈다는 점에서, 회계투명성 회복의 전환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회계업계 전문가는 “이 사건은 회계법인이 작전 세력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장감시자로서 본연의 역할을 했느냐를 판단하는 시험대였다"며 “결과적으로 법원이 회계인의 독립성과 보수성을 인정했다는 점은 상당히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씨 일당과 관련된 형사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검찰은 불공정거래 및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총 10여 명을 기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