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에너지믹스와 전력믹스, 제대로 알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5.21 10:58

양수영 전 서울대학교 객원교수/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양수영 전 서울대학교 객원교수/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양수영 전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최근 대선을 앞두고 에너지 정책이 주요 이슈로 부상하면서 '에너지믹스(energy mix)'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종종 잘못 사용되며, 그로 인해 에너지 현실에 대한 오해를 낳고 있다. 정확한 정책 논의를 위해서는 개념부터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




'에너지믹스'란 석유,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 다섯 가지 1차 에너지의 전체 사용량 중 각 에너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여기서 '1차 에너지'란 가공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에너지를 뜻한다. 예컨대, 전 세계적으로는 석유가 약 3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 뒤를 석탄(26%), 천연가스(23%), 재생에너지(15%), 원자력(4%)이 잇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발전원 다변화를 이야기할 때 '에너지믹스'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이는 엄밀히 말해 '전력믹스(power mix)' 또는 '전기믹스'가 정확한 용어다. 일부 전력회사가 '전력(power)' 대신 '에너지(energy)'를 사명에 사용하면서 혼란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오용이 정책 담당자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착오를 넘어, 에너지 정책에 대한 인식을 왜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전력믹스에서 재생에너지가 52%를 차지하며, 2030년까지 이를 80%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두고 “독일이 곧 화석에너지에서 완전히 탈피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전력믹스를 에너지믹스로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오해다. 실제로 2030년에도 독일의 전체 에너지믹스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며, 나머지 60%는 여전히 화석에너지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발전량 기준 전력믹스는 석탄 31%, 원자력 31%, 천연가스 27%, 신재생 10%, 석유 1%였다. 그러나 1차 에너지 기준으로 보면 석유 43%, 석탄 22%, 천연가스 17%, 원자력 13%, 재생에너지 5% 순이다. 특히 석유 비중이 높은 것은,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국내 소비뿐 아니라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으로 수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82%를 화석에너지에 의존하며,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처럼 에너지믹스와 전력믹스를 혼동하면 정책 판단에 심각한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전기차, 반도체,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지금, 에너지 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더욱 절실하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60%가 화석에너지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탄소 배출의 주범인 석탄 발전을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 천연가스 발전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지만, 국제 가격 변동성과 수입 의존도를 고려할 때 그 비중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 따라서 저탄소이면서 에너지 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오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전기 사용이 증가한다고 해서 '앞으로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탄소중립을 논하며 “이제 석유나 가스를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미래 에너지 문제는 원자력이 해결할 것"이라며 원전만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은 모두 전기만 생산할 수 있으며, 수송 연료, 석유화학 원료, 제철용 원료, 산업용·난방용 열원 등으로 여전히 화석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사용된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최종 에너지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며, 에너지 전환에 낙관적인 국제에너지기구(IEA)조차 2050년에도 그 비중이 32%를 넘기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에너지 정책이 곧 국가 안보이자 미래 전략이다. 그런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에너지에 대한 기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용어부터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너지믹스와 전력믹스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 그것이 실효성 있는 에너지 정책의 첫걸음이다.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