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 추경, 경기 부양+물가 안정, 두 마리 토끼 잡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2차 태스크포스(TF)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정부가 20조 원 규모의 2차 추경 편성에 속도를 내면서 동시에 유동성 확대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인플레 방파제' 구축에 나섰다. 대규모 재정지출 확대가 자칫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추경과 물가 안정 대책을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이 본격화된 것이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물가는 잡고 경기는 살리겠다"는 경제 운용 기조를 제시했다. 속도감 있는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함께 재정 안정성도 철저히 따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국가 재정을 투입하면서도 민생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부작용은 피하라는 취지다. 특히 9일에는 “라면 한 개에 2,000원이 넘는다"며 정책 당국에 실효성 있는 물가 안정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물가 대응은 식품·외식, 부동산 등 서민 체감도가 높은 영역부터 착수됐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 13일 '밥상물가 안정을 위한 경청 간담회'를 열고 “생활 물가가 급상승해서 민생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유통 과정이 불분명하거나 불투명한 품목들에 대해서는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 청문회도 아직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총리 후보자로서 업계와 사전 소통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 추경發 '물가상승' 자극 우려…물가 대응 수단도 한계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으며 국무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하지만 추경을 통한 경기 부양과 물가 억제는 대개 공존하기 힘든 목표다. 정부가 추경을 통해 유동성을 시장에 직접 공급하는 만큼, 재정지출이 단기적으로 수요 측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현재 최소 20조원 이상의 추경 편성을 논의 중이다. 특히 이번 추경의 핵심은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현금성 지원이다. 이번 추경에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확대, 소비쿠폰, 교통·에너지 바우처 등 가계의 직접 소비를 유도하는 항목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원 조달 방식도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차 추경 재원이 세계잉여금과 기금 여유자금으로 충당된 만큼, 2차 추경은 대부분 적자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채권 공급 확대에 따라 국고채 금리가 오르고, 은행 대출금리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가계·자영업자·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민간의 소비와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서 정부의 재정지출이 오히려 민간 경제 활동을 제약하는 '구축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물가 상승에 대한 대응 수단도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공공요금 인상은 유보하고, 민간 부문에는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방식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기업에 직접 가격 인하를 유도할 경우, 그 부담이 협력업체나 납품업체로 전가돼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 일부 품목의 경우 가격 급등 시 수입선을 다변화하거나 유통 물량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100 풀면 70 효과"…부작용 최소화가 관건
추경 집행과 동시에 '물가 안정' 메시지를 내는 것이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모순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 기조가 강해지면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에 제약이 생긴다"며 “결국 추경 효과를 내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물가 상승 우려 때문에 통화 완화 기조를 취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재정을 풀면서 동시에 물가까지 잡겠다는 건 경제학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부 지출은 일정한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1·2차 추경이 올해 물가에 미칠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한국은행은 올해 두 차례 추경의 효과가 내년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소폭 상방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우 교수도 “지금은 정부 지출이 물가에 큰 영향을 줄 만한 타이밍은 아니다"라며 “현재는 총수요가 위축된 상황이고, 추경 효과도 바로 나타나기보다는 내년쯤 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적자국채 발행으로 금리가 다소 오르더라도, 그것이 경기 회복 효과를 완전히 상쇄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100을 풀었을 때 기대 효과가 100은 아닐 수 있어도, 최소한 70 정도의 효과는 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추경을 통해 경기 부양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면, 금리 상승이나 구축 효과(crwoding-out effect) 등 부작용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