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400조 시대…‘2% 수익률’에 노후는 없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6.18 10:20

기대수명 늘고 적립금은 쌓이지만, 실질 수익은 제자리…기금형 전환 논의 본격화
10년 평균 2.07%, 원리금 보장형 쏠림 심화…전문가들 “제도 설계부터 손봐야”

퇴직연금(PG)

▲퇴직연금(PG)

퇴직연금의 10년 평균 운용수익률이 2%대에 그치며 노후 소득 보장 수단으로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과 같이 외부의 독립된 기금이 통합 운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8일 에너지경제신문이 국민연금연구원의 '사적연금제도 연금화 개선방안'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는 계좌는 전체의 10.4%에 불과했으며, 10년 평균 운용수익률은 2.07%에 그쳤다. 이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실질 수익이 거의 없는 수준으로, 국민연금의 연평균 운용수익률(5~6%)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실적이다.


고용노동부의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총 431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9조3000억원(12.9%) 증가했다. 2019년 221조원이었던 적립금은 5년간 약 2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작년에는 적립금 규모가 처음으로 400조원을 돌파했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전문성을 갖춘 수탁기관이 가입자 퇴직연금을 통합해 일괄 운용하는 구조다. 약 1400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처럼 퇴직연금도 통합 관리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전문가의 자산 배분으로 수익률을 높이자는 취지다.


현재 퇴직연금은 기업이나 근로자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퇴직연금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하는 '계약형'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기금형 제도가 도입되면 퇴직연금 시장에 경쟁이 촉발돼 서비스 질이 상향 평준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저조한 주요 원인으로 가입자의 88.1%가 여전히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선택하는 점을 지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확정기여형(DC) 제도로의 전환과 기금형 제도 확대라는 투트랙 전략을 제시했다.


단기적으로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상품군에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제외하고 미국이나 호주처럼 실적배당형 상품만으로 구성해 가입자의 수익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퇴직연금이 노후 안전망 역할을 하지 못하는 또 다른 핵심 원인으로는 '중도 인출'이 지목됐다. 2022년 한 해에만 약 5만 명이 1조7000억원을 중도 인출했으며, 이 중 46.6%는 주택 구입 목적이었다. 보고서는 퇴직연금의 연금화를 유도하기 위해 연금 수령 시 세제 혜택 강화, 고령층을 위한 연금 개시 연령 연기 옵션 활성화, 다양한 연금화 상품 개발 등 제도적 인센티브 강화를 제언했다.


그러나 금융업계에서는 퇴직연금 기금화가 반드시 수익률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기존 '계약형'이 주식·채권 등 수익성 자산에 분산 투자를 제대로 못한 구조적 문제는 상품 개선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계약형과 기금형 퇴직연금이 공존하는 일본과 영국의 사례를 들어 양 모델의 수익률에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2005년부터 계약형 상품에 투자해 온 시장에 갑자기 거대 기금 사업자가 진입할 경우 '민간 대 공공' 경쟁이 과열되고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부와 국회, 학계는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여 노후 보장 수단으로 개선하기 위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전문가 자문단을 공식 출범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 중이며, 하반기 법안 발의를 목표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여러 기업들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통합해 50조원 이상 규모의 기금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법안을 조만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도 최근 정책 심포지엄에서 노후소득 증대를 위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종환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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