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송재석 금융부장

정부는 '코스피 5000 시대'와 '첨단산업 육성'을 앞세우며 성장 청사진을 제시한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선 기업과 금융권 모두 숨 쉴 틈 없는 규제와 부담에 짓눌려 있다. 경기 부양을 말하면서도 법인세율은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서 1%포인트씩 올렸고, 노란봉투법·상법 개정으로 기업경영 환경은 한층 더 불안정해졌다. 금융권 역시 대출총량 규제, 부실채권 증가, 교육세 인상 등 이중 삼중의 압박을 받고 있다. 경제의 두 바퀴가 동시에 족쇄를 차고 있는 셈이다.
NH농협금융지주는 10월 말까지 '내 주식 갖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신한은행이 지난 6월 벌인 '다시 한번 코리아' 캠페인처럼, 국내 펀드투자와 자본시장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그룹 차원의 움직임이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코스피 5000 공약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시장 현실은 냉혹하다. 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내세우면서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은 종목당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했다. 유동성 위축은 불 보듯 뻔한데 정책 방향은 '시장 부양'과 정반대다. 다시 완화한다 해도, 원칙 없는 세제 운용이라는 불신만 키울 것이다.
금융권의 발목을 잡는 요소도 적지 않다. 가계와 기업 부문의 잠재 부실이 시한폭탄처럼 쌓여 있는 데다 이를 완충할 수 있는 정책 여력도 예전만 못하다. 은행권 가계대출 연체율이 이미 10년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관련 리스크 역시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권은 건전성 관리와 시장 활성화라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3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 일부 업권의 예대율·충당금 강화 등 새로운 규제들이 도입되고 있다. 대출 증가 억제라는 측면에서는 필요한 조치일 수 있지만, 기업대출과 투자자금 공급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중소기업과 신성장 산업으로의 자금 흐름이 제약받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금융권은 강력한 대출 규제와 리스크 관리 기조 속에서 신산업과 중소기업 대상 신규 대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충당금 적립 의무와 예대율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은행들은 위험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신산업 투자에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기업 대출이 줄고 투자금융이 위축되면, 정부가 내세운 '첨단·혁신기업 투자 확대'는 선언에 그칠 뿐이다. 산업 경쟁의 무대는 냉정하다. 미국은 전략산업을 국가 안보 자산으로 규정하고, 세제 혜택·현금 지원·규제 완화를 한 묶음으로 제공하며 기업의 투자 결정을 가속한다. 투자자의 자본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금융·세제·노동환경을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관세와 공급망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기업들에게 법인세 인상과 복잡한 규제라는 모래주머니를 더 얹어준다. 이렇게 해서 국내 투자가 늘어나길 기대하는 건 착각이다.
금융은 산업의 혈관이고, 기업은 경제의 심장이다. 혈관을 조이고 심장을 눌러놓고는 '코스피 5000'이라는 고강도 운동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정책이 시장 신뢰와 맞물릴 때 투자와 고용이 살아나고 주식시장은 꿈꾸는 숫자에 다가간다. 지금처럼 세금과 규제로 두 축을 동시에 옥죄면서 성장과 투자 확대를 기대하는 것은 시동 꺼진 차를 고속도로로 몰라는 것과 같다. 경제는 의지가 아니라 조건이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