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살 깎아먹기 경쟁…방한객 증가에도 매출 '울상'
개별 여행·자유 쇼핑 확산, 기존 따이궁 손절 속도
큰 손 '유커의 귀환', 콘텐츠 차별화하는 면세업계
전문가 “가격 장점 체감 어려워, 자구책 마련 절실"
수년째 불황인 국내 면세 사업자들의 경영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제한적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여행 행태의 변화로 경쟁 난도가 올라간 가운데, 면세점 임대료를 둘러싼 인천국제공항과의 갈등마저 부담으로 작용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9월 말부터 큰손인 '유커(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 제도가 한시 운영된다. 단기 실적 부양책을 넘어 잃어버린 성장 동력을 회복하는 터닝 포인트로 삼을 수 있을까. 조직 축소·매장 정리 등 '운영 효율화', 상품·서비스·마케팅 등 '경쟁력 강화' 두 가지 측면에서 롯데면세점·신세계면세점·신라면세점·현대면세점 주요 면세점 4사의 생존 전략을 총 5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면세구역. 사진=연합
외국인 관광객 수가 코로나19 이전을 넘는 상승세지만 오히려 매출이 줄어든 국내 면세 사업자들의 표정은 좋지 못하다. 업계는 따이궁(중국 보따리상) 모시기로 촉발된 저마진 구조 개선·몸집 줄이기를 병행하며 산업 정상화를 꾀하는 한편, 9월 말부터 내년 6월 말까지 한시 시행될 예정인 '유커 무비자 입국'에 수혜 기대감을 걸고 있다.
◇밑지는 장사에 불황 지속…따이궁 의존도 낮춰라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을 살펴본 결과, 올 1~7월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5.9% 늘어난 약 1056만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7월 합산, 약 989만명)을 웃도는 성장세다. 반면 올 상반기(1~6월) 롯데면세점을 제외한 신세계·신라·현대면세점 모두 적자를 봤다.
방한객이 증가한 만큼 면세점 이용객도 늘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 7월 국내 면세점 방문객은 258만명으로 전년 동기(236만명) 대비 9.2% 늘었다. 역설적으로 같은 기간 국내 면세점 매출은 1조65억원에서 9199억원으로 8.6% 줄었다. 해외 방한객 수와 면세 방문객 증가 등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실질적인 면세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의미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주저앉은 국내 면세 시장이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고질적인 고비용·저수익 구조 영향이 가장 크다. 불황 속 버티기 차원에서 따이궁 유치를 위한 프로모션 비용, 송객수수료 부담으로 제살 깎아먹기 장사를 지속해온 결과다.
따이궁은 한국 면세점에서 화장품·명품 패션 등을 저렴하게 매입해 중국·동남아시아 등에 프리미엄가로 되파는 상인들로, 워낙 대량 구매하는 탓에 큰손으로 꼽혔다. 특히, 일반 관광객 발길이 끊긴 코로나19 확산세 당시 이들의 매출 비중만 90% 수준에 육박할 정도였다.
다만, 따이궁이 실적 성장을 저해한다는 판단과 함께 면세 사업자들의 태도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올 초 롯데면세점이 총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따이궁과의 거래 중단을 과감히 선언한 것이 대표 사례다. 롯데면세점의 모험적 선택이 2분기 업계 유일한 흑자로 돌아오면서, 나머지 업체들도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올 들어 주요 4사가 시내 면세점 위주로 특허권을 반납해 점포를 정리하거나, 기존 매장 규모를 축소해온 행보도 따이궁과의의 이별과 무관치 않다. 업계 추정대로라면 각 사 총매출에서 시내 면세점 비중은 70~80%대 수준으로 압도적이다.
특히, 시내 면세점의 경우 공항면세점 대비 중국 단체관광객과 보따리상 영향이 커 상대적으로 운영에 제약이 컸을 것이라는 업계 분석이다. 각 사마다 도심 상권에 위치한 특성상 패키지 여행 코스에 포함되고자 경쟁적으로 마케팅 비용도 투입해온 터라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삼일회계법인 측은 올 2월 발표한 '보릿고개 넘는 K-면세점, 위기진단과 제언'을 통해 “중국 관광객들의 트렌드가 개별 관광 위주로 변화 중이며 따이궁 수요가 과거보다 약하다"면서 “따이궁 매출에 의존해 외형만 유지한 채 내실을 다지고 있지 못하는 바, 시내 면세점의 경우 과감한 철수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구역 모습. 사진=연합
◇돌아온 유커 '반짝 특수' 우려…가격 등 본업 경쟁력 되찾아라
국내 면세업계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중국 관광객의 구매 파워가 예전만치 못한 점도 발목을 잡는다. 2021년 263만원이던 1인당 면세 구매액은 엔데믹이 본격화된 2023년 오히려 두 자릿수로 떨어졌고, 올해(7월 기준) 35만6000원으로 급감했다. 중국 정부의 보따리상 단속 강화·소비 장려책으로 객단가가 높던 '따이공' 수요가 빠지고, '싼커'라 불리는 개별 자유여행객들이 공백을 메운 결과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조만간 시행될 유커 무비자 입국 제도가 국내 면세업계의 분위기를 180도 바꿀 카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붙는다. 업계는 “매출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한시적 운영인 만큼 반짝 특수 가능성도 있다"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면세업계는 변화 흐름을 읽는데 초점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 단체 관광·명품 쇼핑 위주에서 개별 관광·자유 쇼핑 위주로 관점이 바뀌면서, 새로운 유형의 유커들을 맞이할 신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면세 사업자 저마다 프리미엄 단체관광 상품을 표방하며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설계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과거 고부가가치 소비를 이끌어 온 중장년층뿐 아니라 차별화된 재미 요소를 추구하는 신세대 유커들을 동시에 노리기 위함이다.
이 밖에 장기적 관점에서 면세사업의 핵심 경쟁력 회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통적으로 면세점의 무기는 가격 경쟁력이었지만, 이커머스 위주로 직구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더 이상 큰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 으뜸 판매 품목인 화장품만 봐도 합리적인 가격대를 갖춘 올리브영 등 오프라인 소매점으로 수요가 파편화된 상황이다.
장기화된 인천국제공항공사와의 빠른 갈등 봉합과 함께 자체적인 노력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전문가 조언도 나온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에 입점한 신라·신세계면세점의 남은 계약기간은 약 8년이다. 다만, 이들은 매월 60억~80억원의 적자가 쌓이면서 수익성 부담이 커지자 임대료 조정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두 업체는 당초 40%였던 임대료 인하안을 30~35%로 낮춰 제시했지만, 인천국제공항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 신라면세점에 부과하는 임대료를 25% 인하하도록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지만, 이름이 무색하게 사실상 강제성이 없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면세의 가장 큰 요소는 말 그대로 얼마나 세금을 면제해 가격적인 메리트를 누릴 수 있는지 여부"라며 “여러 비용 대비 편익을 얘기하지만 지금은 그 장점을 체감하는 수준이 낮고, 자연스럽게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이어 황 교수는 “코로나19 시기에는 인천공항 측이 여행객 부재라는 이유로 임대료 감면 등 혜택을 제공했지만, 현재는 인·아웃바운드 어느 한쪽에도 부족함이 없는 상황에서 커다란 명분이 없다"며 “주요 면세사업자들이 상황을 직시하고 다양한 환경을 분석해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면서 본인들의 자구책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