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전기본 수립, 에너지 전문가 대거 빠지고 기후환경 인사로 채울 가능성 높아
기후솔루션, 플랜1.5, 에너지전환포럼, 녹색전환연구소 등 재생E 우호 단체 유력
재생에너지 대폭 확대, 화석연료 발전 축소, 신규 원전 반영도 불투명해질 가능성
“전기요금 높아져 결국 탄소감축도 실패” vs “뒤처진 재생에너지 목표 정상화”

▲김성환 환경부 장관(왼쪽 가운데) 주재로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에스타워에서 기후·에너지단체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환경부
정부가 연말부터 수립에 착수하는 사실상 최상위 에너지정책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기존 기조와 매우 다른 방향으로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주로 에너지 전문가들이 참여한 반면, 12차에는 기후환경단체 인사들이 대거 전문가로 참여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산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대전환 등으로 전력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과 전력수급 불안이 발생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반면, 기후환경단체들은 전기본에서 기후위기 대응력이 한층 반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2차 전기본 총괄위원회에 환경단체 인사 포함 가능성 제기돼
18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12차 전기본 총괄위원회에는 기존 11차 전기본에 참여했던 에너지 전문가들이 다수 제외되고, 대신 기후솔루션, 플랜1.5, 에너지전환포럼, 녹색전환연구소 등 기후환경단체 소속 인사들이 대거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기후솔루션과 플랜1.5는 각각 더불어민주당 이소영·박지혜 의원이 몸담았던 단체이고, 녹색전환연구소는 이유진 대통령실 기후환경에너지비서관이 활동했던 곳이다. 지난 17일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이들 단체와 간담회를 가진 데 대해서도 업계 일각에서는 “사실상 전기본 총괄위원회 사전 면접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11차 전기본 수립에 실무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에너지 전문가는 “현재 논의되는 12차 전기본 참여진 구성에서 산업계·에너지공기업·전력정책 전문가들은 빠지고, 다수의 환경단체 인사와 일부 해외 비정부기구(NGO) 출신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안다"며 “정책 수립 과정이 정치적 구호에 휘둘릴 경우, 전력계통 안정과 산업용 전력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기본이란 '전기사업법'에 근거해 2년마다 수립되는 국가 전력수급 계획이다. 예전에는 전력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계획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탄소중립 및 전력화로 인해 사실상 국가 최상위 에너지 계획이 됐다.
그동안 전기본 수립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맡아 왔으나, 다음 달부터는 에너지 정책을 이관 받게 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맡게 된다. 이 때문에 12차 전기본은 기존과 매우 다른 양상으로 수립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윤석열 정부에서 확정된 11차 전기본은 수립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과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전체 발전설비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2030년 18.8%, 2035년 26%, 2038년 29.2%로 기대보다 낮게 제시했다. 같은 기간 원전 설비용량 비중은 31.8%, 34.1%, 35.2%로 재생에너지보다 높게 제시했다. 이를 위해 신규로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건설도 반영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환경단체는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면서 확정이 지연됐지만 결국엔 민주당도 승인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11차 전기본 수립 때 원전 2기와 SMR을 신규로 한다고 했을 때 하라고 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그래서 통과시켰다. 부지 있고, 안전성 확보되면 (신규 건설) 할 수 있겠지만,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원전은 기본적으로 맹점이 있다. (준공하는 데) 최하 15년이 걸린다. 지을 데도 없다. 딱 한군데 있는데, 지으려다 만 곳이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아직 기술개발이 안 됐다"며 “태양광과 풍력은 1~2년 밖에 안 걸린다. 당장 데이터센터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무슨(어떻게) 원전을 짓겠나. 신속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로 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인식 속에 12차 전기본 수립 전문가로 기후환경단체 인사가 대거 포함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재생에너지의 대폭적인 확대와 화석연료 발전의 축소, 신규 원전 반영은 불투명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력수급 불안·전기요금 급등 우려" vs “NDC 달성, 재생E 중심 성장 필요"
산업계와 일부 에너지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전력수급 안정성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산업계와 전력정책 전문가들이 빠지고 환경단체 인사들이 들어가는 건 정책 수립 과정을 정치 구호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석탄·가스는 물론 원전까지 '급진적 퇴출'을 전제하면 전력 수급 불안, 전기요금 급등, 탄소감축 실패라는 '3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전 및 발전공기업 출신 인사들도 “전기본은 수년간의 계통 운영 데이터와 산업 수요 구조를 바탕으로 짜는 복잡한 계획인데, 환경부 중심으로 접근하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단일 목표에 매몰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전력망 안정성과 계통 대응력을 고려한 현실적 로드맵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며 “태양광·풍력만으로는 기저·첨두부하를 감당하기 어렵다. 정책은 속도보다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기후환경단체에서는 그간 전기본이 정부 주도로 일방 결정되며 선진국 대비 뒤처진 재생에너지 목표를 제시해 왔다고 비판하며 이제서야 정상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2차 전기본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투명한 절차로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11차 전기본은 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이재명 정부에서 수립할 12차 전기본은 2035 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성장을 강조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