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온의 건설생태계]‘생존 모드’에 ESG 줄매각…원전·하이테크 ‘새 먹거리’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9.24 13:56

주택경기 침체·고금리 속 일부 대형사 환경사업 매각 잇따라

ESG 미래 먹거리로 외쳤던 기업들, 원전·하이테크·복합개발로 이동

“단기 생존형 조정이 장기 지속가능성 약화시킬 우려도”

[서예온의 건설생태계]는 매주 건설업계 내부의 주요 현안을 깊이 있게 다루는 기획 코너입니다. 산재(산업재해)·수주전·제도 변화 등 업계가 직면한 쟁점을 현장 취재와 전문가 분석으로 입체적으로 전합니다. <편집자주> <2>건설업 미래 먹거리 찾기


한화건설 서울역 북부역세권 복합개발사업 조감도

▲한화건설 서울역 북부역세권 복합개발사업 조감도. 사진=한화건설

“생존을 위해선 일단 살 돈부터 마련해야 한다."




주택 경기가 식고 금리 인하가 늦춰지고 있다. 6·27 대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건설 불황이 끝날 줄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일부 대형 건설사들이 '알짜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생존을 위해 현금 확보에 나섰다. 수익 변동성이 큰 환경사업을 축소하거나 매각하고 대신 원전·반도체·복합개발 같은 비주택·미래 산업으로 무게를 옮기는 모습이다. 불과 몇 해 전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외치던 기조와는 결이 달라졌다. 업계는 이를 “포기라기보다 단기 생존을 위한 조정"으로 설명하면서도 “장기적으론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건설업계가 한때 앞다퉈 '친환경'을 외쳤던 이유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규범이 강화되고, 탄소중립은 기업의 새로운 의무이자 또 하나의 시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형사들은 수처리·폐기물·재생에너지 사업을 '미래 먹거리'라 부르며 투자를 늘렸다. 하지만 불과 몇 해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고금리와 주택시장 불황이 장기화되자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불확실한 수익을 요구하는 친환경 사업이 가장 먼저 '정리' 대상으로 떠올랐다.




국토부 전국주택건설실적

▲국토부 7월 전국주택건설실적. 자료=국토부


주택시장, 공급·수요 모두 냉각

건설업체들의 '레거시' 먹거리인 주택 시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최근 주택 통계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국 인허가 누적 실적은 15만4571가구로 전년 대비 10% 줄었다. 착공(12만4547가구), 분양 승인(9만717가구), 준공(23만1172가구)도 일제히 감소했다. 2021~2022년 공급 확대로 한때 '과열' 논란까지 일었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준공 후 미분양 이른바 '악성 미분양'은 2만7057가구로 전월 대비 1.3% 늘었으며 대구(3707가구)·경남(3468가구)·경북(3235가구)·부산(2557가구)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수도권 외곽에서도 미분양이 서서히 늘며 '지방발 공급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도권 청약시장도 급격히 식었다. 6·27 대출 규제로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자 자금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는 청약에서 밀려났다. 리얼하우스 분석에 따르면 7월 전국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9.08대 1로 21개월 만에 최저다. 서울은 평균 99대 1에서 88대 1로 낮아졌다. 다만 이는 평균치여서 단지별 편차가 크고 일부 인기 단지는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송파 잠실 '르엘'처럼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도 중도금 14억원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는 단지는 사실상 현금 부자만 접근 가능한 단지로 평가된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얼어붙은 주택시장은 건설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존 전략을 찾게 만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사업만 바라보기엔 위험이 커지면서 비주택·비환경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서둘러 바꾸는 분위기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환경사업 매각, 일부 대형사에서 두드러져

이에 따라 한동안 건설사들은 ESG 관련 산업 등을 신성장 분야로 여기고 적극 진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ESG 분야의 비중을 줄이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모든 건설사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대형사에서는 특히 뚜렷하다. 단순히 '돈 안 되는 사업을 접는다'는 차원을 넘어 기업 전략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GS건설은 2012년 인수했던 스페인 수처리 자회사 GS이니마를 올해 8월 아랍에미리트 국영 에너지기업 TAQA에 약 1조6700억 원 규모로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물사업이 장기 성장 영역으로 꼽히지만 환율 변동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수익성 불안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SK에코플랜트도 지난 8월 글로벌 투자사 KKR에 자회사 리뉴어스·리뉴원·리뉴에너지충북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 회사 측은 “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전략'에 맞춰 환경사업 재조정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반도체·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서 태영건설은 지난해 8월 부동산 PF 부실로 워크아웃에 돌입한 뒤, 채권단 요구에 따라 국내 1위 종합 폐기물 처리업체 에코비트 지분 전량을 약 2조700억 원에 IMM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대금은 대부분 고금리 차입금 상환과 재무 구조 개선에 투입됐다. 사실상 환경사업 매각이 생존을 위한 필수 조치가 됐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단기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환경사업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는 건 모두 알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손대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미래산업으로 무게 이동, 사업 다각화 가속

그러나 친환경 산업 외에 원전·하이테크 등은 여전히 건설사들의 포트폴리오로 편입되고 있다. '버티기'가 아니라 새로운 수익 축을 마련해 향후 경기 반등기에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다.


현대건설은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7·8호기 설계 계약을 이미 확보했고, EPC(설계·조달·시공) 계약 수주에도 도전 중이다. EPC까지 따낼 경우 총 19조 원 규모 사업의 상당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 슬로베니아 JEK2 신규 원전, 핀란드 포툼 원전, UAE 원자력공사(ENEC)와의 협력 등도 추진하며 2030년까지 에너지 부문 매출 비중을 2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H-Road' 전략을 내놨다.


대우건설 역시 체코 신규 원전 시공 참여를 계기로 원자로 설계·시공·유지보수·해체·방사성폐기물 처리까지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 역량을 강화해 유럽·미국·중동·아시아로 수주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SK에코플랜트는 환경사업 매각 대금을 반도체 및 인공지능(AI) 인프라 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SK머티리얼즈 산하 자회사를 편입해 포토·식각·증착 등 핵심 공정 소재 밸류체인을 확보하고, 청주 M15X·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화건설부문과 HDC현대산업개발은 대규모 복합개발 사업을 통해 주거·상업·업무·의료 등 다양한 기능을 결합한 미래 도시 모델을 구현하고 있다. HDC현산은 약 4조8000억 원 규모의 '서울원 아이파크' 프로젝트에서 3000가구 주거단지와 웰니스 레지던스, 5성급 호텔, 프라임 오피스 등을 집약한 복합도시를 조성한다. 한화건설도 서울역 북부·수서역 환승센터·잠실 MICE·대전역세권 등에서 그룹 차원의 디벨로퍼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개발·운영까지 책임지는 모델이 장기적으로 안정적 수익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흐름은 위기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SG 후퇴?…“위기 뒤엔 다시 강화될 것"

전문가들은 언제든지 다시 건설사들의 ESG 분야 투자가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건설사들의 ESG 사업 매각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환경 기조 등 국제·산업 환경의 도전, 단기 유동성 확보 필요성 등에 따른 '일시적 후퇴'라는 것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줄이는 건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안전·환경 중심으로만 규제를 강화하면 기업 투자 여력이 줄어 ESG 실현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환경사업 매각은 단기 재무 대응일 뿐"이라며 “기후변화와 탄소 감축은 국제사회 규범과 직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럽연합(EU)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시행해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미국도 청정에너지 투자 활성화와 기후위험 공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ESG 평가 기관인 MSCI는 2025년을 ESG 경영 전환점으로 규정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 실현 가속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지금은 ESG가 후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재무를 안정시킨 뒤 친환경 투자를 다시 확대하려는 흐름이 뚜렷하다"며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이 분명한 만큼 결국 ESG는 기업 생존을 위해 다시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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