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울·블랙록·클리프워터 잇단 환매 제한
유동성 불일치가 핵심 리스크
장기·비유동 자산에 단기 환매 붙인 구조가 불안 키워
국내 충격은 제한적이지만 BDC 도입 앞두고 리스크 관리 과제 부상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구글 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
글로벌 신용시장에서 급성장해 온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 대형 사모대출 펀드에 환매 요청이 몰리고 일부 자산가치가 상각되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구조적 취약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사모대출 시장을 둘러싼 경계심은 빠르게 커지는 분위기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뉴욕 증시에서 사모대출 시장 불안이 부각되면서 관련 투자회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모건스탠리는 4.05% 내렸고, 아폴로 글로벌매니지먼트(-5.44%), 블루아울 캐피털(-4.55%), 블랙스톤(-4.78%), 아레스 매니지먼트(-6.73%), KKR(-3.73%) 등 주요 대체투자 운용사도 급락했다.
11일 미국 사모대출 운용사 클리프워터가 운용하는 330억달러(약 49조원) 규모 펀드에 환매 요청이 몰린 영향이다. 환매 요청 규모는 순자산가치(NAV)의 약 14%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환매 요청이 쇄도하자 클리프워터는 1분기 환매 한도를 펀드 지분의 7%로 제한했다.
은행 빈자리 메운 사모대출, 2.3조 달러 시장으로 팽창
사모대출은 은행이 아닌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 등 비(非)은행 금융사가 비상장 기업에 직접 대출을 제공하는 금융이다. 일반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중견기업(미들마켓)이 주요 차주로 꼽힌다. 운용사는 투자자 자금을 모아 기업 대출이나 지분 투자 형태로 운용하고 여기서 발생한 이자와 평가이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사모대출 시장이 커진 배경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은행 규제가 있다. 규제당국이 은행에 자본 확충을 요구하고 위험 대출을 억제하면서 중소·중견기업과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시장에 거대한 대출 공백이 발생했다. 이를 메꾼 것이 사모대출 시장이다.
시장 규모는 더 이상 틈새시장으로 보긴 어렵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2000억달러(약 1780조원)에서 2025년 2조3000억달러(약 3395조원)로 약 두 배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미국 비중이 전체의 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모대출 시장은 범위가 불분명하고 투명성이 낮아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미국 사모대출 시장은 헬스케어와 기술 섹터 비중이 각각 19%로 가장 크다. 특히 지난해 AI 기업 투자 확대로 주요 기업의 자금조달 방식이 영업 현금흐름에서 부채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사모대출은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조달 수단으로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8월 메타는 루이지애나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사모자산 운용사인 블루아울 캐피털과 특수목적회사(SPV)를 설립하고 사모대출 시장에서 270억달러를 조달했다.
▲사모대출 운영 구조와 환매 요청 리스크. [자료=취재를 바탕으로 ChatGPT를 활용해 생성]
최근 문제가 커지는 이유는 사모대출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사모대출 자산은 대체로 만기 3~7년의 장기·비유동 자산이다. 그런데 일부 비상장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나 세미리퀴드 펀드(Semi-Liquid Fund)는 투자자에게 분기마다 환매 기회를 제공한다. 보통 환매 한도는 순자산가치(NAV)의 5% 수준이다. 자산은 장기로 묶여 있고 부채는 단기로 빠져나갈 수 있는 전형적인 유동성 불일치 구조다. 시장이 좋을 때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투자심리가 흔들리는 순간 환매 요청이 한꺼번에 몰릴 수 있다.
김준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까지 차입 기업의 펀더멘털이 AI 여파로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거나 실제 부실이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는 제한적"이라면서 “최근 나타나는 환매 압력은 실질적인 신용 악화보다 선제적 유동성 회수 움직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차주 부실에서 환매 쇄도까지…시장 전반으로 번지는 환매 압력
![사모대출 시장 관련 주요 사건과 의미 [자료=금융투자업계 취재]](http://www.ekn.kr/mnt/file_m/202603/news-t.v1.20260313.f51e7f7f343e437998f6900a1b69a74b_P1.png)
▲사모대출 시장 관련 주요 사건과 의미 [자료=금융투자업계 취재]
최근 시장 불안은 차입 기업의 부실 징후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9월 자동차 대출업체 트라이컬러(Tricolor)와 자동차 부품업체 퍼스트브랜드(First Brands) 파산을 계기로 사모대출 차주의 신용 위험이 부각됐다. 이후 주요 운용사들이 일부 대출 자산을 상각하면서 투자자 불안은 더 커졌다.
대형 운용사도 타격을 받았다. 블랙록은 일부 대출을 전액 상각하면서 관련 BDC의 순자산가치가 19% 급감했고, KKR과 아폴로 등 다른 운용사도 자산가치 하향 조정에 나섰다.
그동안은 이런 문제가 개별 사례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달 말 블루아울 캐피털이 분기 환매 중단을 발표하면서 시장 전반의 유동성 우려로 번졌다. 블루아울 캐피털은 지난달 사모대출 펀드의 분기 환매를 중단하고 자산 매각을 통해 투자자에게 자금을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 이후 사모대출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
여기에 이달 들어 주요 펀드에 환매 요청이 빠르게 늘면서 일부 운용사는 약관에 따라 환매 한도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지난 6일 블랙록은 자사 최대 사모대출 펀드 중 하나인 280억달러 규모 펀드에서 올해 1분기 환매 요청이 12억달러(순자산가치의 9.3%)에 달하자 실제 환매를 5%로 제한했다. 11일 클리프 워터도 330억원 규모 펀드의 환매 요청이 14%를 넘어서자 환매 한도를 7%로 제한했다. 같은 날 모건스탠리도 80억원 규모 펀드에서 11% 환매 요청이 발생했지만, 환매 한도를 5%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전면 위기 가능성은 낮지만, 이제 운용사별 옥석가리기
현재로선 사모대출 시장 불안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주요 금융기관의 관련 익스포저가 전체 자산 대비 제한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권의 관련 익스포저는 약 3000억달러, 5개 대형은행 합계는 1700억달러로 집계된다. 전체 대출 대비 비중은 2% 수준에 그친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현재 대형 금융기관의 자본여력, 은행의 사모신용과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비중, 다변화된 기초자산 섹터 등을 감안할 때 사모대출 리스크가 금융시장의 전면적 신용 크런치(신용 경색)를 촉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과 보험사들이 사모대출 펀드에 투자하거나 자금을 공급하면서 사모대출과 전통 금융권의 연결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사모대출의 상당 부분이 기술·서비스 등 경기 민감 산업에 집중돼 있어 경기 둔화나 금리 상승이 지속될 경우 부실이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준수 연구원은 “실제 차입 기업의 자금 조달 환경을 약화시키거나 펀더멘털 훼손으로 이어질 경우, 단기 유동성 이슈에서 중장기 신용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모니터링이 필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사모대출 시장의 변동성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환매 증가와 신규 자금 유입 둔화가 맞물리면서 대출 스프레드는 확대되고 신규 대출은 감소하는 조정 국면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사모대출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아직 완전한 신용 사이클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번 환매 사태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위험을 시험하는 첫 단계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영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사모대출 운용사별 포트폴리오 운용 전략이 중요한 차별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큰 조정 없이 빠르게 확장되어 온 사모대출 비즈니스 구조가 이제 실제 시장 환경 속에서 검증하는 국면에 들어서면서, 같은 사모대출 영역이라도 운용사와 포트폴리오 전략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충격은 제한적…BDC 도입 앞두고 리스크 관리 시험대
미국 사모대출 환매 급증이 국내 금융권에 미치는 직접 충격은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다만 국내 증권사들이 해외 사모대출 펀드 판매를 꾸준히 늘려온 만큼, 환매 제한이나 기준가 하락이 현실화할 경우 투자 손실 우려는 남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해외 사모대출 판매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7조원이다. 이 가운데 개인투자자 몫은 4800억원 수준이다. 국내 투자자 판매 잔액과 증가율은 최근 3년간 꾸준히 늘어났다. 이에 따라 미국 사모대출 시장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투자자 민원과 판매사 책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국내에서는 올해 상반기 벤처·혁신기업에 투자하는 BDC 도입도 예정돼 있다. 주식과 주식연계채권뿐 아니라 금전대여 형태로도 40% 한도 내 투자가 가능해, 사실상 국내에서도 사모대출 시장의 기반이 열리는 셈이다. 해외에서 사모대출의 유동성·평가 리스크가 부각되는 시점에 국내에서도 유사한 시장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만큼, 초기 설계 단계부터 투자자 보호와 리스크 관리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배승 LS증권 연구원은 “생산적 금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융권의 자금운용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사례를 참고하면서 투자 심사 등 강화된 리스크 관리 조치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