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한 달여 만에 45% 급락
시가총액은 835조 증발
사상 최대 실적 예상되지만 “호재 아냐”
美 빅테크 설비투자, 투심 살릴지 촉각
▲SK하이닉스 로고(사진=AFP/연합)
인공지능(AI) 시대를 대표하는 대장주였던 SK하이닉스가 흔들리고 있다. 주가가 한 달여 만에 반토막 가까이 떨어진 가운데 중국 반도체 기술의 추격과 AI 투자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면서 투자심리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조만간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장의 기대치가 워낙 높아 주가 반등의 계기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8일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한국 증시에서 SK하이닉스 주가가 13% 급락하면서 지난 6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 대비 낙폭이 약 45%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 증발한 시가총액은 약 5700억달러(약 835조원)에 달한다. 이는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기업가치와 맞먹는 규모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가격도 현재 공모가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이달 들어 반도체 업종의 고점 논란이 본격화하면서 변동성이 커진 데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이 가시화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국 반도체 산업 자립의 '첨병'으로 평가되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전날 중국 증시에 상장했다. 상장 첫날 주가가 400% 넘게 급등하면서 단숨에 중국 본토 상장사 가운데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여기에 중국이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의 양산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본격화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엔비디아가 오픈AI에 대한 지급보증과 대규모 협력·투자를 둘러싸고 '순환 거래' 논란에 휩싸이면서 미국 증시에서 반도체주가 일제히 하락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이 여파로 엔비디아는 15개월 만에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애플에 내줬다.
▲지난 3개월간 SK하이닉스 주가 추이(사진=네이버금융)
SK하이닉스는 AI 열풍에 따른 메모리 가격 상승에 힘입어 오는 30일 또 한 번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고객사의 비용 부담을 키우면서 사용량 감소는 물론 더 저렴한 대체 공급처를 찾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픽테자산운용 홍콩법인의 앤디 웡 다자산 총괄은 최근 SK하이닉스 비중을 줄였다며 “지금 시장의 논쟁은 메모리가 AI 공급망에서 지나치게 많은 몫을 차지하고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은 SK하이닉스가 공급망에서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가져가고 있다는 인식을 바꿀 만한 신호가 나오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실적보다 높아진 시장의 눈높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한 약 570억달러(약 83조원), 영업이익은 약 여섯 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페퍼스톤그룹의 딜린 우 리서치 전략가는 “현재 시장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다"며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더라도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최근 몇 주 동안 이런 사례가 반복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지난 7일 예상을 크게 웃돈 2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6% 이상 하락했다.
결국 시장의 관심은 SK하이닉스 실적보다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기업) 기업들의 AI 투자 계획으로 옮겨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메타플랫폼스는 한국시간 기준 30일 오전, 아마존은 31일 오전 실적을 발표한다. 이들 기업이 향후 AI 설비투자를 얼마나 확대할지가 AI 반도체 랠리의 지속 여부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머스트자산운용의 김민지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SK하이닉스의 실적 자체는 주가에 큰 촉매제가 되지 못할 것"이라며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확대 여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어 “더 중요한 것은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실적"이라며 “이들이 앞으로도 설비투자를 계속 늘릴 것인지, AI 수요를 얼마나 강하게 보고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급락으로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 매력은 오히려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4배 미만으로 한 달 전보다 거의 절반 수준까지 낮아졌다. 이는 경쟁사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6.2배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NH투자증권의 숀 오 총괄은 “매력적인 밸류에이션과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디레버리징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SK하이닉스는 충분히 매력적인 매수 종목"이라면서도 “미국 기술주 실적 시즌을 앞두고 투자자들이 포지션을 축소하거나 이미 낮은 비중을 유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