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KAIA 과제 따른 국가 R&D 사업 성공적 수행 평가
상용화 앞둔 K-UAM ‘두뇌’ 역할로 기술 주권 확보 분석
기체 넘어 ‘하늘길 OS’ 경쟁…UAM 플랫폼 기업 ‘빅 픽쳐’

▲현대자동차그룹 UAM 사업 자회사 슈퍼널의 전기 수직 이착륙기(eVTOL) 콘셉트 모델 S-A2. 사진=현대자동차그룹(HYUNDAI) 유튜브 채널 캡처
대한항공이 미래 도심항공교통(UAM)의 흐름 관리와 비상착륙 관리 핵심 기술 특허 2종을 특허 당국에 제출했다.
이 기술들은 실시간 바람 방향에 맞춰 최적의 이착륙 경로를 자동으로 설정하고, 버티포트 폐쇄 등 비상 상황 시 UAM들을 공중에서 고도별로 안전하게 대기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담고 있다. 이는 UAM 체계의 핵심인 교통 관제 시스템 표준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되며, 대한항공이 단순 운항사를 넘어 UAM 생태계의 운영 체제(OS)를 설계하는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 나아가려는 빅픽처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본지 취재 결과 대한항공은 UAM의 안전 운항을 좌우할 '지능형 교통 관리'와 '비상 착륙 관리' 핵심 기술 특허 2종을 출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술들은 UAM 상용화의 최대 관건인 안전과 효율을 담보할 소프트웨어 기반 관제 시스템의 근간을 이룬다.
이는 복잡한 도심 교차로에 지능형 신호등 체계를 구축하는 것과 같아 2028년으로 예정된 K-UAM 상용화 시대의 두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등록 특허'(Registered Patent)가 아닌 '공개 특허'(Published Patent) 단계여서 대한항공은 현재 UAM 관제 기술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가장 먼저 기술을 출원함으로써 '우선권'을 확보했다. 이 기술이 세상에 이미 알려진 '선행 기술'이 되게 함으로써 기술적 헤게모니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다.
'보이지 않는 활주로'…바람에 맞춰 길을 여는 동적 교통 관리

▲버티포트 교통 관리 방법 실시예를 나타내는 순서도. 자료=대한항공 제공
첫 번째 특허 출원 사항인 '버티포트 교통 관리 방법'(출원 번호 10-2023-0186979)은 바람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 요소를 UAM 운항 시스템에 완벽하게 통합하는 기술이다. 기존 항공기보다 가볍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UAM의 특성상 특히 수직으로 이착륙하는 최종 접근·출발 영역(FATO, Final Approach and Take-off Area)에서의 안전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기술의 핵심은 FATO 주변의 풍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착륙 경로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데 있다. 작동 방식은 '풍향 측정→경로점 설정→경로 변경' 3단계로 구성된다.

▲버티포트 교통 관리 방법 사시도·평면도(각각 상단 좌·우)·측면도(하단). 자료=대한항공 제공
우선 버티포트의 FATO에 설치된 센서가 실시간으로 바람의 방향을 측정한다. 이후 측정된 풍향을 기준으로 항공기가 바람을 안고 접근할 수 있도록 '최종 접근 픽스(FAF, Final Approach Fix)'는 바람이 불어 나가는 쪽(풍하면, leeward)에, 바람을 맞으며 이륙할 수 있도록 '최초 출발 픽스(IDF, Initial Departure Fix)'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풍상면, windward)에 자동으로 설정된다. 항공기가 이착륙 시 양력을 극대화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항공 운항의 기본 원칙이다.
이와 같이 설정된 FAF와 IDF의 위치에 따라 UAM의 전체 접근과 출발 경로가 유동적으로 변경된다. 요컨대 서풍이 불 때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접근하는 경로가, 남풍이 불 때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접근하는 경로가 자동으로 설정된다.
이 기술은 단순히 안전을 넘어 버티포트 운영의 '처리 용량(Throughput)'을 극대화하는 핵심 열쇠다. 도심의 제한된 공간에 건설될 버티포트는 시간당 얼마나 많은 UAM을 안전하게 이착륙시킬 수 있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바람의 변화에 따라 관제사가 수동으로 경로를 재설정하고 조종사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지연을 유발하고 운영 효율을 떨어뜨린다.
이 특허 출원 기술은 이 모든 과정을 자동화함으로써 지연 시간을 최소화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더 많은 UAM을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UAM 네트워크의 상업적 확장성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혼잡·비상 상황 관리 맡은 '하늘 위 대기실'

▲선회 영역을 설정한 버티포트 착륙 관리 실시 예. 사진=대한항공 제공
두 번째 특허 출원 건인 '버티포트 착륙 관리 방법'(출원번호 10-2024-0000310)은 UAM 운항 중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한 '플랜 B'다. 버티포트가 갑작스러운 악천후나 선행 기체의 사고, 또는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폐쇄될 경우 접근 중인 UAM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다.
이 기술은 도심 속 안전 지대 상공에 다층 구조의 '하늘 위 대기실' 개념인 '체공장주(Holding Pattern)'를 설정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선회 영역 설정→선회 횟수(층수) 설정→고도 분리→진입·퇴장점 설정 등 4단계로 작동된다.
이에 따르면 가장 먼저 인구 밀집 지역이나 주요 항로를 피해 공원·강·개활지 등 비상 착륙 시에도 비교적 안전한 지역 상공에 UAM이 선회하며 대기할 수 있는 '선회 영역'을 사전에 지정한다. 이어 버티포트의 교통량과 비상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동시에 대기해야 할 UAM의 수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 몇 개의 대기 '층(layer)'을 운영할지 결정한다.
이로써 각 대기 층별로 서로 다른 고도를 할당해 공중 충돌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만약 3대의 UAM이 대기해야 한다면 각각 300m, 400m, 500m 고도에서 선회하도록 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각 고도별로 UAM이 질서 정연하게 대기열에 합류하고, 순서에 따라 대기열을 빠져나와 버티포트로 향할 수 있도록 명확한 진출입로를 설정한다.
대한항공이 제출한 특허 명세서에는 긴급 상황 발생 시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시나리오까지 상세히 기술돼 있다. 정상적으로 대기 중인 항공기들 사이로 응급 환자를 태운 UAM이 진입해야 할 경우 기존에 대기하던 항공기들은 선회 반경을 넓혀(Extend Outbound Leg) 새로운 항공기가 안전하게 진입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이러한 정교한 시나리오는 정부가 주도하는 'K-UAM 그랜드 챌린지' 실증 사업에서 검증해야 할 핵심 과제 중 하나인 '비정상 상황 대응'과도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이 기술은 UAM 상용화 초기 저밀도 환경에서는 그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가 그리는 2030년 이후의 고밀도 운항 환경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시스템이다. 정교한 공중 대기 시스템 없이는 수많은 UAM이 안전하게 도심 상공을 비행하는 미래를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항공이 단기적인 상용화를 넘어 장기적인 UAM 생태계의 확장성까지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출원된 기술 사항들은 대한항공이 단순히 UAM 운항을 맡은 오퍼레이터를 넘어 전체 UAM 생태계의 운영을 책임지는 '시스템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들이 하드웨어인 기체 개발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안 대한항공은 지난 50여 년간 축적한 항공 운항·관제 노하우를 바탕으로 UAM 네트워크의 OS에 해당하는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을 선점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는 자산 집약적인 제조업 경쟁에서 벗어나 지적 재산권(IP)에 기반한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분석된다.
두 특허는 각각 버티포트 주변의 바람 방향에 따라 실시간으로 최적의 이착륙 경로를 설정하는 기술과 버티포트 혼잡 또는 비상 상황 발생 시 UAM들이 안전하게 공중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다룬다. 이는 UAM이 실제 도심 상공을 비행할 때 마주할 가장 현실적인 두 가지 문제인 '기상 변수'와 '교통 체증'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대한항공이 출원한 두 건의 특허는 K-UAM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교한 운영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각 기술은 독립적으로 기능하면서도, 실제 운항 환경에서는 유기적으로 결합돼 UAM 교통 흐름을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국가 전략의 한 축…K-UAM 퍼즐을 맞추다
이 기술 특허들은 대한항공의 성과를 넘어 UAM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큰 그림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두 특허 모두 국토교통부가 주관하고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KAIA)이 관리하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 감시 정보 획득 체계 개발 사업'의 결과물이다.
해당 사업은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안전 운용 체계 핵심 기술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2022년 4월 1일부터 올해 12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이는 정부가 모든 UAM이 공통적으로 사용해야 할 '소프트 인프라'와 운영 체계 기술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K-UAM 표준에 따라 안전하게 운항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때문에 이 특허 공개는 K-UAM 생태계에서 대한항공의 미래 위상과 전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현대자동차(기체 제작) △KT(통신) △현대건설(버티포트 건설) 등과 구성한 컨소시엄 내에서 '항공 교통 관제'라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는 각자의 전문 분야를 가진 기업들이 협력해 거대한 UAM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자신 있는 '운항 노하우'라는 조각을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이는 UAM 산업의 '기술 주권'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와도 연결된다. 기체 제작과 같은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앞서나가고 있지만 전체 시스템을 통합하고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와 관제 분야는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미개척 영역이다. 대한항공의 이번 특허는 이 중요한 영역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표준을 선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 기술들의 가치는 대한항공이 자체적으로 운영할 UAM 노선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 K-UAM 네트워크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업자가 따라야 할 단일화된 표준 교통 관리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정부 R&D 과제로 개발돼 그 안전성과 신뢰성을 검증받은 대한항공의 관제 시스템은 향후 K-UAM의 '국가 표준 플랫폼'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대한항공은 단순히 UAM을 운항하는 항공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하늘길을 이용하는 모든 UAM 사업자에게 관제 솔루션을 제공하고 라이선스 수익을 얻는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다. 이는 21세기 모빌리티 혁명 속에서 전통 항공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이고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 모델 전환이 될 수 있어 이번에 공개된 두 건의 특허는 변화할 미래 교통 환경을 대비하는 대한항공의 첫 번째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돼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