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위, 기업 제소에 中 부틸아크릴레이트 반덤핑 조사 돌입
中 밀어내기, 국제수요 감소로 실적 악화·구조조정 위기 반영
반덤핑 제소로 산업 보호 인식 확산…통상환경 변화도 작용
中의존 중소기업 반발 변수…“정부, 무역구제 적극 응해야”

▲전남 여수에 위치한 LG화학 용성공장의 전경. 사진=LG화학
부틸 아크릴레이트 제품을 시작으로 중국산 저가 물량에 무역 제소로 대응하려는 국내 석유화학(석화)업계의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기초소재의 경우 가격 경쟁력에 밀려 한계에 다다른 가운데 무역 제소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라는 판단에서다.
동시에 석화업계의 숨통을 트고 국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선 중국산 저가 물량의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철강업계의 사례처럼 해당 업계와 당국이 무역 제소와 조치에 적극 나서야 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와 석화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부틸 아크릴레이트 제품에 대한 무역위의 반덤핑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LG화학이 지난 7월 무역위에 반덤핑 제소를 낸데 따른 것이다. 무역위는 지난달 29일 이에 대해 반덤핑 조사 필요성을 검토해 신청을 받아들였다.
LG화학이 무역위원회에 낸 반덤핑 조사 신청서에 따르면, 2021년 대비 2024년 부틸 아크릴레이트의 내수 물량은 약 7.5% 줄고, 판매 물량은 30% 넘게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입 물량은 25% 가까이 늘고, 수입 금액은 17.5% 줄었다. LG화학이 계산한 중국산 제품의 덤핑률은 19.17%다.
부틸 아크릴레이트는 아크릴산과 부탄올을 원재료로 만든 고분자 유기화합물로, 점착제나 접착제, ASA 수지, 도료, 아크릴 수지 등의 원료로 쓰인다. 물질이 유리 같은 상태에서 고무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상태로 변화하는 온도인 유리전이온도가 낮아 내구성을 강화해준다. 부틸 아크릴레이트는 국내 석화기업 가운데 LG화학이 유일하게 생산 중이다.
LG화학 측은 신청서를 통해 “저가 수입의 지속적인 확대는 국내 유일의 생산자인 LG화학에게 심각한 수준의 출혈 경쟁을 강요했다"며 “현재와 같은 시장 구조가 유지될 경우 국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LG화학은 다른 제품도 무역위에 반덤핑 조사를 신청할지 검토 중이다.
이번 제소로 석화업계가 반덤핑 조사 신청이 확대될 가능성에 이목이 쏠린다. 중국에서 경기 침체로 석화제품 공급이 과잉 상태에 다다르면서 한국산의 중국 수출은 줄고 저가 석화제품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에 따른 것이다.
석화기업들이 중국을 주요 수출시장의 하나로 삼았지만, 중국이 러시아 등에서 정유제품을 저렴하게 들여오는데다 석화 생산설비를 늘리면서 공급이 과잉 수준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기초 제품인 에틸렌의 경우, 중국 내 자급률이 지난해 기준 95%에 달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국내 주요 석화기업들은 2023년부터 영업적자를 기록해왔다. 게다가 지난 8월 정부와 산업계 간 자율협약을 맺어 연말까지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 능력을 18~25% 감축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의 적극적인 반덤핑 제소가 중국발 저가물량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철강업계 사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철강사들도 중국발 저가 밀어넣기 공세를 겪으며 중국산 열연후판을 시작으로 봉강, 도금강판 등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냈다. 정부는 무역위 조사를 거쳐 중국산 열연후판에 반덤핑 예비 판정을 내린 올해 초부터 30% 내외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고, 지난 8월 덤핑에 따른 국내 산업 피해가 있었다고 최종 판정했다. 반덤핑 대상이 된 중국 수출기업들은 가격을 올려 수출하기로 약속했다.
다만,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데다 국내 석화기업들이 일정 부분 중국산 소재에 의존하고 있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가령, 한화토탈과 여천NCC는 지난해 중국산 스티렌모노머에 대해 무역위에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지만, 국내 석화업계의 반발 여론을 의식해 철회한 적이 있다. 스티렌모노머는 합성수지와 합성고무의 필수 원료로, 국내에서는 한화토탈과 여천NCC가 생산해 왔다. 스티렌모노머를 사들이는 다른 석화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때문에 중국산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어 크게 반발한 결과였다.
업계는 최근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하는 기조로 여건이 달라졌다는 점을 주목한다. 세계 각국이 경제 안보를 내세워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맞춰 한국도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석화산업의 대중 수출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달 초 자국 석화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 개발과 양산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그간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정부가 관세 부과 같은 무역 조치에 소극적이었지만, 통상질서가 바뀌면서 산업계가 받는 현실적 피해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이었던 석유화학이 저가 수출물량으로 최근 4~5년 사이 어려움을 겪어온 만큼 정부가 기업의 반덤핑 조사를 비롯한 무역구제 신청에 적극 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