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효 기후에너지부장.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마무리됐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중국, 일본 등 21개국 정상들이 모여 경제 협력을 약속했다. 우리나라도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미국과 중국의 관세협상 타결이었을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대중국 관세를 100% 이상으로 높이겠다며 으르렁댔다.
그러나 경주에서 타결된 미중 관세협상 결과를 보면 전혀 딴판이다. 미국이 최종적으로 매긴 대중국 관세는 20%에 불과하다. 처음에 주장했던 100%는 고사하고 한국, 일본 등 최혜국에 매긴 15% 관세와도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미중 관세협상은 중국의 완승이란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시진핑 주석에 대해 “미국의 눈을 깜짝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평가했다.
세계 각국이 모두 미국에 쩔쩔 맬때 중국은 단 하나의 카드로 미국에 맞섰다. 바로 희토류 수출 통제다. 희토류(Rare-earth element)는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우는 핵심광물이다. 반도체, 우주항공, 군수, 첨단전자제품, 재생에너지, 석유화학 등 안 쓰이는 곳이 없다. 이렇게 귀한데, 거의 전량이 중국에서 밖에 생산되지 않고 있다.
희토류는 지구상에 부존량은 풍부하지만 지각 내 함유량이 매우 적어 상업적 생산량을 얻으려면 엄청난 면적의 땅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추출, 분리 과정에서 독성이 매우 강한 황산 물질을 대량 사용해야 해 환경오염도 심각하게 발생한다. 중국이 희토류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받은 적은 없지만, 대중국 수입의존도가 워낙 높아 항시 불리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한국, 미국, 일본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위협에 대처하는 방법이 매우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희토류 확보를 위해 자국 내 희토류 광산 개발 및 생산을 장려하고, 나아가 정부가 개발사의 지분을 사들이도록 지시했다.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미국은 일본, 호주와 희토류 동맹까지 맺었다. 미국과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으로 호주에서 희토류를 생산해 자급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 동맹에서 일본을 눈여겨 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미국과 호주 간의 협력인데, 일본이 끼어 있다. 이것은 희토류 개발과 생산에서 일본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일본은 2010년 중국과의 센카쿠열도 분쟁 이후 희토류 확보를 위해 칼을 갈았다. 비록 자국에서 희토류 생산은 못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기 위해 매장량 확보와 함께 정제련 기술까지 고도화했다. 일본이 동맹에 끼게 된 배경이다. 그 핵심 역할을 일본의 자원개발 공공기관인 조그멕(JOGMEC)이 맡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전혀 엉뚱한 대책을 세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10월 중순 범정부 희토류 TF를 구성하고 희토류 확보에 나섰다. 정부 전략의 핵심은 재자원화다. 희토류가 들어간 폐제품을 리사이클링을 통해 희토류 등 핵심광물을 추출해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10대 전략 핵심광물 재자원화율 20%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리사이클링만으론 국내 수요를 충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경제성도 맞추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국내외 광산을 통해 확보하는 것을 우선으로하고, 리사이클링은 부차적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희토류 확보 전략이 리사이클링으로 간 것은 상당히 잘못됐고, 실책이다. 자원개발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미국과 일본이 그랬듯 희토류 확보는 공공기관밖에 할 수 없다. 우리도 자원 공기업이 확보할 수 있도록 해외진출 족쇄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