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정리에서 로컬 콘텐츠 기업으로…안동 청년들이 만든 ‘천국박스’의 성장 스토리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11.25 08:55

안동=에너지경제신문 정재우 기자 안동에서 출발한 청년기업 ㈜천국박스가 유품 정리라는 고된 현장을 '로컬 스토리 IP'로 재탄생시키며 새로운 창업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2025 경북콘텐츠코리아랩(경북CKL) 콘텐츠 업 지원사업'의 성과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지역 기반 창업 생태계에도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남겨진 물건을 넘어 '마음의 자국'을 정리하는 직업



남겨진 물건을 넘어 '마음의 자국'을 정리하는 직업

▲경북도 청년기업 천국박스 팀원들

누군가의 삶이 멈춘 자리에는 정리되지 못한 물건과 그 앞에서 갈피를 잃은 가족의 마음이 남는다.


이 힘겨운 순간을 대신 마무리해 주는 존재가 천국박스다.



이들이 바라보는 유품 정리는 단순한 청소나 폐기 작업이 아니다. 창업자들은 직업의 의미를 '남겨진 마음을 정돈하는 일'로 정의한다.


천국박스의 업무는 △유품 정리 △빈집 정리 △특수청소 △방역 및 유품 소각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특히 유품 소각 과정은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는 절차인 만큼, 물건 하나에도 고인의 삶을 먼저 떠올려야 하는 최고 수준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청년들이 이 직업을 선택하고 해석해 낸 방식이 기존의 인식과 판이하게 다른 이유다.



▲고령화·고독사 증가한 북부권…청년기업이 비어 있던 수요 채워


유품 정리에서 로컬 콘텐츠 기업으로…안동 청년들이 만든 '천국박스'의 성장 스토리

▲단행본 언박싱 라이프

경북 북부권은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고독사 증가, 장기간 방치된 빈집 확산 등으로 유품 정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전문화된 서비스는 부족했고, 정리·소독·폐기 과정이 표준화되지 않아 유족들이 느끼는 불편도 컸다.


천국박스는 이러한 지역 문제에 응답했다.


모든 작업 프로세스를 매뉴얼화하고, 전 인력을 청년 전문 인력으로 구성해 안정성과 신뢰도를 높였다. 2025년 안동 산불 이후 피해 가정의 유품 정리와 공간 복구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이들의 역할은 지역사회에서 한층 주목받기 시작했다.


경북CKL이 이들을 '청년기반 로컬 창업사례'로 선정해 지원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현장이 '창작물'이 되다


이번 경북CKL 지원을 통해 천국박스는 자신들이 마주했던 수많은 현장 경험을 스토리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그동안 말로만 전해지던 청년 유품정리사의 세계가 기록물로 남기 시작한 것이다.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결과물은 △60매 분량의 에세이 원고 △28컷으로 구성된 인스타툰 △현장 분위기를 담아낸 북트레일러 등이다.


이 콘텐츠들은 단순한 회사 홍보물을 넘어, 실제 유품정리사가 바라본 삶과 죽음, 남겨진 가족의 마음을 기록한 로컬 스토리로 완성되었다.


결국 '언박싱 라이프 청년 유품정리사들의 이야기'라는 책으로 출간되며 전국 서점에서 독자와 만나고 있다.


스토리 IP는 전자책, 해외 번역판, 다큐멘터리 제작, 교육 프로그램, 굿즈 기획 등으로 확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천국박스는 이제 정리 서비스 기업을 넘어 '현장 기반 지역 스토리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무리 서비스'의 문화 자체를 재정의하는 변화


천국박스가 만들어낸 변화는 단순한 업종 성공 사례를 넘어선다.


정리 기준의 표준화, 감정 노동에 대한 직업적 존중, 장례 이후 과정을 돌봄으로 연결하려는 시도, 청년 중심의 새로운 직업 생태계 조성 등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 정립되지 않은 '마무리 서비스' 문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유품 정리는 한 개인의 삶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을 다루는 일인 만큼, 서비스의 품격을 높이는 기준을 현장에서 먼저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역의 이야기를 콘텐츠로"…경북의 창업 모델 새로 쓰다


이종수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장은 “지역 창업은 더 이상 생존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며 “천국박스는 청년의 시선으로 지역의 현실을 해석하고, 이를 콘텐츠라는 새로운 언어로 바꿔낸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경북CKL은 앞으로도 지역에서 태어난 창의적 스토리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한 청년기업의 시도는 유품 정리를 단순한 노동이 아닌 '이야기'와 '기록'으로 확장시키며 지역 창업 생태계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고인의 삶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일은 이제 콘텐츠 산업과 맞닿아 지역에서 가장 현실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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