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개월 공기 한계 드러나자 정부 공기 106개월로 늘리고 공사비도 조정
대우건설 ‘새 컨소’ 중심축으로 부상…대형사들도 참여 적극 검토
롯데·한화도 참여 검토 본격화 대형건설사 판짜기 재가동
전문가들 “공기 늘어도 지반·환경 변수는 그대로” 2035년 개항 가능성에 회의적
▲가덕도신공항 이미지. 사진=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홈페이지 캡처
정부가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의 공사기간을 늘려 입찰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건설업체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기존 현대건설이 지난 5월 공기 부족을 이유로 자진 이탈한 후 '간을 보던' 대형 건설사들이 정부의 조율로 조건이 마련됐다. 주택 시장의 끝없는 침체로 불황에 시달리던 건설업체들 입장에선 오랜만에 토목·인프라 공공 공사에서 대박을 터뜨릴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일단 현대건설의 컨소시엄에 포함됐던 대우건설이 토목 1위 실적을 앞세워 경쟁에 나선 가운데, 롯데건설과 한화 건설부문도 입찰 참여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전히 공사의 본질적인 문제인 공기 부족·지반침하 가능성 등 핵심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새로 정한 2035년 개항 목표 조차 낙관적이라면서 아예 사업 타당성 검토부터 새로 해야 한다는 이들또 있다.
기술 리스크에 막힌 가덕도신공항…추진 절차 다시 처음부터
가덕도신공항 논의는 박근혜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동남권 신공항 검토 끝에 김해공항 확장안을 선택했지만, 산악 관통 비행과 군·민 공역 중첩, 소음 등 안전·환경 논란이 해소되지 않으며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무총리실 검증위가 2020년 김포공항 확장안에 대해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리면서 사실상 백지화됐고 가덕도신공항 신설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국회가 2021년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제정하며 사실상 추진이 확정되고 사업의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특별법은 예타 면제, 인허가 단축 같은 신속 추진 장치를 담고 있었고, 국토교통부는 기본계획·사업비·공사 방식을 확정하며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전제로 한 해 빠른 2029년까지 개항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문제는 지나치게 짧은 공기였다. 바다를 매립하고 그 위에 부지를 조셩해야 하는 까다로운 공사를 이례적으로 8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마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 부실공사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가덕도는 두꺼운 연약지반이 분포한 해상 매립지다. 따라서 '성토–압밀–계측–안정화' 과정이 필수임에도 기존 계획에는 안정화 계측 기간이 거의 반영되지 않아 위험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4차례에 걸쳐 입찰이 무산된 후 지난해 12월 공사를 따낸 현대건설마저도 정부의 84개월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108개월 이상을 달라고 주장했다. 해상 매립지에서 성토 직후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면 활주로·구조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국토부가 기존 계획을 유지하자 현대건설은 지난 5월 수백억 원 규모의 기본설계 권리까지 포기하며 컨소시엄을 이탈했다.
현대건설의 이탈 이후 포스코이앤씨, 대우건설 등 다른 참여사들도 사업성·공기 리스크를 이유로 참여 여부를 꺼리면서 사업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현 공기 기준으로는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해졌고, 국토부 역시 일정 재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국토부도 기존 산정의 한계를 사실상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21일 공기·공사비 조정 방침을 발표한 김정희 국토부 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장은 “성토 후 안정화 계측·검증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며 “공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안정화 시간을 포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결국 84개월 공기가 비현실적이었다는 점을 공식화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토목 1위 대우건설, 가덕도 '새 판짜기' 전면에…롯데·한화도 본격 가세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은 상태에서 모처럼 10조원대 초대형 인프라 건설 공사가 시장에 나오자 대형선설업체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일단 차기 주관사로 대우건설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기존 컨소시엄에서 현대건설(25.5%)에 이어 18% 지분을 가진 사실상 2대 주주였던 데다, 해상·연약지반 공사에 특화된 시공 이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거가대교 해저침매터널(총 3.7km, 180m 함체 적용)처럼 외해·대수심 조건에서 세계 기록을 세운 고난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시화호 조력발전소·부산항·부산신항·이라크 알 포 방파제 등 초대형 해상·항만 공사를 잇달아 성공시킨 이력도 있다. 2023·2024년 국토부 시공능력평가에서도 2년 연속 '토목 실적 1위'를 기록하며 기술력을 다시 확인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국책 초대형 토목사업은 실적과 경험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며 “조건이 이전보다 나아진 만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관망하던 롯데건설·한화건설도 참여 검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는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내놓았고, 롯데건설 역시 “공기 연장이 판단에 우호적으로 작용한다"며 기존 컨소 참여 방안을 논의 중이다. 두 회사 모두 공사비 10조 원대의 초대형 SOC 수주 기회를 매력적으로 평가해 왔으며, 리스크 완화로 참여 여건이 한층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롯데건설은 가덕도 접근철도 1공구를 이미 수주해 지역 인프라 공사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롯데그룹이 부산·경남권에 보유한 유통·레저·물류 네트워크를 고려하면 공항 개항 시 직접적인 수혜도 기대된다. 한화 건설부문은 해양 매립·발파 등 대형 토목 경험이 강점으로 꼽히며, 그룹의 방산·항공우주 사업 확장성과 연계한 시너지 가능성도 언급된다.
▲대우건설이 시공한 거가대교 침매터널. 거가대교 침매터널은 총 3.7km 구간에 180m 길이의 함체를 적용해 외해·최대 수심 시공 등 5개 세계 신기록을 세운 대표 해상 토목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사진=대우건설
공기 늘렸지만…전문가들 “가덕도 리스크 여전"
정부가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조정하며 가덕도신공항 재추진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여전히 냉담하다. 표면적으로는 공기 연장과 사업비 조정으로 기술적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연약지반·해상매립 특성상 예측 불가능한 침하·균열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해상 매립지의 가장 큰 문제는 설계 단계에서 알 수 없는 변수가 시공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라며 “특히 가덕도처럼 수심 변화가 급격하고 회류가 강한 구간은 장기적으로 구조물 변형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가덕도 해역의 물리적 조건이 일반 매립지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덕도와 영도 사이 낙동강 하구는 물살이 돌아나가는 회류 구간이어서 성토 구조물에 지속적인 횡력(橫力)이 작용한다"며 “이런 곳에서는 활주로나 방파제 같은 중량 구조물도 장기 침하·균열 위험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기 연장이 불가피했지만, 이 조정이 모든 기술 리스크를 해소하는 '해결책'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 같은 우려는 다른 대규모 매립·연약지반 공사에서도 이미 현실화된 바 있다. 인천국제공항 영종도 매립지는 개항 후에도 활주로·계류장 일부에서 부등침하가 반복돼 수년간 보강·재포장을 이어왔고, 지금도 수백 개의 계측기를 통해 지반 상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 새만금 매립지 역시 도로·항만·산업단지 곳곳에서 침하·균열·피복석 붕괴 등이 발생해 국토부와 전북도가 반복 보수 작업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활주로와 여객청사 주변 침하로 인해 '운항 중단 → 보수 → 재운항'이 반복된 사례로 꼽힌다. 조 교수는 “이들 사례는 해상·연약지반 공사가 설계상 가능해 보이더라도, 실제 시공 단계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공기가 늘어나고 유지관리비가 증가하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2035년 개항 목표의 현실성을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덕도는 환경·행정·정치적 변수가 얽힌 복합사업이기 때문에 단순히 공기를 늘렸다고 해서 일정 안정성이 확보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환경영향평가, 철새 도래지 보전, 어업권·보상 갈등, 지자체·중앙정부 간 조율 등 지연 요인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이어 “2035년 개항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상당히 낙관적인 일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초기 설계·평가·보상 절차가 한 번만 흔들려도 수년 단위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