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장관 26일 여수산단 찾아 기업에 ‘경고’
NCC 감축 자구안 제출 늦어지자 직접 압박 메시지
대산단지 롯데-HD현대 빅딜 계기 여수·울산 ‘고삐’
“자율 합의로 경쟁력 복원 청신호…통합지원 필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6일 전남 여수시 LG화학 산업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부
충남 대산 국가산업단지 내 석유화학(석화) 생산설비 통폐합 합의가 이뤄지자 정부가 오는 12월 석화산업 재편 시한을 앞두고 고삐 조이기에 나섰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6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LG화학 석화설비 현장을 찾아 둘러본 뒤 산단 입주 석화기업 경영진과 '여수 석유화학기업 사업재편 간담회'를 가졌다.
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나프타분해시설(NCC)을 보유한 석화기업의 사업재편 시한이 임박한 만큼 신속한 사업재편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특히, 기업별 자구안 제출 시한을 넘기면 정부와 금융권이 약속한 종합 패키지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아 석화업계에 사실상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김 장관은 “정부가 지난 8월에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발표한 사업재편계획서 제출 기한은 12월 말이며, 이 기한을 연장할 계획은 없다"며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어 “이 시한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은 정부지원에서 제외될 것이며, 향후 대내외 위기에 대해 각자도생해야 할 것"이라며 참석기업에 경각심을 불어넣었다.
정부는 지난 8월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방향'을 발표하며 석화산업 구조개편 3대 방향으로 △설비축소·고부가화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를 제시했다. 특히 울산과 충남 대산, 전남 여수 등 3대 석화단지에서 기초 유분인 에틸렌 생산 능력을 270만~370만톤을 감축하는 목표치를 내놓았다.
여수산단 석화업계 간담회에서 정부의 강한 입장은 같은 날 대산산업단지 NCC 생산설비 감축에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합의하면서 석화산업 구조조정에 신호탄이 켜졌다는 움직임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업계는 해석한다.
롯데와 HD현대 두 기업은 대산단지의 석화설비 감축 합의로 이날 산업통상부에 기업활력 제고 특별법에 따른 사업재편계획 승인 심사를 신청했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물적분할한 뒤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고, 이후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의 HD현대케미칼 지분을 40 대 60에서 절반씩으로 맞추는 내용이 핵심이다. 가동중단 설비와 규모 같은 구체적인 통폐합 방안을 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유관 기관의 기업결합 심사를 거친 뒤 추가 논의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충남 대산 산업단지에서 생산설비를 구조조정하는 사업 재편안을 설명한 개념도. 사진=공정거래위원회
현재로서는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내 연산 110만톤의 NCC를 멈추고, 에틸렌을 연간 85만톤 생산하는 HD현대케미칼에서 기초유분 생산부터 고분자 소재(폴리머)까지 생산 구조를 효율화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대로 가면 에틸렌 생산능력 감축 목표의 약 30%를 채우게 된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업 재편안을 통해 NCC 설비의 합리화 및 일원화된 생산 운영체제가 구축될 예정"이라며 “고부가 및 친환경 사업 구조로의 전환도 병행하며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산과 달리 여수와 울산 두 석화산단의 사업 재편 논의는 복잡한 셈법을 마주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생산설비 폐쇄라는 손실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면서 “석화 산업 구조조정은 결국 어느 기업이 NCC를 폐쇄하느냐를 결정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연간 에틸렌 생산 능력이 총 627만여톤인 여수 산단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 간에는 외부 컨설팅 기관을 선정해 논의 중이다. 롯데케미칼과 여천NCC도 재편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여천NCC 지분을 절반씩 가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측이 의견 차이부터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울산 산단은 에틸렌 생산 능력이 174만톤으로 작지만, 에쓰오일이 내년 상반기 준공하는 샤힌 프로젝트가 최대 변수다. 샤힌 프로젝트가 상업 가동을 개시하면 연산 180만톤의 에틸렌 생산 능력이 추가되지만, 에쓰오일이 생산 효율을 높인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재편안 논의가 복잡해졌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롯데와 HD현대라는 기업 당사자가 협의해 사업 재편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석화 경쟁력 복원에 대해 의심할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기업들의 사업 재편안을 기다리지 말고 구조재편 대상 기업들이 고통을 덜 수 있는 '공통의 당근'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남은 석화산업 구조재편도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