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영의 아파토피아] 결혼도 끼리끼리…‘아파트 계급사회’ 시작됐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12.08 10:47

[편집자주] 대한민국 가구 중 절반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토피아는 우리가 왜 아파트에 집착하는 지 알아 보기 위해 서울의 인기 있는 주요 아파트단지들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다. 또 아파트와 관련한 주요 이슈나 현안을 분석·해설해주고 전문가나 화제의 인물을 만나 직접 얘기도 들어 본다. <10> 고가 아파트 주민 전용 결혼중매, 결혼 트렌드 대세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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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단지 문주 전경. 삼성물산 건설부문

“반포 원베일리 결혼정보모임회(원결회) 노빌리티는 반포 원베일리에 거주하는 입주민간에 결혼적령기를 둔 부모, 가족, 당사자, 싱글 모임입니다. 강남 서초권의 대단지 아파트 내 입주민들의 미혼자녀들의 결혼을 지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결혼정보업체입니다. 한 동네에서 같은 문화와 정서를 공유하며 자라난 친구들의 결혼을 지원하고 있으며 만남부터 결혼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합니다"


이 문구는 원결회 노빌리티 카페에 기재된 소개글이다. 이 카페는 지난 2023년 12월 래미안 원베일리 입주민 카페 내 소모임으로 시작됐다. 래미안 원베일리 입주민 중 미혼 자녀를 둔 주민들 간에 소개팅을 통해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모임이었다.


원결회는 2024년 3월 첫 정기 모임을 가진 이래 그해 10월 첫 결혼 커플이 나왔다. 2024년 5월엔 입주민 카페에서 독립해 원결회 단독 카페가 만들어졌다. 원결회는 결성 2년여가 지난 2025년 12월 현재까지 11번째 커플이 결혼에 성공했다.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에서 입주민 간 결혼 중매 서비스가 시작됐다는 소식은 세간에 큰 화제가 됐다.



래미안 원베일리는 국내 최고가 아파트라는 상징성이 높은 단지다. 전용면적 84㎡(34평)이 올해 6월 72억원에 팔리면서 '평당 2억 이상' 아파트의 시대를 열었다. 이런 고가 아파트에서 입주민 자녀 간 결혼 중매 서비스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여러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부유층간 끼리끼리 문화가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 의견과 함께 이미 결혼 문화가 계층 간 고착화와 부의 대물림을 잇는 수단이 된 마당에 무슨 문제가 되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입주민 카페 소모임이 법인으로…원베일리서 강남·서초 인근 단지까지 보폭 넓혀

래미안 원베일리 입주민 카페에서 미혼 자녀 간 결혼을 추진하는 소모임이 결성되자 입주민 반응은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갈수록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는 현 우리나라 세태에서 래미안 원베일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내 W 부동산 공인중개소 A씨는 “원베일리가 대한민국 대장 아파트로 인정받으면서 입주민들의 프라이드가 아주 높은 편"이라며 “입주민 특성상 고액 자산가들이 많은데 미혼 자녀들이 같이 사는 세대가 상당수라 자연스럽게 입주민 카페 내에서 '우리 자녀들끼리 만나면 어떨까'라는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원결회는 이후 더 확장됐다. 원베일리 입주민과 그 가족만 가입 대상이었는데, 올해 2월부터는 아예 인근 서울 서초구·강남구 거주자로 가입 문턱을 좀 더 넓힌 것이다. '우리도 끼어달라'는 수요가 컸기에 문호를 넓혔다는 후문이다.


A씨는 “반포동 고가 아파트 단지인 아크로리버파크나 래미안 퍼스티지에서도 '우리 애들도 서비스를 이용하면 안 되냐'는 문의가 많았다"며 “원결회 입장에서도 인근 고가 아파트 주민들까지 회원으로 받으면 선택의 폭도 넓혀지니 좋은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원결회는 가입 범위를 넓히면서 올해 7월에는 정식으로 '원베일리 노빌리티'라는 법인을 설립해 결혼정보회사의 길을 걷고 있다. 원베일리 노빌리티엔 이미 600여명의 회원이 가입돼 활동 중이다. 원베일리 노빌리티는 오는 15일 송년모임을 통해 회원간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내년 1월 24일엔 신년모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회원들의 결혼 성사를 추진하고 있다.


“반포끼리만 만나냐"…1만 세대 규모 가락동 헬리오시티도 결혼 중매 서비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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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정문 문주 전경. 임진영 기자

2018년에 12월에 입주한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둔춘주공아파트를 재건축 한 올림픽파크포레온이 2024년 11월 입주하기 전까지 국내 최대 규모 아파트 자리를 지켜온 단지다. 헬리오시티는 9510세대 규모로 준공 당시 국내 유일의 1만 세대 초거대단지 아파트라는 상징성이 컸고, 그만큼 서울 아파트 시장의 시세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자리잡은 단지다.


이런 헬리오시티에서 올해 6월 헬리오 결혼정보라는 업체가 생겼다. 원베일리가 입주민 전용 결혼 서비스를 시작하며 장안의 화제가 되자 헬리오시티 내에서도 같은 목표를 표방하는 입주민 전용 결혼정보회사가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헬리오 결혼정보의 서모 대표는 가락동에서 30년을 거주한 토박이면서 그 자신이 헬리오시티 입주민이기도 하다. 헬리오시티에서 원베일리와 비슷하게 입주민 전용 결혼중매 서비스가 시작되자 단지 내에서 큰 반향이 일었다.


헬리오시티 단지 인근의 H 공인중개사 대표는 “반포 원베일리 입주민 전용 결혼중매 서비스가 사회적으로 유명세를 탄 비슷한 시점에 헬리오시티에서도 입주민들 간에 '우리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원베일리만큼 비싸진 않지만 1만 세대 규모의 미니 신도시급 아파트에 국평이 30억 넘어가는 나름 고가 아파트인만큼 단지 내에서 사돈을 맺으면 좋겠다는 주민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헬리오시티는 10·15 대책으로 인한 3중 규제에도 불구하고 신고가를 경신하는 등 탄탄한 수요를 자랑하고 있다. 규제 전만 해도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 10월 거래가는 29억원대 수준에서 거래되면서 결국 30억 선을 뚫지 못한 채 대책이 발표됐다. 이에 당분간 '헬리오시티 국평이 30억을 넘기엔 틀렸다'는 전망이 다수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과 달리 헬리오시티는 오히려 규제 시행 이후인 11월 1일 30억4000만원에 신고가를 경신한 데 이어 같은 달 5일엔 30억7500만원에 최고가를 찍으면서 당국의 규제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단지다.


H 공인중개소는 “헬리오시티가 반포동 신축 재건축 아파트만큼 국평이 50억에서 70억을 넘는 초고가 단지는 아니지만 규제 이후에 오히려 국평이 30억원을 뚫는 등 정부 규제에도 수요가 워낙 높다"며 “주민들도 이런 현실을 그 누구부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1만 세대라는 상징성이 워낙 희소해 입주민들 사이 아파트에 대한 사랑은 왠만한 강남 아파트에 절대로 꿇리지 않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사돈 맺자'라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단지 내 상가에 위치한 헬리오 결혼정보도 래미안 원베일리의 원결회와 마찬가지로 출범 초기엔 헬리오시티 입주민만을 대상으로 결혼 중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입소문을 타고 단지 내에서 화제가 됐고, 헬리오시티 인근에 1만 세대가 넘는 올림픽파크포레온(올파포)에서도 가입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최근엔 헬리오 결혼정보 역시 올파포를 비롯해 송파와 강동, 강남 등 대단지 아파트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가입 문호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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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단지 내부 전경. 임진영 기자

헬리오 결혼정보 관계자는 “아직 업체 등록을 하고 정식 활동을 한지는 실제로 4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 현재까지 실제로 결혼이 성사된 커플은 없다"면서도 “단지 내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문의가 끊이지 않아 벌써 회원 수가 300명을 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초기엔 헬리오시티 입주민이 대부분이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인근의 포레온은 물론이고 개포자이 등에서도 회원으로 등록해 활동 중"이라며 “헬리오시티 입주민들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백그라운드는 증명된 것 아니냐. 회원들 간 커플은 이미 상당히 많고 만남을 이어가면서 서로 간에 느끼는 만족도 역시 높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리그'냐, 자연스러운 '동질혼'이냐 끊이지 않는 논란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와 가락동 헬리오시티에서 입주민을 대상으로 한 결혼 중매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대한민국의 아파트가 개인의 신분·부의 상징은 물론 결혼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까지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베일리와 헬리오시티는 각각 우리나라 최고가 아파트의 상징이자, 1만 세대 최대 규모 대단지 아파트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단지들이다. 이런 아파트들에서 결혼 중매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아파트가 비슷한 부와 소득 수준을 갖춘 사람들끼리 혼인 관계를 맺는 문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 압구정현대 아파트, 잠실의 대단지 아파트 등에서도 비슷한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강남을 대표하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 도곡 타워팰리스에서도 단지 내 주민간 결혼 정보 서비스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동질혼' 문화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동질혼 현상은 여전히 주요 선진국보다 낮은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2023년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득 동질혼 지수는 분석 대상 34개 주요국(OECD 33개국 및 대만)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동질혼은 급격히 늘어나 대세가 되고 있다. 출산율과 결혼율이 세계 최저치를 기록하는 것도, 동질혼이 아니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MZ 세대의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면서 “한국의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결혼 중매 서비스의 시작은 동질혼 현상을 더욱 부채질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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