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인 전면에…박대준 대표 사임, 모회사 법무총괄 후임
집단소송·경찰 압수수색·정치권 엄벌론 ‘법적 리스크 고조’
17일 국회 청문회, ‘출석 불투명’ 김 의장 방패막이 관측도
쿠팡㈜ 임원 절반·주요 계열사 대표 ‘전·현직 법조계’ 출신
고객정보 유출 공개 전후 변호사 모집 공고, 법무 인력 강화
▲지난 10일 한국 쿠팡 임시 대표로 선임된 해롤드 로저스 미국 쿠팡 Inc. 최고관리책임자 겸 법무총괄. 사진=쿠팡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태로 위기를 맞이한 쿠팡주식회사가 새 대표이사로 미국 본사(쿠팡 Inc.) 출신의 법률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여론의 질타 속 쿠팡을 둘러싼 국내외 집단소송 움직임이 확산되는 데다, 대통령이 직접 경제적 제재 현실화를 주문한 만큼 법적 리스크 대응 수위를 강화하는 신호로 읽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열릴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창업주 겸 실질적 오너인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을 대신할 대타 요원을 보낸 것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쿠팡은 지난 10일 박대준 전 대표이사의 사임을 공식화하고, 한국 법인(쿠팡주식회사)의 임시 대표로 해롤드 로저스(Harold Rogers) 미국 쿠팡 Inc. 최고관리책임자 겸 법무총괄(CAO&General Counsel)을 선임했다. 그는 김범석 의장과 같은 하버드 출신으로 법률·준법경영 전문가로 알려졌다.
임시 대표 부임을 계기로 사태 수습과 조직 안정화, 고객 불안감 해소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것이 쿠팡 측의 설명이지만, 시장에서는 갑작스런 대표 교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쏟아진다. 업계는 법률 전문가인 모회사 임원이 직접 등판한 만큼 사법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임시 대표 특성을 반영해 쿠팡이 법리적 대응에 무게를 두고 전보다 방어적 태도를 보일 것"이라며 “기업 내 법무팀 파워가 클수록 의사결정 과정에서 검토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대외적 소통 과정에서 경직되는 경향도 더 강해진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로저스 임시 대표는 김 의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로서 대표 교체 과정에서 김 의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또한, 본사 차원의 '책임 경영' 이미지를 강조하는 의도가 읽히는 한편 책임 회피용 방패막이 인사라는 시선도 적지 않다.
오는 17일 예정된 국회 청문회에서 임시 대표를 대신 내보내 사실상 실질적 오너인 김 의장의 출석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업계 분석이다. 이번 청문회에는 로저스 임시 대표를 비롯해 김범석 의장, 강한승 전 대표, 브래드 매티스 최고보안책임자, 민병기 부사장, 조용우 부사장 총 7명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현재까지 김 의장의 청문회 출석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한국 쿠팡에 대한 로저스 임시 대표의 이해도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청문회 동안 통역까지 요구돼 시간이 지체될 것으로 짐작되면서 별다른 소득 없는 청문회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9일 오후 압수수색이 진행중인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상자를 들고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
지난 9일을 기점으로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에서는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에 따른 '쿠팡 엄벌론'을 꺼내들면서 법적 리스크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한 경제적 제재 현실화를 강하게 주문하고 나섰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기업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인정될 경우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세종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라"고 말했다. 다음 날 개최된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송경희 개인정보위원회 위원장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국내를 넘어 미국 본사를 향한 대규모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번지면서 쿠팡 입장에선 또 다른 변수로 남는다.
최근 법무법인 대륜은 미국 현지 법인인 SJKP를 통해 쿠팡 Inc.를 상대로 뉴욕 연방 법원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이 활성화 된 미국에서 소송이 벌어질 시 쿠팡 입장에선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업계는 풀이한다.
국내에서도 법무법인 청을 비롯해 LKB평산, 지향 등 여러 로펌들이 피해자를 대리하기 위한 집단소송을 예고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국내법체계상 집단소송 제도가 증권거래와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제한돼 있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집단소송 제도는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도 정작 개인별 손해를 측정하기 어렵고, 1인 당 손해배상 금액이 예상보다 적을 것을 우려해 소를 제기하거나 법적 분쟁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다만, 이 같은 폐해를 그대로 두면 소비자 후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관계자는 “집단 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잘못을 저지른 기업·조직을 상대로 많은 금액을 물려 같은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며 “나아가 소를 제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몫까지 배상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범석 쿠팡 의장. 사진=연합
쿠팡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Inc.가 한국 법인 '쿠팡주식회사'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형태로, 모회사 의결권의 70% 이상을 김 의장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쿠팡은 일반 유통업체와 달리 한국 쿠팡을 중심으로 물류·배달·배송·PB(자체 브랜드)·핀테크 사업 등을 맡는 전 계열사가 수직계열화된 구조다.
이를 통해 쿠팡은 밸류체인을 효율적으로 통제해 이윤을 극대화해왔다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그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를 반복하며 허술한 관리 체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동안 쿠팡은 정부·국회·법조계·언론계 전방위로 대관 라인을 구축하며 로비·인맥으로 각종 논란을 틀어막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직전 대표였던 박대준 전 대표 역시 LG전자·네이버에서 대관 업무를 담당했던 대관 출신이다. 한 술 더 떠 쿠팡은 법적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법조·전관 인사를 집중 채용해왔다는 의혹도 받았다.
쿠팡 주력 계열사의 핵심 임원진만 살펴봐도 관련 사업에 대한 전문가보다 법조계 인사들의 경영 참여가 두드러졌다. 올 6월 기준 쿠팡의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를 살펴본 결과, 쿠팡주식회사 임원 6명 중 3명이 전·현직 법조계 출신으로 이뤄졌다.
강한승 전 쿠팡 대표 겸 이사회 의장이 대표 사례로, 그는 서울고등법원 판사,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을 거쳐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재직하던 당시 쿠팡에 합류했다. 이후 2020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한국 쿠팡 대표를 맡았다. 현재는 모회사의 북미 지역 사업 총괄을 담당 중이다.
유력 계열사의 전문경영인을 법조계 인사로 채워 넣은 점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쿠팡주식회사를 제외한 15개 계열사 중 4개 계열사 대표가 법조계 출신으로 확인됐다. 정종철 쿠팡풀필먼트서비스유한회사 대표,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유한회사 대표, 정찬묵 쿠팡페이주식회사 대표, 김영준 쿠팡파이낸셜주식회사 대표다.
쿠팡이 고객 정보유출 사고 규모를 4500명이라고 축소해 발표했던 지난 11월 20일 전후로도 법무 인력을 채용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쿠팡은 자체 공식 채용 사이트인 '쿠팡 커리어'를 통해 지난 달 11월18일, 이달 2일 각각 기업법무(Corporate legal) 변호사, 커머스 전략(Commerce Strategy) 부문 사내 변호사 채용 공고를 올렸다.
현재 해당 공고문들은 삭제됐으며, 대신 컴플라이언스 전문 변호사·고위급 법률 전문가를 영입하는 공고들은 남아 있는 상태다. 이 밖에 시장에서는 쿠팡 측이 대규모 정보공개 유출 후 공정거래 전담 조직 등을 신설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와 관련해 향후 법적 대응 방향성과 신규 조직 신설 및 대관 인력 충원 여부 등을 물어봤지만, 쿠팡 측은 “따로 회사 입장은 없다"며 말을 삼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