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에너지’ 수소의 역설 - 대기 누출되면 온난화 가속화 역할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12.23 11:16

수소 그 자체로는 온실가스 아니지만
메탄 수명 늘리는 등 화학 반응 진행
누출률 10% 이상이면 감축이익 상쇄


Climate Spain Green Hydrogen <YONHAP NO-2392> (AP)

▲스페인 중부 프에르토야노에 있는 이베르드롤라 사의 녹색 수소공장의 수소 저장 탱크.청정에너지인 수소도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 온실효과를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AP/연합뉴스)


수소(H₂)는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꿈의 에너지'로 불린다. 전력·산업·수송 부문의 탈탄소화를 이끌 핵심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으며, 각국은 수소 경제를 차세대 성장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과학계에서는 수소가 대기 중으로 누출될 경우, 기후 위기를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지구 온난화를 가속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수소는 직접적인 온실가스는 아니지만, 대기 화학 반응을 통해 강력한 '간접 온실가스'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수소는 어떻게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드는가


수소의 기후 영향은 대기 중에서 벌어지는 연쇄적인 화학 반응에서 비롯된다.



노르웨이 시세로(CICERO) 국제기후연구센터의 마리아 산드 박사 연구팀이 지난 2023년 6월 국제학술지 '지구·환경 커뮤니케이션스(Communications Earth and Environment)'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대기로 누출된 수소는 대기의 핵심 산화제인 수산화기(OH)와 빠르게 반응한다.


OH는 흔히 '대기의 세정제(cleanser)'로 불리며, 메탄(CH₄)과 같은 강력한 온실가스를 분해해 대기 중 체류 시간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수소가 증가하면 OH가 수소와 먼저 반응해 소모되고, 그 결과 메탄을 분해할 수 있는 OH의 양이 줄어든다. 이로 인해 메탄의 대기 중 수명이 연장되고, 메탄 농도는 이전보다 더 오래, 더 높게 유지된다.


즉, 수소는 스스로 열을 가두지는 않지만, 메탄이라는 '강력한 온실가스'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간접적으로 지구 온난화를 증폭시킨다.


여기에 더해 수소의 산화 과정은 대기 하층에서 오존(O₃) 생성을 증가시키고, 성층권에서는 수증기(H₂O) 농도를 높여 복사 강제력을 키운다.



이러한 복합 효과가 누적되면서 지표면 온도를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수소의 온난화 효과…CO₂보다 11배 강한 '간접 영향'


수소의 기후 영향은 이미 정량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과의 주타오 오양 박사와 로버트 잭슨 교수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에서 100년의 시간 범위로 계산한 수소의 지구온난화지수(GWP100)를 11 ± 4로 제시했다. 이는 같은 질량의 수소가 100년 동안 이산화탄소보다 약 11배 큰 온난화 효과를 간접적으로 유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리아 산드 박사팀의 연구에서도 수소의 GWP100은 11.6 ± 2.8로 추정돼, 연구 방법과 모델이 달라져도 계산 결과가 상당히 일관되게 나타났다.


특히 단기 영향을 보는 20년 기준 지구온난화지수(GWP20)에서는 수치가 37 ± 15 수준까지 상승해, 수소 누출이 단기간 기후에 미칠 파급력이 매우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2010~2020년, 수소 농도 상승이 기온 끌어올렸다


대기 중 수소 농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약 70% 증가했으며, 2010년 이후 다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오양 박사팀은 2010~2020년 사이 증가한 대기 중 수소가 전 지구 평균 지표 기온을 약 0.02 ± 0.006°C 상승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미미해 보일 수 있는 수치지만, 단일 물질의 간접 효과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문제는 수소가 분자가 매우 작고 가벼워 생산·저장·운송 과정에서 쉽게 새어 나온다는 점이다. 현재 산업용 수소 시스템에서도 평균 약 1% 내외의 누출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소 경제가 본격화될수록 이 누출량은 절대적인 규모에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2010~2020년 기간 동안 전 지구 대기로 공급된(배출된) 수소의 양은 연평균 약 70 Tg(테라그램, 1Tg=100만톤), 즉 7000만톤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배출원은 인간 활동이 아니라, 메탄과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의 광화학적 산화로, 전체의 약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에 화석연료 연소, 정유·화학 공정, 산업적 수소 생산과 이용 과정에서의 누출이 중요한 인위적 배출원으로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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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의 주요 발생원과 흡수원. 인위적(주황색), 자연적(녹색), 그리고 인위적 및 자연적 혼합 발생원(빗금)에 의한 수소의 주요 배출원(위로 향한 화살표)과 흡수원(아래로 향한 화하살표)으로 구분했다. (단위: Tg/년). 주요 발생원으로는 메탄(CH4)과 비메탄 휘발성 유기화합물(NMVOC)의 광화학적 산화, 바이오매스와 화석 연료의 연소, 질소 고정에 의한 수소 생산 등이 있다. 전 세계 수소의 주요 흡수원은 토양 미생물에 의한 소비와 대류권 수산화 라디칼(OH)에 의한 산화다. (자료=Nature, 2025)


◇대기로부터 제거되기도…배출원-흡수원 불균형


대기 중 수소를 제거하는 주요 흡수원은 두 가지다. 첫째는 토양 미생물에 의한 흡수로, 전체 제거량의 약 70%를 담당한다. 둘째는 OH와의 반응이다.


토양 흡수 능력은 지역별 토양 특성과 기후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 수소의 대기 중 수명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이자 동시에 불확실성이 큰 요소로 지적된다.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결론은 분명하다. 수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출된 수소가 문제라는 점이다. 오양 박사팀의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미래 수소 사용량이 급증하더라도 누출률을 1% 이하로 억제한다면 수소 전환을 통한 기후 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누출률이 10% 수준에 이르면, 수소로 인해 발생하는 온난화 효과가 메탄 배출 감축으로 얻는 이익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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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의 총 발생원 및 흡수원의 공간 분포. 위의 그림(a)은 공간적으로 나타낸 총 수소 배출원(왼쪽 위)과 발생원의 위도 분포(오른쪽 위). 아래 그림(b)은 공간적으로 나타낸 총 흡수원(왼쪽 아래)과 위도 분포(오른쪽 아래). (자료=Nature, 2025)


◇수소 '누출률'이 기후 혜택을 결정한다


수소는 분명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중요한 도구다. 그러나 관리되지 않은 수소는 대기 중 메탄의 수명을 연장하는 '온난화 조력자'로 돌변한다.


마리아 산드 박사팀과 주타오 오양 박사팀이 공통적으로 수소 누출을 실시간으로 감지·정량화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생산부터 최종 소비까지 전 주기를 포괄하는 규제와 관리 체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한 이유다.


가정용 배관, 장거리 파이프라인, 저장 시설, 수송 수단 등 수소 활용 영역이 넓어질수록 누출 관리의 난이도는 급격히 높아진다. 이 때문에 수소 경제의 성공 여부는 기술 혁신뿐 아니라, 정밀한 측정과 관리 체계 구축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꿈의 에너지' 수소를 진정한 청정 에너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새어 나가는 작은 양의 수소까지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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