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수요 급증, 이란 사태 등 SMR 역할 부각
전력뿐만 아니라 열·수소 생산까지…“산업 에너지 인프라로 활용”
폐쇄 화력발전소 부지 활용 등 산업단지 중심 확산 전략
▲자원경제학회와 원자력학회가 1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SMR 동향과 국내 추진방향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전지성 기자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등 급증하는 산업 전력 수요를 해결할 핵심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이란발 에너지 공급 리스크가 커지면서 LNG 등 화석연료 기반 전력 시스템의 취약성이 재확인됐다. 이에 장기적으로는 SMR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하고 산업단지 인근에 설치해 전력과 열, 수소를 동시에 공급하는 '산업 에너지 허브'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자원경제학회와 한국원자력학회는 1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SMR 동향과 국내 추진방향'을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열고 글로벌 SMR 개발 흐름과 국내 산업 활용 전략을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태양광·풍력 중심의 전력 체계만으로는 산업용 전력 수요와 계통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고, LNG 역시 연료 가격과 지정학적 변수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원자력, 특히 분산형 무탄소 전원인 SMR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홍종 한국자원경제학회장은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 회장은 최근 유럽에서도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며 “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석유화학 등 주요 제조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며 “AI와 자동화 산업이 확대되면서 막대한 전력 공급과 안정적인 전압·주파수 유지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최성민 한국원자력학회장은 탄소중립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에너지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 철강 산업 등은 대규모 전력을 끊김 없이 공급받아야 하는 동시에 탄소중립이라는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며 “에너지 정책과 기술 개발은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실제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의 수요 관점에서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SMR은 안전성과 유연성을 기반으로 산업단지 인근에 배치할 수 있는 분산형 전원으로 차세대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며 최근 국회를 통과한 SMR 특별법이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정동욱 중앙대학교 교수(전 혁신형 SMR 예타기획위원장)는 혁신형 SMR 개발 사업의 추진 경과를 소개하며 향후 산업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2021년 예비타당성 기획 당시에는 해외 수출을 중심으로 사업을 설계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며 “이제는 국내 산업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떤 제도와 산업 기반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이 대형 원전 개발에서 후발주자였지만 결국 세계 최초 상업 운전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며 “SMR 역시 늦게 출발했지만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SMR, 산업단지 인접 설치 가능한 분산전원"
발표자들은 SMR의 핵심 장점으로 소형화와 모듈화 설계를 꼽았다. SMR은 일반적으로 300MW 이하 규모로 설계돼 산업단지 인근 배치가 가능하며,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해 건설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또 외부 전력 없이 자연 순환만으로 냉각이 가능한 피동안전 시스템을 적용해 안전성이 높으며, 방사선 비상계획구역(EPZ)을 최소화할 수 있어 산업단지 인접 배치 가능성도 높다.
세미나에서는 SMR을 산업 에너지 인프라로 활용하는 세 가지 전략이 제시됐다.
첫째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이다. SMR을 산업단지 인근에 설치하면 송전망 건설 지연 문제를 피하면서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둘째는 공정열 공급과 수소 생산이다. 석유화학·정유 단지에서 필요한 고온 증기를 SMR로 공급하고, 고온 수전해 기술과 결합해 '핑크수소' 생산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셋째는 폐쇄 석탄발전소 부지 활용이다. 노후 화력발전소 부지의 송전망과 냉각수 시설을 재활용하면 SMR 도입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지역 일자리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SMR 경쟁…빅테크도 참여
김한곤 혁신형SMR 기술개발사업단장은 글로벌 SMR 개발 경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가 동시에 확대되고 있으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를 위해 SMR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김 단장은 “SMR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핵심 전원"이라며 “한국도 실증 사업을 통해 상용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훈 KAIST 교수는 SMR이 단순한 발전 설비를 넘어 산업 클러스터 전체의 에너지 시스템을 운영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송전망 포화, 탄소 규제, 에너지 안보라는 세 가지 구조적 변화가 SMR을 필수 인프라로 만들고 있다"며 “SMR은 전력·열·수소를 동시에 공급하는 산업 에너지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SMR을 활용하면 산업단지에서 전력뿐 아니라 공정열과 수소까지 공급하는 '에너지 서비스(EaaS, Energy as a Service)' 모델 구축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박우영 에너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산업단지의 에너지 전환 문제를 SMR 도입의 핵심 배경으로 제시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으로 단일 산업단지에서 GW급 전력 수요가 발생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산업단지는 국내 에너지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또 기존 산업단지 열병합발전 설비는 석탄과 LNG 중심 구조여서 탈탄소 전환 압박이 커지고 있으며, 석유화학·철강 등 열 다소비 산업에서는 전력뿐 아니라 고온 공정열 공급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반도체 공정은 단 1초의 정전도 큰 손실을 초래하는 만큼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시스템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내 SMR 상용화, 부지와 시장 확보가 과제"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 SMR 개발이 기술적으로는 진전되고 있지만 실제 상용화를 위한 정책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실증 부지 확보, 규제 체계 구축, 산업단지 수요 창출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상용화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SMR이 향후 산업단지 전력 공급과 탄소중립 산업 구조 전환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