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몬이란 화학물질 방출해 의사 소통
질산염·미세먼지가 커뮤니케이션 방해
“대기오염이 생태계 대화를 끊는 것”
해충 증가와 식량 부족으로 이어질 수도
▲인도 케랄라에서 촬영된 수컷 다나우스 크리시푸스(Danaus chrysippus)가 페로몬 주머니와 솔 모양의 분비 기관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인간이 배출한 대기오염 물질이 곤충들의 '사랑의 언어'를 방해하고, 그 결과로 생태계 붕괴와 식량 부족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생태·수문학센터의 벤 랭포드 박사와 독일 막스 플랑크 화학연구소의 조너선 윌리엄스 교수, 프랑스 투르대학교의 제롬 카사스 교수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특히 산업화 이후 증가한 대기오염이 곤충의 화학적 의사소통 체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곤충이 사용하는 성 페로몬(pheromone)과 알람 페로몬이 대기 중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 또 오염 조건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물리화학 모델로 계산했다.
페로몬은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 짝짓기, 경고, 먹이 탐색, 집단 행동 같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몸 밖으로 분비하는 화학 신호물질을 말한다.
분석 결과, 특히 밤에 활동하는 나방류가 사용하는 성 페로몬의 수명(공기 중에서 신호 역할을 유지하는 시간)이 심하게 오염된 환경에서는 수십 시간에서 단 몇 분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곤충의 짝짓기 성공률을 급격히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나방의 페로몬 플룸 추적 비행 개념도( Cardé & Willis, 2008; Sakurai et al., 2014를 바탕으로 재구성 )
▲(자료=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2026)
◇성 페로몬은 더 취약하다
곤충이 위험을 알릴 때 사용하는 알람 페로몬은 대체로 분자량이 작고 휘발성이 높다. 쉽게 증발해 공기 중으로 빠르게 퍼지고, 오염 입자에도 잘 달라붙지 않는다.
반면 성 페로몬은 대부분 분자량이 크고 휘발성이 낮은 반휘발성 유기화합물(SVOC)이다. 공기 중에 오래 머물며 멀리 퍼져 짝에게 도달해야 하는 만큼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특히 이중결합을 여러 개 가진 복잡한 구조가 많아 산화 반응으로 쉽게 파괴된다.
연구진은 대기오염이 성 페로몬을 무력화하는 두 가지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① 산화제가 페로몬을 파괴한다
대기 중에는 강력한 산화제인 오존(O₃), 수산화 라디칼(OH), 질산염 라디칼(NO₃)이 존재한다. 라디칼은 전자를 하나 잃거나 얻어서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 다른 분자와 쉽게 반응힌다.
낮에는 OH와 오존이 활발히 작동하지만, 밤이 되면 햇빛이 사라져 OH 생성이 줄어들고 질산염 라디칼이 지배적 산화제로 등장한다.
문제는 많은 성 페로몬이 질산염 라디칼과 매우 빠르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오염이 심한 도시의 밤에는 질산염 라디칼 농도가 청정 지역보다 최대 100배 높아질 수 있다. 이 경우 성 페로몬 분자는 방출 직후 산화돼 구조가 변형되고, 수컷 곤충의 더듬이는 이를 더 이상 짝짓기 신호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쉽게 말해 상대에게 보내는 연애 편지가 도착하기도 전에 글자가 번져 읽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② 미세먼지가 신호를 가로챈다
성 페로몬은 원래 기체 상태로 공기 중에 퍼져야 한다. 그런데 대기 중에 미세먼지나 유기 에어로졸이 많으면 페로몬 분자가 이 입자 표면에 흡착되거나 내부로 스며든다.
그러면 더 이상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체 신호가 아니라 입자 속에 갇힌 비활성 물질이 된다. 곤충의 후각 수용기는 이런 상태의 페로몬을 감지하기 어렵다.
연구 모델에 따르면 고농도 오염 조건(유기 에어로졸 m³당 50 ㎍(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에서는 일부 성 페로몬의 60~90%가 에어로졸에 흡수될 수 있다.
즉 신호가 화학적으로 파괴되지 않더라도 전달되기 전에 '납치'당하는 것이다.
▲(자료=챗GPT 이미지)
◇추운 밤일수록 피해가 커진다
연구진은 특히 기온이 낮은 밤시간대일수록 성 페로몬 신호가 더 빠르게 사라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핵심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화합물의 증기압(vapor pressure)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증기압은 물질이 기체 상태로 존재하려는 성질을 뜻하는데, 온도가 내려가면 이 힘이 약해지면서 공기 중에 떠 있으려는 능력이 감소한다.
분자량이 크고 휘발성이 낮은 반휘발성 유기화합물인 성 페로몬은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기체 상태를 유지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결국 공기 중을 자유롭게 떠다니기보다 주변의 미세먼지나 유기 에어로졸 입자 표면에 달라붙거나 내부로 흡수된다. 일단 입자에 포획되면 곤충의 더듬이가 이를 감지하기 어려워져 사실상 신호 기능을 잃게 된다.
연구팀의 계산에 따르면 밤 기온이 15℃ 이하로 떨어질 경우 성 페로몬의 에어로졸 흡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으며, 특히 5℃의 심한 오염 환경에서는 공기 중에서 유효한 신호로 남아 있는 시간이 90% 이상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정한 환경에서는 수십 시간 동안 유지되던 짝짓기 신호가, 오염되고 차가운 밤에는 불과 몇 분 만에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온대 지역의 봄·가을철 밤, 고산지대, 숲 가장자리처럼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야행성 곤충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지역은 동시에 도시나 산업지대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축적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어, 차가운 공기와 높은 에어로졸 농도가 겹치며 성 페로몬 교란 효과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생태계와 경제에도 큰 파장
이같은 현상은 곤충의 짝짓기 범위를 극적으로 좁힌다. 원래 수 ㎞ 떨어진 상대에게 도달할 수 있었던 신호가 수백 m도 가지 못하고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컷은 암컷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암컷이 어렵게 방출한 신호도 허공에서 사라진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번식 성공률 저하와 개체군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곤충 몇 종의 번식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곤충은 전 세계 농작물 수분(꽃가루받이)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다. 곤충 매개 수분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수천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만약 페로몬 교란으로 수분 매개 곤충 개체군이 줄어들면 과일·채소·견과류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새와 박쥐 등은 화학 신호를 감지해 천척 곤충을 찾아 잡아먹는다. 이 시스템이 붕괴되면 해충 개체 수가 증가하고, 농가는 더 많은 살충제를 사용해야 한다. 이는 생산비 상승과 추가 환경오염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더 근본적으로 곤충은 먹이사슬의 기초를 이룬다. 곤충 감소는 새와 박쥐, 양서류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생태계 전체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를 '인류세의 숨겨진 생태학적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인간 활동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 지질 환경을 지배적으로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미치면서 20세기 후반 이후 새로운 지질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대기질 개선이 인간 건강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통신망을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