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상승하면서 대기 중 수증기 늘어나
찬 공기와 고온다습한 공기 충돌해 폭우로
1년치 강수량의 10%가 1시간에 쏟아져
홍수 발생 시기 달라지면서 대처 어려워져
AI 기반 홍수 예보 도입으로 피해 줄여야
▲지난 9일 충청권에 많은 비가 내린 가운데 세종시 조치원읍을 돌아나가는 조천에 흙탕물이 가득 찼다. 세종시는 이날 오전 상조천교 일대에 홍수주의보를 발령했다. (사진=연합뉴스)
늦게 시작된 올여름 장마가 매섭다. 전국 곳곳에서 폭우가 쏟아지면서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시간당 150㎜ 안팎의 극단적인 호우가 쏟아지는 사례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1년치 강수량의 10%가 1시간에 쏟아지는 만큼 배수시설 등 인프라가 감당할 수도 없는 경우도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강우 패턴이 급격히 변화하고 홍수 발생 양상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한반도는 여름철 극한 강수의 정점 시기가 앞당겨지고 그 강도가 세지는 등 전례 없는 홍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기후 신호등'에서는 최신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변화의 메커니즘과 미래 전망,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정부와 학계의 대책을 종합적으로 짚어본다.
◇글로벌 강우 패턴의 변화와 발생 메커니즘
기후 변화가 강우 패턴을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은 크게 열역학적(thermodynamic) 기여와 역학적(dynamic) 기여로 구분된다. 열역학적 기여는 '클라우지우스-클라페이롱(Clausius-Clapeyron)' 원리에 따라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대기가 보유할 수 있는 수증기량이 약 7%씩 증가하면서 폭우의 잠재력을 높이는 현상을 말한다. 대기 중에 수증기 많아지면 한꺼번에 많은 비를 쏟아내게 된다는 얘기다.
국립기상과학원은 지난 9일 수평 해상도를 1㎞에서 500m로 높여 산출한 '남한 상세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현재(2000∼2019년)보다 1.5℃ 높아지면 연중 비가 가장 많이 내린 24시간 동안의 강수량은 6.4%, 지구기온이 3.0℃ 오르면 22.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5℃와 3.0℃ 상승하면 5일 최다 강수량은 각각 3.6%와 19.0%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역학적 기여는 대기의 수증기를 실제로 비로 바꿔주는 기상 시스템(엔진)이 얼마나 강력하게 돌아가는지를 의미한다. 공기가 얼마나 빠르게 위로 솟구치는지(수직 속도), 그리고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부는지(대기 순환)와 같은 '공기의 움직임' 그 자체를 말한다.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8월 '지구물리학 연구 회보(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중위도 지역의 극한 강수 증가는 주로 기상 전선(atmospheric fronts)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마전선 같은 전선은 성질이 다른 두 공기 덩어리(예: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는 경계선이다. 연구팀은 전선이 대기 중에 풍부해진 수증기를 비로 전환하는 가장 효율적인 기상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단순히 수증기가 많아져서 비가 오는 게 아니라, 전선이라는 기상 시스템이 폭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훨씬 더 무서운 폭우(극한 강수)는 대부분 기상 전선이 대기 중의 풍부한 수증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비로 바꿔버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인도 뭄바이 외곽 바사이에서 폭우로 침수된 거리를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인도 기상청(IMD)은 계속되는 극심한 폭우로 인해 뭄바이, 타네, 팔가르, 라이가드 지역에 적색 경보를 발령했다. 폭우로 선로가 침수되면서 여러 지역 열차 운행이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사진=EPA/연합뉴스)
◇홍수 발생 시기도 앞당겨지거나 늦춰져
기후 변화는 홍수의 규모뿐만 아니라 발생 시기까지 앞당기고 있다.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5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위적인 기후 변화는 전 지구적 홍수 시기를 기온 0.5℃ 상승당 약 0.43일씩 앞당기고 있다.
홍수 시기의 변화는 단순히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넘어, 기온과 강수 패턴의 복합적인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 북반구 고위도 지역의 경우, 기온이 올라가면서 얼어붙었던 눈이 녹기 시작하는 시점이 빨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봄철 해빙기 홍수가 과거보다 훨씬 일찍 발생하게 된다.
비가 주로 내리는 지역에서도 연중 최대 강우가 발생하는 시점 자체가 변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우기의 시작과 끝이 달라지면서 홍수의 정점도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홍수 시기가 앞당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모든 지역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연구팀은 “홍수가 일찍 발생하는 지역은 더 일찍 발생하고, 늦게 발생하는 지역은 더 지체되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멕시코, 동남아시아, 중국 일부 지역, 중동 및 동유럽 지역에서는 오히려 홍수 시기가 늦춰지는 경향이 보인다.
이미 전 세계 육지의 50.7%가 7일 이상의 홍수 시기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댐 운영, 수자원 관리, 농업 계획 시스템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의 댐과 저류지는 수십 년간의 안정적인 계절적 주기를 바탕으로 설계돼 있다. 홍수 시기가 3주 이상 변하면 기존 운영 규칙은 무용지물이 돼 댐 붕괴나 범람 위험이 커진다. 중국의 밀 수확기(현재 5~6월)가 홍수기(현재 7~8월)와 겹치거나, 브라질의 옥수수 파종 시기가 앞당겨진 홍수기와 맞물리면서 농작물 피해와 식량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호우일수. (자료=기후에너지환경부, 국가 물순환촉진 기본 방침, 2025)
◇한반도 강수 패턴의 급격한 변화: “8월에서 7월로의 이동"
한반도의 경우, 여름철 시간당 극한 강수(HER)의 발생 시기와 빈도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포항공대(POSTECH)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팀이 지난해 6월 'npj 기후와 대기과학(npj Climate and Atmospheric 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과거에는 8월에 폭우 빈도가 가장 높았으나 미래 최악의 시나리오(SSP5-8.5)에서는 폭우의 정점이 7월로 이동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서북태평양 아열대 고기압 세력이 강해지면서 과거보다 더 북쪽으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이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시계 방향으로 강한 남풍이 불면서 고온다습한 수증기가 한반도로 집중적으로 유입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7월의 극한 강수 빈도가 저탄소 시나리오(SSP1-2.6)에서 약 2배, 고탄소 시나리오(SSP5-8.5)에서는 무려 3.7배(271%) 급증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7월에 아열대 고기압이 한반도 동쪽에 강력하게 자리 잡는 게 원인이다.
아울러 연구팀은 정체전선으로 인한 폭우가 7월에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SSP5-8.5 시나리오에서 7월의 정체전선 관련 폭우 빈도는 현재보다 무려 약 644%나 급증, 8월보다 7월에 더 많은 폭우가 쏟아지게 만든다.
한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중층 기압골'이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끌어내려 하층의 고온다습한 공기와 강하게 충돌하도록 만들고, 이로 인해 짧은 시간에 엄청난 비를 뿌리는 극한 강수가 발생하게 된다.
▲과거와 미래 시나리오별 시간당 극한 강수의 지역적 집중도와 강수 편차 변화를 지도상에 시각화했다. 미래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을수록 극한 강수의 파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여름철 내내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강한 폭우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7월의 폭우 강도가 과거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며, 8월에는 한반도의 복잡한 산악 지형 영향으로 특정 지역에 비가 띠 형태로 쏟아지는 국지성 패턴이 정밀하게 관찰된다. 이 지도는 기후 변화로 인해 폭우 발생 장소가 남하하고 정점 시기가 7월로 이동하며, 지형적 요인에 의한 수재해 위험이 미래에 더욱 뚜렷해질 것임을 지리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자료=npj Climate and Atmospheric Science, 2025)
◇지형적 영향으로 국지성 폭우 증가
한반도의 폭우는 지형적 요인에 의해 매우 국지적인 특성을 나타내는데, 이는 특정 지역에 비를 쏟아붓는 '폭우의 파편화'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국토의 약 63%가 가파른 경사의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강수 패턴이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공주대 대기과학과 서명석 교수팀이 지난해 9월 '아시아태평양 대기과학 저널(Asia-Pacific Journal of Atmospheric Science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3~2022) 한국의 폭우는 지형적 영향으로 매우 국지적인 특성을 보인다.
지형성 강수는 습한 공기가 산을 타고 강제로 상승하면서 온도가 낮아지고 수증기가 응결돼 비구름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공기가 산의 사면을 타고 올라가며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비를 쏟아붓게 된다.
산맥(태백맥, 소백산맥 등)은 이동하는 저기압이나 전선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 때 좁은 골짜기나 산맥의 경계면에서 성질이 서로 다른 공기가 강하게 충돌하면서 대기 불안정이 심화돼 국지적인 집중호우가 발생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의 단열 팽창 및 냉각이 활발해져 평지보다 훨씬 잦고 강한 폭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라산 고산 지대의 경우 평지보다 폭우 빈도가 약 4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
제주도 외에도 강원도 미시령과 경남 거제 등지에서도 폭우 위험 지대로 분류된다. 이들 지역은 해안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높은 산지를 배후에 두고 있어 해양에서 공급된 수증기가 지형을 타고 급격히 상승하면서 매우 강한 비를 뿌린다.
태백산맥 서쪽 사면은 7월 장마철에 중규모 저기압이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면서 태백산맥과 충돌하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산맥 서쪽 지역(수도권 및 충청 일부)은 지형적 상승 효과가 더해져 폭우 빈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9일 국지성 집중호우로 침수주의보가 발령된 서울 지하철 대림역 인근 도림천 수위가 상승한 모습을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거 데이터에 갇힌 홍수 대책, '기후 뉴노멀'에 무너진다
최근 한반도를 덮친 기록적인 폭우는 기존 방재 시스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통계에만 의존하는 관리 체계로는 더 이상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국내의 기존 유역 모의 방식은 주로 강수량 분포나 초과 확률 등 단순화된 지표에만 의존하는 바람에 홍수의 지속 시간, 빈도, 규모 사이의 복합적인 역학 관계를 포착하는 데 미흡하다는 것이다.
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극한 강우가 일상화되면서 기존 구조물들의 안전성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집중호우 당시 다수의 하천에서 50~100년 설계 빈도를 초과하는 홍수위가 관측되었는데, 이는 기존 하천 및 배수 체계만으로는 홍수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 사례다.
특히, 교량이 제방에 맞닿게 설치된 경우나 계획 홍수위보다 제방 높이가 낮은 경우, 굽이치는 하천 유역 등 구조적 취약 요인이 피해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하수도 시설 운영은 주로 수질 관리에 치중돼 있어 도시 침수 대응 역량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도 문제다.
또한 기존 홍수 예보는 정보 생산자(대하천) 중심이고, 비(非)시각적이어서 국민들이 실시간 위험도를 체감하고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분석도 나왔다.
▲9일 홍수 경보 심각단계가 발령된 경북 문경시 영순면 김용리 논밭이 수위가 오른 영강 강물에 침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학계의 대응 대책: 디지털 기술과 통합 관리
폭우와 홍수가 일상화되는 '뉴 노멀' 시대에는 과거의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미래 기후 시나리오를 반영한 선제적이고 통합적인 안전 전략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정교하고 선제적인 대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우선 인공지능(AI) 기반 홍수 예보가 눈에 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전국 223개 하천 지점을 대상으로 AI 홍수 예보를 시행하고 있다. AI 기반의 도시 침수 위험 예측 기술이 실제 침수 사례에서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정부는 또 물순환 촉진을 강화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국가 물순환 촉진 기본방침'을 마련하고, 하천 정비를 넘어선 '유역 단위 통합 물관리'를 선포한 바 있다. 불투수 면적을 줄여 빗물이 땅속으로 잘 스며들도록 하고, 저류지 및 지하 방수로를 확충하는 한편, 기후 변화 시나리오를 인프라 설계 기준에 반영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하천 범람 지도와 도시 침수 지도를 제작해 내비게이션 등을 통해 실시간 침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해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