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라고 잘못 알려진 아까시나무와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우점한 노들섬의 모습. 사진=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
서울시가 노들섬 벌목을 '생태숲 재구조화'라 해명했지만, 이는 대규모 개발 사업을 가리기 위한 '생태의 탈을 쓴 알리바이'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NC타임즈에 따르면 서울시가 노들섬 수목 637그루 중 326그루를 베어내는 사업을 '벌목이 아니라 생태숲 재구조화'라고 해명했다. 5월 15일자 설명자료의 표현이다. 아까시나무·양버즘나무가 80% 우점한 숲을 어떻게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느냐, 자생종 낙엽수로 교체하여 양서류에게 더 좋은 숲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구도에서 벌목에 반대하는 시민은 자동으로 생태학을 모르는 감성적 대중이 된다. 벌목을 집행하는 행정은 진짜 생태주의자의 자리에 앉는다. 무언가 거꾸로 뒤집혀 있다.
외래종을 베면 복원된다는 착각
먼저 짚을 것은, “외래종을 제거하면 생태계가 복원된다"는 명제가 더 이상 학문적으로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토종/외래종 이분법에 기댄 1990년대 보전생태학 교본은 지난 20년간 국제 학계에서 꾸준히 도전받아왔다. 재조합 생태계(novel ecosystems) 개념이 보여주듯, 인간이 변형한 토양·기후·종 구성 위에서 형성된 새로운 생태계는 원형으로 되돌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되돌리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며 그 자체로 기능적 가치를 갖는다. '토착'의 시간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는 결국 정치적 선택이다.
▲아까시나무가 울창한 노들섬의 모습. 사진=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
다음으로, 노들섬의 아까시나무와 양버즘나무는 행정이 누락한 일을 하고 있다. 국내 꿀 생산량의 70% 이상이 아까시나무 한 종에 의존한다. 농촌진흥청과 양봉업계가 거듭 경고하는 사실이다. 도심 아까시나무는 단순한 외래종 잡목이 아니라 5월 한 달간 도시의 수분매개 곤충 수만 마리를 먹여 살리는 거대한 꽃-곤충 관계망이다. 양버즘나무 한 그루는 산림청 발표 기준 하루 평균 에어컨 10대를 7시간 가동하는 정도의 증산 효과를 낸다. 잎은 미세먼지를 흡착하고, 큰 수관은 한강을 횡단하는 도심 야생조류의 디딤돌이 된다. 서울시 설명자료에는 이 사실들이 통째로 빠져 있다.
또한 두 수종의 우점은 비정상이 아니라 도시생태계의 자연사다. 노들섬은 일제강점기 모래섬 위에 인공섬이 얹히고, 그 위에 식생이 누적된 공간이다. 아까시나무와 양버즘나무의 우점은 그 섬이 100년에 걸쳐 만들어낸 생태사의 결과물이다. 이를 “비정상이니 재구조화한다"는 논리는, 100년의 도시생태사를 행정의 백지에 다시 그리겠다는 선언이다.
생태의 언어를 빌린 알리바이
핵심은 학설 다툼이 아니다. '건강한 숲'의 정의 권한을 누가 갖는가가 문제다. 외래종 우점은 비정상이고, 비정상이니 재구조화가 필요하고, 326그루 벌목은 어쩔 수 없다는 정의의 연쇄. 이 연쇄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보라. 4,4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개발사업의 마찰이 매끈하게 줄어든다. 토머스 헤더윅이 설계한 공중정원이 박힐 자리가 '어차피 베어야 했던 외래종 자리'가 된다. 시민의 우려는 '생태학적 무지'로 분류되어 협상 테이블에서 밀려난다. '외래종 정비'는 노들섬에서 생태의 언어를 빌린 개발의 알리바이로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이 벌목은 아직 끝난 일이 아니다. 대규모 벌목을 수반하는 공중정원 공사는 실시설계를 거쳐 연내 착공을 앞두고 있고, 지금 베어지지 않은 나무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시민들이 노들섬 숲의 존치를 요구하며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
이미 그 섬에 사는 자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빠져 있다. 노들섬에 이미 살고 있는 자들의 자리다. 5월 아까시나무에 찾아오는 꿀벌, 양버즘나무에 둥지 짓고 먹이활동 하는 오색딱따구리, 2007년부터 그 섬에 살아온 멸종위기종 맹꽁이 수백 마리. 이들은 노들섬의 거주자다. 그리고 지금, 서울시는 이 맹꽁이들을 동쪽 숲에 새로 조성한 임시 습지로 옮기려 하고 있다. 원래 살던 자리가 아니라 행정이 지정한 자리로. 상반기 안에 환경 당국과 협의를 마치고 이주를 집행한 뒤 3년간 정착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계획이다. “양서류에게 더 좋은 숲"을 행정이 일방적으로 정의해서 강요할 권한은 어디서 나오는가. 꿀벌에게 더 좋은 숲은 매년 5월 꿀이 흐르는 아까시나무 숲일 수 있다. 새들에게는 30년 묵은 양버즘나무 수관일 수 있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생태'라는 말이 개발의 언어로 흡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강 르네상스 2.0의 핵심 사업은 '글로벌 예술섬'이 되고, 326그루 벌목은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과정'이 된다. 벌목 반대는 무지가 아니다. 노들섬에 100년 동안 누적된 도시 생태사, 그 위에 살아온 여러 종의 거주자들, 그들이 만들어낸 관계망을 행정의 백지로 되돌리지 말라는 요구다. 도시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이 초대하지 않았어도 이미 여러 종이 함께 살아가는 서식지 — 다종도시(多種都市)다. 노들섬의 외래종을 베어내기 전에, 우리는 '외래종'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 먼저 따져 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