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두고 간 기업·부동산 미군정 거쳐 정부로…1950년대 본격 민간불하
SK 선경직물·한화 조선화약공판은 귀속재산 인수가 그룹 출발과 직접 연결
삼성·LG·현대는 자체 사업에서 성장…‘한국 재벌=적산기업’ 일반화는 ‘오류’
광복 81주년을 맞아 본지는 독립운동과 기업가, 주요 그룹의 탄생, 산업 국산화의 역사를 살펴봤다. 하지만 한국 재계의 성장사는 산업보국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인이 남긴 귀속재산은 누구에게 넘어갔고,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창업주들은 그 시대를 어떻게 통과했을까. 일본에서 부를 일군 기업가는 왜 다시 한국에 투자했을까. 광복 이후 오늘날 재계가 만들어진 과정의 이면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광복 이후 국내 주요 재계 그룹사와 귀속재산과의 연관성
▲자료=국가기록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각 그룹 공식 사료
“한국의 대기업들은 광복 후 일본인들이 남겨놓고 간 기업과 공장을 넘겨받아 성장했다."
한국 재벌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종종 등장하는 주장이다. 실제로 광복 이후 일본인 소유 기업과 토지, 건물 등 막대한 재산이 미군정과 한국 정부에 귀속됐고 상당수가 이후 민간에 불하됐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대기업의 모태가 된 기업을 인수한 창업주도 있었다.
그렇다면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한화 등 지금의 주요 그룹은 정말 모두 이른바 '적산(敵産)'에서 출발했을까. 국가기록원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각 그룹의 공식 사료 등을 토대로 주요 그룹의 출발점을 추적해보면 답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다.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 공장 모습. 선경직물은 일제강점기 일본계 기업으로 출발해 광복 이후 귀속재산이 됐으며, 최종건 창업회장이 정부로부터 매수해 재건했다. 사진=SK
SK와 한화처럼 일본인 또는 일본계 기업의 귀속재산을 인수한 것이 그룹 성장의 직접적인 출발점이 된 사례가 있는 반면 삼성·LG·현대처럼 창업자가 독자적으로 시작한 사업이 그룹의 모태가 된 경우도 있다.
한국 재벌의 탄생을 '적산 불하'라는 하나의 공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 일본인이 떠나며 남긴 29만건…누가 가져갔나
'적산'은 적국의 재산이라는 의미다. 광복 이후에는 일본 정부와 일본인, 일본계 기업 등이 한반도에 남긴 재산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됐다.
미군정은 일본인 소유 재산을 접수해 관리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남아 있던 귀속재산을 한국 정부에 넘겼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이때 한국 정부에 이관된 귀속재산은 사업체 2203건, 부동산 28만7555건, 기타 2151건 등 모두 29만1909건에 달했다.
정부는 1949년 12월 귀속재산처리법을 제정하고 민간 매각에 나섰다. 한국전쟁으로 처분이 한때 지연됐지만 1950년대 들어 불하는 다시 빠르게 진행됐다.
특히 1953~1959년 귀속재산 불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국가기록원은 이 기간 이뤄진 불하가 전체 건수의 86%, 계약금액의 68%를 차지했다고 설명한다.
당시 정부 입장에서 귀속기업의 민영화는 단순히 일본인의 재산을 나눠주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생산시설을 다시 돌리고 산업을 복구하는 동시에 민간 중심의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누가 어떤 기업을 넘겨받았고, 그것이 이후 한국의 재벌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다.
◇ SK의 시작 '선경직물'…일본계 공장에서 한국 대기업으로
현재 주요 그룹 가운데 귀속재산과의 연결이 비교적 선명한 곳이 SK다.
SK의 모태인 선경직물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회사였다. 최종건 SK 창업회장은 경성직업학교를 나온 뒤 선경직물 수원공장에 견습기사로 입사해 제직조장 등을 맡았다.
광복을 맞자 최 창업회장은 한국인 소주주들과 함께 공장 가동에 참여했다. 이후 선경직물은 귀속재산이 됐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공장이 폐허에 가까울 정도로 파괴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최 창업회장은 전쟁 중 폐허가 된 공장을 정부로부터 매수했다. 남아 있던 부품을 모아 직기를 복구했고 1953년 선경직물주식회사를 다시 일으켰다.
현재 SK도 1953년 한국전쟁 직후 폐허 속에서 선경직물을 창업한 것을 그룹 역사의 출발점으로 설명한다.
오늘날 반도체·통신·에너지·바이오를 아우르는 SK그룹의 모태에 일본계 기업에서 출발해 정부 귀속을 거친 선경직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 셈이다.
다만 이를 단순히 '멀쩡한 일본 기업을 넘겨받았다'고 표현하는 것도 당시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최 창업회장이 인수한 시점의 선경직물은 한국전쟁으로 상당 부분 파괴된 상태였고 이를 복구해 사업을 다시 일으키는 과정이 뒤따랐다.
◇ 한화도 귀속재산과 직접 연결…화약 독점기업 인수
한화 역시 귀속재산과 그룹의 출발이 직접 연결되는 사례다.
김종희 한화 창업회장은 1942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했다. 조선화약공판은 일제가 여러 화약업체의 판매 조직을 통합해 만든 국내 화약 유통업체였다.
광복 직후 김 창업회장은 조선화약공판 지배인에 임명됐고 이후 관리인을 맡았다. 회사는 미군정의 귀속기업으로 관리됐다.
▲한화그룹 창업 초기 화약 생산시설 모습. 왼쪽은 공장 작업 현장, 오른쪽은 연구시설에서 화약 관련 실험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한화
전환점은 1952년이었다. 김 창업회장은 조선화약공판 운영권을 획득한 뒤 같은 해 한국화약을 설립했다. 현재 ㈜한화의 출발이다.
한화가 공개한 그룹 연혁에도 이 과정이 명확하게 남아 있다. 1952년 한국화약 설립에 이어 1953년 '조선화약공판 불하 인수', 1955년 '조선유지 인천 화약공장 불하 매수'가 기록돼 있다.
일본이 구축했던 화약 생산·유통시설이 광복 후 귀속재산이 되고 다시 한국인 기업가에게 넘어가 오늘날 한화의 사업 기반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화의 성장 역시 자산을 넘겨받는 데서 끝나지는 않았다. 한국화약은 이후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나서 1957년 국내 최초로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성공했고, 화약 사업을 기반으로 기계·석유화학을 거쳐 현재 방산·우주항공·에너지·금융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 그렇다면 삼성도 '적산기업'?…출발은 달랐다
SK와 한화의 사례를 모든 대기업에 적용하면 문제가 생긴다.
삼성의 출발은 광복 이전인 1938년 이병철 창업회장이 대구에서 세운 삼성상회다. 이후 사업 영역을 넓히며 해방 전부터 독자적인 사업 기반을 형성했다.
이 창업회장이 일본인이 운영하던 조선양조를 인수하는 등 일제강점기 일본인 소유 사업체와 거래하거나 이를 인수한 사례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삼성그룹 자체가 광복 후 정부의 귀속기업을 불하받아 출발했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삼성이라는 기업의 모태가 이미 광복 이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이다.
LG도 비슷하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일제강점기 진주에서 포목상 등 자신의 사업을 운영했다. 광복을 맞은 1945년 부산으로 사업 무대를 옮겨 조선흥업사를 설립했고 이후 화장품 사업을 거쳐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웠다.
LG 공식 사료에 따르면, 조선흥업사는 당시 군정청으로부터 무역업 허가 제1호를 받아 설립됐다. 이후 화장품과 플라스틱, 전자산업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즉 LG 역시 일본인 소유 귀속기업 하나를 불하받은 것이 그룹의 직접적인 출발점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도 정주영 창업회장이 일제강점기 자동차 정비업을 시작하고 광복 이듬해인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한 뒤 1947년 현대토건을 세우면서 성장한 경우다.
이처럼 현재 주요 그룹들의 출발 경로부터 서로 달랐다.
◇ '적산 수혜'냐 '맨손 신화'냐…전문가 “기업별로 따져봐야"
귀속재산 불하가 해방 이후 산업자본 형성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이를 하나의 잣대로 현재 대기업의 기원과 성장까지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사 전문가들은 귀속재산 불하가 광복 직후 부족했던 생산설비와 자본을 민간으로 이전하는 중요한 통로였다는 점과, 이후 개별 기업의 성장 과정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한 경제사학계 관계자는 “귀속재산 불하가 해방 이후 한국의 초기 산업자본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렇다고 오늘날 대기업의 성장을 모두 귀속재산 불하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도 역사적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마다 출발 조건이 달랐고 한국전쟁 이후의 복구와 산업화, 수출 확대 과정에서 기업 간 성패도 크게 갈렸다"며 “귀속재산을 어떤 조건으로 인수했고 이후 어떤 투자와 경영을 통해 사업을 확대했는지 개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일본계 기업의 자산을 인수한 것이 현재 그룹의 모태가 된 기업도 있지만 창업자가 광복 이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운영했거나 해방 이후 새롭게 회사를 세운 사례도 있다"며 “현재의 대기업들을 일괄적으로 '적산기업'이라고 규정하기에는 각 그룹의 성장 과정에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광복 81년 뒤 주요 그룹의 출발점을 따라가면 서로 다른 경로가 확인된다. 일본계 공장을 인수해 다시 일으킨 기업이 있는가 하면 식민지 시대부터 자신의 사업을 하다 해방 이후 제조업으로 넘어간 기업도 있었다.
'적산의 수혜'와 '맨손의 창업 신화'라는 상반된 평가 사이에서 한국 재계의 탄생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결국 개별 기업의 출발과 성장 과정을 각각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