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원장
2010년 5월 29일, 아홉 살 정종현 군이 세상을 떠났다. 백혈병 치료를 받던 종현 군에게 정맥으로 투여해야 할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 내로 잘못 투여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을 잃은 가족은 슬픔에만 머물지 않았다. 같은 사고로 또 다른 환자가 희생되지 않도록 사고의 원인과 경과를 알리고 국가 차원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2년 뒤 또 다른 환자가 동일한 항암제 투약 오류로 사망했다. 한 의료기관의 사고 경험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같은 사고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뼈아프게 확인한 순간이었다.
정종현 군 가족과 환자단체,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노력은 결국 사회를 움직였다. 환자안전을 개별 의료기관의 노력에만 맡겨서는 안 되며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는 2015년 '환자안전법' 제정과 2016년 7월 29일 법 시행으로 이어졌다.
올해로 꼭 10년이다. 지난 10년의 의미는 법과 제도가 하나 더 만들어졌다는 데만 있지 않다. 보다 본질적인 변화는 환자안전사고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구의 잘못인가'를 찾는 데 머무르기보다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어떤 과정과 시스템에 위험이 있었는지,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살피는 접근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 의료기관의 사고를 그 기관만의 실패로 남겨두지 않고 전체 의료현장의 학습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환자안전사고 보고·학습체계를 통해 구체화됐다. '환자안전법' 시행 첫해인 2016년 563건이었던 환자안전사고 보고는 2025년 3만483건으로 늘었고, 지난 10년간 누적 보고건수는 14만389건에 이르렀다.
보고된 사고는 환자안전 보고학습시스템을 통해 수집·검증·분석되고, 주의경보와 각종 환류정보로 가공돼 다시 의료현장에 전달된다. 보고의 증가는 단순한 숫자의 증가라기보다 사고와 위험을 숨기기보다 공유하고, 그 경험을 재발방지에 활용하려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장의 실행 기반도 성장했다. 전국의 의료기관내 환자안전위원회 설치율은 2017년 65.1%에서 2025년 97.8%로, 환자안전 전담인력 배치율은 2016년 48.2%에서 2025년 97.3%로 높아졌다. 2020년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중앙환자안전센터로 지정됐고, 2021년 5개소로 출발한 지역환자안전센터도 2024년 10개소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국가 차원의 환자안전사고 실태조사와 한국형 환자안전문화 측정체계가 마련되면서 정책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자발적으로 보고된 사고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실제 의료현장의 위해 발생 실태와 조직의 안전문화 수준을 함께 파악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지난 10년이 환자안전을 제도로 세우고 의료현장의 문화로 확산해 온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그동안 구축한 제도와 인프라가 국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안전의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 전환의 중요한 계기가 2027년 시행되는 '환자기본법'이다. 이 법은 기존 환자안전체계를 계승하면서 환자의 권리와 참여를 보다 폭넓게 다룬다. 환자를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자신의 치료과정에 참여하고 경험과 의견을 제도 개선에 제시하는 보건의료의 중요한 주체로 바라보는 변화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도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그동안 의료기관 인증과 중앙환자안전센터 운영을 통해 축적한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실제 의료현장의 개선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0년 동안 축적된 방대한 환자안전 정보의 가치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
환자안전사고 보고자료와 실태조사, 환자안전문화 측정 결과, 지역환자안전센터의 현장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한다면 의료현장의 위험을 보다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면 반복되는 사고의 유형과 위험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필요한 예방조치를 보다 신속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환자안전 정책의 무게중심을 사고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데서 사고 가능성을 미리 찾아 줄이는 예방 중심의 체계로 옮기는 일이다. 앞으로 축적된 데이터가 단순한 통계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환자의 위해를 줄이는 근거로 활용되어야 하는 이유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앞으로 의료기관과 의료인뿐 아니라 환자와 환자단체,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폭넓게 듣고 이를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 환자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정책과 의료현장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국민의 경험이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역할 중 하나다.
궁극적으로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의료기관의 질 향상을 지원하고, 환자안전의 위험을 선제적으로 예방하며, 환자의 경험을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글=오태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