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안전법]"빨래집게까지 인증받으라고?" 소상공인들 뿔났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7.01.25 20:15

-네티즌 카페 전폐모, "헌법 소원 낼 것 반발"

▲사진=연합



"막막하다. 미친 거 아니냐."

"누구를 위한 법이냐. 말도 안 되는 법 만들어 무조건 밀어 부치는 게 정부냐."

"전기안전법에 왜 의류 생활잡화가 포함된 게 말이 되느냐."

"창업해야 된다 부추기면서 영세 동대문의류업체나 쇼핑몰 핸드메이드업체 다 X지게 만들고..."

[에너지경제신문 천근영 기자] 현재 네티즌 카페에 만들어진 ‘전안법 폐지를 위한 모임’(전폐모) 카페에 떠 있는 내용과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의류·잡화 등 생활용품의 KC 인증서 보유를 골자로 하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기안전법)이 28일 발효를 앞두고 영세 의류상인 및 해외 구매대행업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가 서둘러 ‘비치 의무를 1년 유예’하겠다고 물러섰지만 네티즌들과 소상공인들의 분노는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에서는 전기안전법 반대 민원을 국민권익위 국민신문고 산업부 등 관련 기관에 넣고 법을 개정토록 하자는 글이 확산되는 등 반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카페에 ‘전안법 관련 국회의원’이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항의 메일 넣기 등의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특히 전폐모는 오픈마켓과 병행수입, 구매대행 회원사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한편 산업위 국회의원들을 접촉해 법 개정을 요구하며 법률대리인을 통해 헌법 소원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1000명에 불과하던 이 카페의 회원수는 24일부터 폭주해 현재 5000명이 넘어섰다.

◇소상공인들 왜 반발하나?

전안법은 지난해 1월 27일 공포됐다. 전기용품에 대한 ‘전기용품안전관리법’과 공산품에 대한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을 통합한 게 이 법이다. 이 법에는 공산품과 생활용품의 특정 품목을 판매하려면 안전기준을 지켰는지 검증하는 공급자적합성확인 서류(KC, Korea Certification Mark 국가통합인증마크)를 받아 비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법의 가장 큰 목적이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키 위한 것인데, 이전 제도와 달리 생활용품까지 안전인증대상에 넣은 것이다.

바로 이게 반발 이유다. 영세업자들은 "의류 잡화 등 생활용품도 앞으로 KC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받아 비치토록 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동대문 등에서 원단을 사서 옷을 만들거나 해외에서 옷을 들여와 파는 영세업자들은 인증을 외부 기관에 맡겨야 하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이 더 들게 된다. 각 품목 마다 인증을 받아야 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안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의류의 경우 KC 인증을 받으려면 건당 20만∼30만원 가량이 들고 위반하면 기업 규모에 따라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별 상관이 없다. 일정 이상 규모의 기업들은 안전 검사를 할 장비를 갖추고 있어 KC 인증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대문 등에서 원단을 떼 옷을 만들거나 해외에서 구매해 소규모로 판매하는 영세업자들은 KC 인증을 모두 외부 기관에 맡겨야 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또 오픈마켓 등 대다수 온라인쇼핑몰도 법 개정에 맞춰 KC 인증서가 없을 경우 입점이 불가능해 판로가 제한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국가기술표준원 측은 "의류 이불 신발 등 섬유제품은 유아복 외 대부분 제품이 기존에도 KC 인증을 받아야 했다"며 "현재 소비자들이 입는 대부분 옷의 택에 KC 마크가 찍혀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은 KC 인증 품목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KC 인증서를 보유하도록 한 것"이라며 "의류 잡화 등은 국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이 있어 안전 검사를 거쳐 KC 인증을 받아야 함에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법을 보완했다"고 덧붙였다. 유예할 뿐 개정은 현재로선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고시까지 다 거친 법, 시행 코앞에 두고 왜?

이유는 한 가지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등에서 옷이나 가방 등 잡화를 파는 소상공인들이 취급하는 제품은 다품종이지만 양은 적다. 또 이들 제품은 전국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제작 공급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상인들이다. 법이 바뀌는 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안다 해도 모이기가 어렵다. 이들 중 일부는 소상공인연합회에 가입돼 있지만 워낙 다양한 업종이라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거나 연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더라도, 대상품목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는 게 한결같은 입모음이다.

말이 전안법이지 대상 품목에는 전기와 아무 관계도 없는 품목 일색이다.

섬유제품은 가정용 섬유제품과 양탄자 등이고, 화학제품은 모든 가죽제품과 습기제거제, 화장비누 화장지 캔들 등이다. 또 기계제품은 자동차용 휴대용 잭, 토건제품은 물탱크다. 가장 많은 품목인 생활용품은 가구 빨래걸이 면봉 선글라스 안경테 텐트 우산 양산 롤러스케이트 블라인드 속눈썹 벽지 킥보드 등이다. 모두 안전품질표시대상 공산품으로 지정된 것으로 43개 품목이다.

동대문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옷을 만들고 있는 C사장은 "연합회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이런 법이 시행될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다"며 "다 제쳐두고 옷이 전기안전법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얘기를 들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동대문에서 도매로 옷을 떼어다 팔고 있다는 K씨 역시 "뉴스에 나와서 알게 됐지만, 여전히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옷이나 가방이 전기제품도 아니고, 무슨 인증을 받으라는 얘긴지 모르겠다"고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안전도 지키고, 소상공인도 살리는 상생 해법은?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국민의 생활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비용이 들어간다고 해서 과다한 규제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비용의 일정 부분은 지원해줘야 영세 상인들도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현재 전안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정부가 제정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를 통과한 본 법령과는 무관하다"며 "내년 1월까지로 시행을 유예한다고 하니 국회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했다.

에너지법 전문가도 현행 법에 무리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동일 에너지법 전문 변호사는 "아무리 안전에 방점이 찍혔다고 해도 면봉이나 빨래걸이 같은 것까지 인증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유예기간 동안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품목은 제외시키는 것이 해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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