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형제' 넷마블 방준혁-빅히트 방시혁…K컬쳐로 세계제패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1.23 15:36
20160929122017116322-tile

▲방준혁 넷마블 의장(좌)과 방시혁 빅히트엔터 대표. (사진=각 사)


[에너지경제신문 류세나 기자] 형은 ‘K-게임’, 동생의 주무기는 ‘K-팝’이다. 형제가 각자의 영역에서 한국을 넘어 세계를 호령하고 있어 주목된다.

형은 고등학교 중퇴라는 ‘흙수저’ 한계를 딛고 시가총액 14조 원 규모의 글로벌 게임사 수장으로 우뚝섰고, 동생은 K팝 불모지로 여겨졌던 미국 음악시장을 맨손으로 개척해 지금은 국내 3대 연예기획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과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 ‘방방형제’의 이야기다. 친척 형·동생 사이인 둘은 특유의 끈끈한 우애로도 유명하다. 서로 바쁜 와중에도 종종 만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는 물론 국내외 문화 콘텐츠 트렌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곤 한다.


◇ 고졸 흙수저 방준혁의 매직…시총 14조 원 ‘성공신화’

‘한국의 잡스’로 불리는 방준혁 의장은 게임업계의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 오너 기업인이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생 때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했고, 집안에 도움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중소기업 취직을 결정할 정도였다.

사업에 뜻을 품고 있던 그는 두 번의 창업 실패를 겪은 후 지난 2000년 동료 8명과 함께 게임포털 넷마블을 오픈했다. 당시 시장엔 이미 수십여 개의 비슷한 게임포털이 있었다. 선발업체인 한게임과 엠게임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던 때였다.

방 의장의 묘책은 ‘학교 대항전’이었다. 경쟁사에서 상위 입상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게임대회를 주최했다면, 넷마블은 개인이 아닌 학교라는 집단간 경쟁을 이끌어 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학생들은 옆 학교보다 높은 등수에 오르기 위해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넷마블은 포털 론칭 1년 만에 90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모았다. 당시 제주도 한 중학교에선 전교생 중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넷마블 포털에 가입했다는 일화가 여전히 전설처럼 내려온다.

이후 방 의장은 불과 창업 4년 만인 2004년 CJ그룹에 800억 원을 받고 회사 지분을 넘기면서 IT업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2006년 건강 악화를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방 의장이 떠난 이후 공교롭게 넷마블엔 암흑기가 찾아든다. ‘리프트’, ‘쉐도우컴퍼니’ 등 걸출한 게임들을 연이어 들고 나왔지만 번번히 흥행에 실패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체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던 ‘서든어택’ 판권까지 넥슨에 뺏기면서 넷마블은 기로에 서게 됐다. 결국 방 의장이 다시 나섰다.

0002432703_001_20171115160953323

▲넷마블게임즈의 대표작 ‘리니지2 레볼루션’. (사진=넷마블)


방 의장의 복귀는 CJ가 ‘구원투수’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뤄지게 됐다. 당시 방 의장은 회사지분 48.2%(380억 원)를 CJ로부터 되사왔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모바일’이었고, 그의 손을 거치며 ‘다함께 차차차’, ‘모두의마블’, ‘세븐나이츠’ 등 연이은 장수 흥행 타이틀이 탄생됐다.

2014년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텐센트로부터 5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CJ그룹에서도 독립했다. 넷마블게임즈는 그 때도, 지금도 글로벌 게임사다.

지난해 연매출 2조 원 달성을 확정지었고, 같은 해 3분기 기준 해외매출 비중도 71%를 넘어섰다. 특히 한국산 게임의 불모지로 여겨져 온 일본과 북미·유럽 등 국가에서도 ‘세븐나이츠’, ‘리니지2 레볼루션’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모바일 앱마켓 분석사이트 앱애니가 최근 발표한 2017년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넷마블게임즈는 글로벌 매출 탑10 게임사 중 텐센트, 넷이즈에 이은 글로벌 3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국내 게임사 중 탑10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넷마블이 유일하다.


◇ 스타 작곡가 방시혁, 금단의 땅 미국시장서 ‘팡파르’

방 의장의 친척동생인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해 세계를 들썩이게 한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첫 번째 남자 아이돌그룹으로, 방 대표가 직접 기획에서부터 제작 등 모든 과정이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방 대표는 재학 중에 유재하 음악경영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유명 프로듀서 박진영에게 스카우트 돼 1997년부터 JYP엔터테인먼트에서 GOD의 ‘하늘색 풍선’, 박지윤의 ‘난 사랑에 빠졌죠’, 비의 ‘나쁜남자’,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내 귀에 캔디’ 등 숱한 히트곡을 작곡해냈다.

2005년 JYP엔터에서 독립한 방 대표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2010년 MBC 예능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을 당시엔 날카로운 음악적 식견으로 대중에 얼굴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0000617918_001_20180108065807109

▲그룹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 대표의 감각은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을 통해 다시금 빛을 발했다. 방탄소년단을 앞세워 아시아 가수들에게 금단의 땅으로 여겨지던 미국시장을 뚫어냈다.

미국 음악시장은 한국의 18배에 달한다. 모든 프로듀서가 꿈꾸는 세계 최대규모의 시장이지만 그만큼 아시아 가수의 진입이 어려워 ‘그림의 떡’으로만 여겨져 왔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가 지난해 세계 대중음악계를 결산한 ‘올해의 아티스트’ 10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012년 ‘강남스타일’ 열풍을 이끌어냈던 싸이조차 ‘올해의 아티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탄소년단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방탄소년단은 국내 모든 가수를 통틀어 가장 많은 해외 팬을 거느리고 있는 그룹으로 통한다.

방탄소년단 트위터 계정 팔로워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140만명에 달하고,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공연실황 등 관련 영상 조회수는 34억회를 넘겼다. 유튜브가 지난해 한국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할 때 유튜브의 파급력을 알리기 위한 한 예로 방탄소년단을 들었을 정도다.

가요계에서는 방 대표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다면 방탄소년단이 큰 성공을 거두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팬들과의 소통을 강조한 방 대표의 전략이 주효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치밀한 ‘SNS’ 전략이 글로벌 K팝스타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방 대표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내년 증시 상장을 목표로 최근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선임하는 등 기업공개(IPO) 준비가 한창이다.

2016년 연매출은 SM엔터테인먼트의 10분의 1수준인 355억 원에 불과했지만 방탄소년단 인기몰이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은 6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업이익 측면에서는 친정인 JYP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업계 3위에 올라설 것이라는 증권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방 대표가 이끄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2005년 작은 독립기획사로 시작했지만 이젠 증권가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류세나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