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교 칼럼] 역대급 폭염, 대(大)정전 발생 가능성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8.06 09:47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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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교 KISTEP 부연구위원

폭염(暴炎), 불볕더위. 요즘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열대야 속에서, 정전으로 잠 못 드는 사람들’은 여름철마다 반복되는 대표 뉴스다. 더 나아가 국지적 정전을 넘어 전체 전력시스템이 붕괴되는 대(大) 정전, 블랙아웃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수많은 언론에서도 정부의 설익은 탈(脫)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대정전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말 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을까? 실시간 전력 수급과 관련이 있는 것은 ‘공급예비율’이다. 공급예비율은 공급예비력을 최대수요로 나눠 백분율로 표기한다. 공급예비력은 설비용량에서 정비, 고장으로 활용할 수 없는 발전기 용량을 제외한 공급가능용량의 합을 의미하는 공급능력과 최대전력수요의 차이를 의미한다. 공급예비율은 연 중 변동 폭이 큰 특징을 가진다. 2018년 2월 16일에는 59.2%의 매우 높은 값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7월 24일에는 7.7%의 낮은 값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예비율 7%대로 하락, 전력수급 위기’ 또는 ‘예비율 10% 이상 이어야 수급이 안정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사실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다. 공급예비율이 실시간 전력수급의 여유 상태 정보를 제공하지만 10%면 충분하고, 그 미만이면 위태로운 상황이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최대전력수요가 낮을 때는 높게 나타나고 높을 때는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수의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예비율’은 실제로 얼마나 전력수급 상황이 위험한지를 정확하기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실시간 전력수급 유지의 안정성과 직접 관련이 있는 지표는 바로 ‘운영예비력’이다. 운영예비력은 통상적 수요 오차, 수요 예측 실패량, 발전기 등 설비 고장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 시간 내 확보와 이용이 가능한 공급용량을 의미한다. 세분하면 항상 변동하는 전력수요를 맞춰주는 주파수 조정예비력(150만kW)과 수요예측 오차와 발전기 고장에 대응하는 대기·대체예비력(150만kW)으로 구분된다. 즉, 전력수급 유지를 위해 300만kW 이상의 운영예비력을 갖춰야 한다. 운영예비력 하한은 300만kW로 설정돼 있는데 상한선은 규정돼 있지 않다는 특징을 지닌다. 요즘과 같은 폭염에는 운영예비력을 최대한 확보해 안전성에 보다 신경 쓰겠다는 운영의 원칙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과도한 운영예비력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적 시각도 있으나 냉방수요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높은 여름철 정전이 발생했을 때 잠재적 피해 비용이 크다는 부분을 고려한다면 과도한 운영 준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

최대전력이 9247.8만kW를 기록했던 지난 7월 24일의 상황을 살펴보자. 이때 공급예비력은 709.2만kW였다. 공급예비력이 500만kW 미만이 될 때는 수요감축요청, 시운전발전기 시험일정 조정으로 공급능력 추가 확보 등의 조치가 취해지는 ‘준비’ 경보가 발령된다. 이날은 ‘준비’ 단계까지 원전 2기의 용량에 준하는 209.2만kW의 여유가 있었다. 수급 위기는커녕 오히려 운영에 충분한 여유가 있었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전력수급 위기가 있었던 2011년 9월 15일은 사실 요즘과 같은 ‘폭염’ 발생하는 여름이 아니라 가을의 초입이었다. 당시 설비예비율이 4.1%로 낮았기 때문이 공급능력에 어려웠기도 하지만 운영발전계획에서 최대 수요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에 순환 정전이라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했다. 사실 대정전은 설비용량 보다는 단기 운영계획의 문제에 해당된다. 실시간 전력수급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루 전 수립되는 운영발전계획부터 알아야 한다. 운영발전계획에서는 익일 운영할 발전기 조합과 발전기별 시간별 발전 계획량을 결정한다. 즉, 공급 가능한 발전기 중에서 다음 날의 시간대별 예측 수요와 경제성과 운영예비력 필요량, 송전망 제약 조건 등을 고려해 발전기 운영계획을 결정한다.

일각에서 인용하는 2017년 대만의 대정전 역시 설비용량의 문제가 아닌 단기 운영의 문제에 해당한다. 시스템 설계의 문제로 불시에 4.38GW가 정지한 것인데, 우리나라의 전력시스템 규모를 고려해 환산하면 1GW 원자력 발전소 9기가 동시에 정지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전을 피할 수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 어디도 없다. 대만 전력시스템 구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 매우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우리에 대입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 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설비용량 자체가 충분하지 않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현재 설비용량은 과거보다 충분하다. 그리고 2011년 9월 15일 이후, 강화된 설비운영 규정과 오히려 여유있게 확보되고 있는 운영예비력을 고려하면 대정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운영예비력 외에도 다른 수단이 준비돼 있다. 수요자원거래(DR) 시장의 현재 규모는 420만kW로 원전 4기의 용량과 맞먹는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어찌 보면 요즘 같은 폭염은 여름철마다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폭염을 빌미 삼아 대규모 발전기를 추가로 건설하자는 논의는 적절하지 않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는 함께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 ‘에너지 전환’이다. 과거에는 ‘더 많은 에너지 사용을 통한 경제 성장’을 추구했다면 지금의 ‘에너지 전환’은 효율적이고 깨끗한 에너지 사용을 통한 지속 가능성의 유지를 목표한다. 전 세계 전력산업의 주요한 방향은 수요자원 활용과 에너지 효율 강화를 통해 가급적 대규모 발전 설비 건설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폭염으로 올라간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이용해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역사의 발전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다.

전지성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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