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에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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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일어난 지도 모르는 강원도 깊은 산골. 동막골이다. 온갖 사연을 갖고 있는 국군과 인민군, 연합군 낙오병(?)들이 동막골에 우연히 모여든다. 서로 이념을 달리하는 이들이다. ‘이데올로기의 극한 갈등’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오발 수류탄으로 양식을 저장했던 창고가 폭파된다. 다시 창고에 양식을 저장해야 하고 순박한 산골 주민들과 국군, 인민군 등이 감자밭에서 감자를 캔다. 이때 동막골 주민들이 일을 하고 있는 국군과 인민군을 넌지시 보고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거,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싹 다 괜찮은 것 같은 디요."
"형님이요! 어투 그래 사람 볼 줄을 몰라요?"
"그러니, 그...너무 내 말을 가슴에 이리 담아놓지 마라."
얼마 전 한 공기업 임원을 만난 적 있다. 최근 이 공기업은 감사보고서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올렸다. 회사 내부의 여러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는 보고서였다. 내부의 불미스러운 일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공기업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는 감사를 철저히 한다. 공기업이다 보니 외부 공개시스템에도 올린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긴 한데 이를 통해 보다 투명하고 건전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영화 ‘웰컴투동막골’의 한 장면처럼 ‘싹 다 괜찮은 사람 같다’고 말했던 이가 다른 이로부터 타박을 받자 곧바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우유부단하다’고 한다.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공기업뿐 아니라 규모가 큰 회사는 감사실이 있다. 조직 내부 비리나 문제점을 파악해 제재하는 역할이다. 내부적으론 숨기고 싶을 것이 많다. 공기업은 감사 보고서를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의무이다. 감사실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 회사는 투명하고 건전한 시스템이 갖춰질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겠다는 사람은 경쟁력이 있다. 문제점이 불거졌을 때 대처 능력도 뛰어날 것이다.
2014년 환경부를 출입한 적이 있다. 당시 환경부는 세종청사에 내려와 있었다. 약 1년 동안 출입기자로 있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환경부가 산업에 대한 진흥부처인지, 규제부처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환경부는 분명 규제부처이다. 개발과 산업진흥에 앞서 환경영향평가 등을 통해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고 때에 따라서는 원천 차단까지 할 수 있는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당시 환경부는 그렇지 못했다. 들러리에 불과했다고 평가한다면 너무 지나칠까.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때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개발과 진흥이 먼저였고 환경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에너지와 환경도 궁극적으로 갈등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는 개발이고 환경은 보호이기 때문이다. 개발과 보호라는 두 갈등관계를 풀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환경파트를 강화하는 게 답이 될 수 있다. 태양광이든 풍력이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주민 참여가 기본이고 필수이다. 땅을 파야 하고 바다를 건드려야 한다. 이를 위해 주민설명회, 공청회, 환경영향평가 등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이 과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오히려 갈등은 더 첨예화된다.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며 나갈 때 일은 쉽게 풀린다.
환경부 장관이 조만간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이가 장관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개발행위에 앞서 철저하게 환경평가를 하고, 이해 관계자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리더십은 대화를 이끌 것이고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환경부는 ‘진흥부처’가 아니라는 기본 명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들러리가 아니다. 우유부단해서도 안 된다. 환경부는 ‘규제부처’이다. 환경보호라는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개발과 보호라는 갈등관계는 자연스럽게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 무대로 올라갈 것이다. ‘이데올로기 극한 갈등’에 있었던 국군, 인민군, 연합군조차 동막골에서 함께 먹고, 같이 자고, 서로 대화하면서 끝내 서로를 보듬어 주는 관계로 바뀌었다. 제 역할을 다하는 환경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