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쳇바퀴 도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누가 설계했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1.29 23:05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탈원전정책을 선언한 정부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다시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전문가들은 정부의 의도를 의심했다. 이 정부가 과연 원자력 산업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의심에서 초래된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지연시킴으로써 원전내에 사용후핵연료를 임시저장할 수 있는 저장조가 가득 찰 때까지 미뤄 결국 원전을 가동할 수 없도록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그 의심을 지울 수 없도록 하는 여러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이전 정부에서 수립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적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문제를 명확히 파악하지 않고 풀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것이 명확하지 않은 채로 지금까지 진행이 되고 있다.

둘째, 가까스로 세운 명분은 지난 공론화에서 NGO의 참여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난 공론화에서도 NGO의 참여를 요구했지만 정부가 짜놓은 틀에 놀아나기 싫다는 이유로 그들은 참여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그럼 이번 공론화에는 NGO가 참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공론화위원 가운데 NGO는 없다. 그래서 뒤늦게 구색을 갖춘 것이 공론화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에 NGO 참여자를 넣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NGO가 참여한 셈이 되는 것인지 두고 볼 일이지만 모양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틀림없다.

셋째, 공론화의 필요에 충실한가? 방사성폐기물의 처리와 관련한 정부의 기본 방침에 이런 조항이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하에서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공론화의 근거가 되는 방침이다. 그렇다면 1년여를 넘게 추진한 현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충분한 논의과 국민적 공감대하에 추진되고 있는가? 아니올시다이다. 이전 정부의 공론화가 목적에 더욱 충실했다. 현재의 공론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이 좀 있는 사람도 내용파악이 되지 않는 것이 현재의 공론화이다.

넷째, 공론화가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정부가 하면 되는 일이다.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을 공론화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유독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하는 이유는 ‘권위’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명망가들이 논의한 결과를 정부가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면 결정사항에 대해 국민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법정위원회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과정이 신뢰를 줄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번 공론화는 지난번 공론화를 뒤엎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권위가 제대로 서겠는가? 언제든 뒤집어버릴 수 있는 공론화는 애초부터 신뢰를 깨버리고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섯째, 바보는 고민을 한다. 버트란드 러셀의 말이다. 원점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는 고민이 바로 바보들의 고민이다. 오늘과 내일 고민을 해도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계속 원점 주변에서 노는 것이다.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생각을 하면 진도가 나가고 다음 날은 진도가 좀 더 나간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바보들은 시간이 지나도 원점에서의 고민을 다시 하는 것이다. 지금 공론화의 절차는 이전 공론화와 다르지 않다. 사용후핵연료가 매년 얼마나 발생하고 저장조는 언제 포화가 되고 이것이 일차적으로 냉각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를 따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전 공론화에서 달라진 것만 고려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공론화위원을 물갈이 하고 같은 절차에 따라서 진행한다. 이것은 문제를 풀려는 시도일까 아니면 문제푸는 놀이를 하는 것일까?

여섯째, 그렇게 모셔온 재검토위원회의 NGO 참여자 11명이 지난 17일에 일괄사퇴를 하였다. 재검토위원회가 임시자문기구로 아무런 권한과 책임이 없으며 하는 일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곱째,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과 관련한 지역주민과의 논의방식은 월성부지의 맥스터 건설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가뜩이나 원안위가 심사를 한다고 3년을 넘는 시간을 보냈는데 공론화 과정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과 관련한 의심은 이제 확인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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