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수익 저울질하는 '빅오일'..."청정에너지 전환 속도내야"

신유미 기자 2020-10-26 08:13:47

[에너지경제신문 신유미 기자] 에너지전환이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거대 석유업체들이 이에 발맞춰 친환경 사업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석유 수요가 정점에 도달했고, 재생에너지가 앞으로 전 세계 전력원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 만큼 이에 대한 투자만이 석유업체들의 생존을 도모할 것이란 분석이다.

석유시대의 종말은 사실상 예견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석유 수요에 대한 비관론에 더욱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세계 에너지전망 보고서를 발표해 "석유 수요는 팬데믹에 따른 주요 경제 불확실성에 취약하다"고 설명하면서 2030년 이후 석유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5대 석유기업 중 하나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은 지난달 세계 석유 소비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가 종식돼도 각국의 저탄소 기조에 석유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석유 수요는 지난해에 정점을 찍었다는 설명이다.

이를 고려했을 때 석유업체들의 사업 재편이 필수격이지만 이들의 친환경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26일 석유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메이저 석유업체들은 지난 10년 동안 실제로 청정에너지 분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혀왔다"면서도 "그러나 이들이 가장 야심차게 내놓은 탄소중립 공약은 기껏해야 일관성이 없거나 반쪽자리"라고 지적했다.


◇ 석유 업체의 ‘야심찬 녹색 투자 계획’...실상은?


전문가들은 석유 메이저 업체들의 단기 지출 계획을 봤을 때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화석연료에 비해 계속 낮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에너지컨설팅 업체 리스타드 에너지는 석유 메이저 기업들이 향후 5년 동안 석유와 가스 사업에 1660억 달러(약 188조원)를 투자하는 반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규모는 고작 총 지출의 10% 미만인 180억 달러(약 20조원)에 불과한다고 꼬집었다. 석유업체들의 탄소배출 감축 수단으로 재생에너지가 아닌 천연가스의 비중을 늘린다는 분석이다.

오일프라이스닷컴 역시 글로벌 거대 석유업체들이 지난 2018년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입했던 금액이 총 예산의 1% 미만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유럽 최대 석유기업으로 꼽히는 로열더치셸의 경우 청정에너지 사업을 선두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평가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로열더치셸의 벤 반 뷰어든 최고경영자(CEO)는 2년 전 투자자들에게 회사가 앞으로 석유와 가스 업체가 아닌 에너지전환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로열더치셸은 2016년부터 올해까지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에 40억∼60억 달러(약 4조 5404억원∼6조 8106억원)를 투자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낮다고 올해 초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2016년부터 작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입된 금액은 약 30억 달러(약 3조 4059억원)로 추산됐지만 같은 기간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들어간 금액은 1200억 달러(약 136조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 빅오일 ‘갈팡질팡’하는 이유...현금 흐름 감소세·재생에너지 수익성 악화


이처럼 글로벌 석유업체들이 유독 재생에너지 사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와 관련,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매체는 우선 석유업체들의 현금 흐름이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어 "도박을 할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오일머니’와 직결된 국제유가는 2014년 폭락 이후 회복하는 듯 했으나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약세장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는 있는 돈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에 일부라도 투자하는 게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고 있는 한편, 천연가스 등 어떤 저탄소 에너지가 가장 매력적인 수익원인지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석유업체들이 그나마 투자를 해왔던 청정에너지 사업 또한 수익성 감소라는 악재에 직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8월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발표된 논문은 기술발전으로 풍력과 태양광의 비용이 획기적으로 감소했지만 이와 동시에 규모가 늘어날수록 전력판매 단가가 낮아져 에너지를 생산해도 수익이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재생에너지의 태생적인 한계점인 간헐성 때문이다. 햇빛과 바람은 전력시장과 관계없이 움직이는데 전력이 과잉생산돼도 이를 뒷받침하는 수요가 없으면 결국 수익이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발전그리드에 풍력과 태양광을 추가할 경우 발전량이 가장 많은 시간에 전기 가격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 캘리포니아의 전기 가격은 햇볕이 잘 드는 기간 가격이 제로(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이어 "재생에너지 시장이 초창기인 만큼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비중이 커지면 큰 우려로 다가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그럼에도 신속한 에너지전환 필요해"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관련된 문제가 결국 상쇄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이언스 다이렉트의 논문은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규모가 급증하는 것에 비해 탄소배출량 저감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 기타 에너지원에 비해 경제성이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탄소배출량 저감 비용은 이산화탄소 1톤을 감축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비용이다.

논문에 따르면 풍력발전의 규모가 현재에 비해 4배 이상인 417GW까지 확대돼도 탄소배출량 저감 비용은 1톤당 50달러에 불과하고 태양광 역시 530GW 수준에서 톤당 40달러로 추산됐다.

이와 함께 에너지저장장치(ESS) 상용화와 발전인프라 상호연결 등을 통해 수요가 높을 때 비축된 전력을 판매하거나 발전단가가 높은 타지역으로 송전해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코로나19 등으로) 올해 세계 석유와 가스 시장의 가치가 이미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석유업체들은 단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곳에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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