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으로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산업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지식 사이에는 어느정도의 간극이 존재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체에서는 사원을 대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필요한 지식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막대한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점차 대학이 기업체와 긴밀하게 협력해 산업 현장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살아있는”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한다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이러한 요구에 부합해 최근다양한 형태의 산학협력을 통한 교육이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짧은 시간 내에 기업체에서 당장 필요로하는 인재를 배출하는데에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업체에서 직접적으로 활용되지는 못할 수도 있는기초지식에 대한 교육은 곧 쓸데 없는 혹은 부실한 교육으로 치부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문제삼는 것은대학이 세상과 벽을 쌓고 진리탐구에 몰두하는 상아탑이 된다는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서의 기초교육에 대한 홀대가 문제가 되는 것은결국 대학교육을 마친 인재들이 업무를 수행할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크게 기초기술과 응용기술로 나눌 수 있다. 말그대로 기초기술이란 응용기술을 위한 기초를 그리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제품에 필요한 기초기술은 반도체 소재의 구조, 구조 특성에 따른 전기의 흐름에 대한 이해와 지식으로 볼 수 있으며, 응용기술이란 주어진 소재와 설계도로부터 최적의 조건으로 제품을 제조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반도체 제품을 좀 더 경쟁력있게 제조하기 위해서는 당장 필요한 것은 기초기술이 아니라 응용기술이다. 그러나 기업환경이 변하거나 새로운 제품이 필요할 때는 응용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기초기술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그 뿐만 아니라 기초기술은 배우기가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에 소홀하기 쉽다. 따라서 응용기술 중심의 교육을 통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의 주체자인 대학에서는 응용기술보다는 기초기술 교육에 더욱 충실하여야 한다고 판단된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기술 인력의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은 바람직하지만,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응용’만을 대학에 강요하는 분위기는 위험하다. 이는 산업체 연구인력이 현장에 투입된 후 얼마나 신속하게 현장 기술을 습득해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와 외부 환경변화에 따라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하느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엄연히 다른 성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전자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문제라면 응용기술 중심의 교육을 대학에서부터 실시하기로 요구하는 최근의 분위기를 마냥 비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업체의 경쟁력이 후자에 의해서 좌우된다면, 대학에서부터응용기술 중심의 교육을 실시해야한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은 그 기초가 얼마나 튼튼한가에서 나온다.
거듭말하지만 기초기술이 기초기술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그것이 얼마든지 변화무쌍한 형태로 새로운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원천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초기술을 교육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대학이기에 기업환경 변화의 주기가 짧아질수록 대학의 기초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학교육이 응용기술과 마냥 거리를 두어야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신속한 응용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기업체의 요구로 인해 기초기술에 대한 교육이 대학에서 소홀히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기업체의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살펴봐도 튼튼한 기초지식을 쌓은 인재가 대학에서 배출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훨씬 더 바람직한 방향임을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