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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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
SMR은 300메가와트(MW) 이하의 작은 원자로이다. 대형 상업용 원자로와 달리 원자로, 증기발생기, 펌프 등이 모두 일체로 하나의 통에 들어가도록 설계된다. 따라서 원자로 냉각재가 누설되는 등의 사고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또 공장에서 모듈형태로 제작되어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도록 설계함으로써 건설기간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킨다.
세계적으로 70여종의 SMR이 개발중이고 그 가운데 미국의 뉴스케일(NuScale)이 미국규제기관의 설계인증을 받아서 제일 앞서 나가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두산중공업도 참여하여 주요 기기를 공급하기로 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부터 ‘SMART’라는 SMR을 개발하여 2012년 이미 세계최초로 설계인증을 받았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건설을 염두에 두고 우리나라와 공동으로 원전상세설계(PPE)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기술력과 경험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 개발하고자 하는 혁신형 SMR(iSMR)은 SMART의 설계를 이어받고 있지 않은 새로운 원자로이다. 기존의 설계를 이어받지 않은 이유로부터 앞으로 개발될 iSMR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철저하게 시장을 분석하여야 한다. 국내에 SMR을 지을 타당성은 없어 보인다. 용량이 너무 작다. 게다가 우리 기술로 건설할 수 있는 대형 상업용 원자로가 있다. 따라서 국내건설을 한다면 제주도 정도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SMR은 세 가지 조건의 입지가 가능하다. 우선 고려하여야할 곳은 전력망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대형 원자로를 수용하기 어려운 곳이다. 또 탈석탄 정책에 따라서 석탄발전소가 퇴출된 곳이다. 석탄발전을 퇴출시키고 그 자리에 천연가스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의 측면에서 나아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력시장이 민영화된 곳이다. 기존원전의 경제성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민간발전회사의 입장에서 10년 이상을 건설에 투자하고 그 이후에야 수익이 발생하는 발전소는 건설하기 어렵다. 그것이 미국시장에서 신규원전 건설이 어려웠던 이유다.
우리나라는 위의 세 가지 요건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국내건설이 어려울 것이라 보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원자로를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하거나 담수를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 또한 대형원전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진입하고자 하는 시장의 수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춘 설계를 해야 한다.
둘째, 건설을 전제로 연구를 해야 한다.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한 완만한 연구가 아니다. 수출시장에 당장 들고나갈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이다. 설계된 대로 제작이 가능한지, 유지보수가 가능한지, 운영상의 편의성이 있는지 설계에 전부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경제성이 확보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시행착오의 여지가 없다.
셋째, 연구의 초반부터 규제자와 협력해야 한다. 규제자는 연구자나 사업자와는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연구초반에 협력하는 것은 규제차원의 독립성의 저해가 아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독립성에 대해 ‘독립적 판단’으로 정의하고 있다. 규제판단을 독립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지 출신성분이나 과거의 경력을 독립성의 저해요인으로 보고 있지 않다. 이는 원자력안전위원의 독립성을 판단하는데도 잘못된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
연구초반에 규제자의 안목이 개입되지 않고 심사단계에서 규제자가 개입한다면 현행규제기준을 충족하는 원전설계만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규제는 국민의 안전을 위하여 사업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이지 혁신을 방해하는 행위가 아니다. 선진국에서도 규제기관이 ‘인허가시현성 검토’를 수행하는 사례는 많다.
넷째, 시장이 충분히 넓다는 점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기후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은 필수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영국의 에너지전환정책에도 원전이 포함되어 있고 UN IPCC(기후변화 정부간패널)에서도 원전의 확대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기후변화대응에도 첨단원자력시설의 전개를 포함하고 있다. 개발중인 모든 SMR이 전부 투입되어도 부족한 상황이다. 중공업과 건설 등 관련산업이 모두 시작단계부터 협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