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석 제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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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석 제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
2018년 온실가스 총 배출량이 7억 2760만 톤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5위인 우리나라도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지난 5월 대통령 직속의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시켜 목표 달성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와 5월 P4G 서울정상회의에서 대통령이 공언한 것처럼 상향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장기적인 탄소중립 계획을 바탕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얼마전 탄소중립위원회에서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1안과 2안은 각각 2540만 톤과 1870만 톤의 온실가스를 순배출하며, 그마저도 미래가 불확실한 이산화탄소 포집 저장 및 활용(CCUS)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또한 3안의 경우 2020년 기준 6.6%인 재생에너지 발전을 2050년 70.8%까지 늘리고 산업부문 등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CCUS로 5,790만 톤 줄여서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한다는 계획인데, 부지 및 비용과 같은 재생에너지의 부작용은 거의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위원회는 "3개의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며, 의견 수렴을 거쳐 10월말 최종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당초 시나리오와 연계하기로 했던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발표에 담지 않았다. 환경운동연합은 "탄소중립 달성에 실패하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어불성설"이라는 논평을 내었으며, 경제계에서도 "제시된 기술이나 연료전환 등 실현 가능성은 불명확하다"는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어렵사리 마련된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소위 ‘죽도 밥도 아닌 계획’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모든 장관이 참여하며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포함한 97명이나 되는 위원들이 2개월간 활동하여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통령이 상향된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를 올해 중에 제출하겠다고 선언한 점과 위원회의 정식 출범 이전부터 정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던 것을 고려할 때, 계획을 실현할 힘이 되는 전략의 구체성과 실용성이 많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현재도 불가능하지만 향후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국제정세에 따라 악용될 우려가 큰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시나리오 포함된 것과 상용화가 불투명한 ‘무탄소 신전원’ 비중이 전력의 13.2~21.4%이나 된다는 것이다. 반면 세계적으로 우리 기술의 우수성이 검증된 원자력은 6.1~7.2%로 이번 시나리오가 사실상 탈원전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형국이다. 만약 오랫동안 노력하여 세계랭킹 1위가 된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에 출전하지 말거나 다른 종목에 나가라고 한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각종 위원회는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지속되지 못한 예도 있지만, 지구온난화 문제는 인류가 소멸하기 전까지 영원히 가져가야 할 숙제이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엄중한 인류사적 요구에 대해 ‘답정너’식의 접근도 당연히 지양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배우가 출연하더라도 시나리오가 빈약한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기 마련이며, 내용이 탄탄하지 못한 시나리오라면 과감하게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쓰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