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태 권리 지지자들이 텍사스 에든버러 시청 앞에서 ‘심장박동법’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AP/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손영수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텍사스 주 낙태금지법을 유효하다고 결정한 가운데, 미국 사회 곳곳에서는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당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낙태금지법이 여성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는 성명을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여성의 헌법적 (낙태) 권리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 법은 성폭행이나 근친상간도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 등 너무 극단적"이라며 "연방대법원 때문에 수백만의 여성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젠더정책위원회를 만든 이유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그런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위원회와 백악관 법률고문실에 법정부적 대응 착수를 지시한다"고 밝혔다.
또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차원에서 어떤 조처를 할 수 있는지, 법적 수단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텍사스 주의 낙태금지법은 일명 ‘심장 박동법’으로 불린다.
낙태 금지시기를 20주에서 태아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6주로 앞당기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임신 6주 차는 여성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워 사실상 낙태를 원천봉쇄하게 된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연방대법원은 전날 밤 이 법에 5대 4로 일단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6대 3으로 보수 우위 구도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번엔 진보 성향쪽으로 손을 들어줘 5대 4 결정이 나온 것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등 3명의 보수성향 대법관을 연방대법원에 투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바 있다.
민주당은 보수 진영의 낙태금지 시도에 곧바로 반격 태세에 나섰다.
민주당에 속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오는 20일 하원이 회기에 들어갈 때 주디 추 의원이 마련한 낙태권 보장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연방대법원이 한밤중 비겁하게 내린 결정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극악하고 반헌법적 공격"이라며 "텍사스 여성들에게 재앙을 가져온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는 낙태권 보장 법안이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분점한 상원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텍사스주에서는 주 경계를 넘어 원정 낙태에 나서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텍사스주와 인접한 다른 주 낙태 클리닉에는 텍사스 출신 여성들이 몰려들었다.
오클라호마와 캔자스주에서 낙태 클리닉을 운영하는 ‘트러스트 우먼’은 "텍사스주 낙태 금지법 시행 몇 주 전부터 환자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낙태 찬성단체를 이끄는 알렉시스 맥길 존슨은 "여성들이 낙태를 위해 수백만 마일을 여행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신 건강 문제 연구단체 구트마허 인스티튜트는 법 시행 이전 텍사스 여성이 낙태 클리닉까지의 평균 이동 거리가 약 20㎞이었으나 법 발효 이후 약 400㎞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낙태 금지법은 비단 텍사스 주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보수성향이 강한 각 주에서는 낙태 제한을 강화하는 입법을 너나없이 마련했다. 최종적으로는 1973년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앤 웨이드’ 판결의 번복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낙태권에 대한 입장이 보수와 진보를 가를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다. 낙태권을 둘러싼 논쟁은 내년 말 중간선거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혼란을 초래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됐다.
youngwater@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