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탈원전만 되뇌인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1.19 10:15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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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연말연시 국내외에서 녹색 분류체계가 논란이 되었다. 지난 연말 우리 환경부가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연초에는 유럽연합(EU)이 분류체계 초안을 발표했다. 우리 환경부는 원자력을 녹색 분류체계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EU는 원자력을 포함시킨 것이 달랐다. 이 때문에 우리 환경부가 탈원전 정책 연장 차원에서 원자력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EU 분류체계는 EU의 지속가능한 금융 확대를 목적으로 최초 고안되었지만,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판별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EU 분류체계는 2019년 12월 유럽의회와 이사회가 채택한 ‘EU 분류체계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규정은 ▲기후변화 완화 ▲기후변화 적응 등 6가지 환경목표와, ▲하나 이상의 환경목표 달성에 상당한 기여 ▲다른 환경목표에 중대한 피해를 주지 않을 것(Do Not Significant Harm, DNSH) 등의 4가지 판단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인정한다.

EU도 분류체계에 원자력 포함 여부를 두고 회원국간 이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10개국은 원자력 포함에 찬성했고, 독일 등 5개국은 반대했다. 이런 마찰 속에서도 가스발전을 분류체계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었던 독일과 전력 대부분을 원자력에 의존하는 프랑스의 타협, 작년 말 화석연료 가격 급등으로 인한 안정적 에너지 공급에 대한 우려 등이 반영돼 원자력이 포함되었다.

EU 위원회는 분류체계 초안에 원자력을 포함하기 전, DNSH 측면에서 원자력에 대한 심층평가를 유럽 공동연구센터(JRC)에 의뢰하였다. JRC 평가결과는 회원국 전문가들과 별도 위원회의 검토를 거쳤다. JRC 평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원자력은 기후변화 완화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 ▲심지층 처분은 사용후핵연료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생태계로부터 상당히 오랫동안 격리할 수 있는 안전하고 적절한 수단이며 현재 이에 필요한 기술이 가용하다, ▲현존 기술을 이용해 잠재적 환경 위험을 예방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 ▲유라톰 기준과 인허가 절차를 준수하면, 후행 핵연료 주기를 포함해 전 주기 동안 인간과 환경에 대한 원자력의 영향을 위험하지 않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EU 위원회가 JRC 평가결과 등을 토대로, 원자력 활동과 관련하여 ‘기후변화 완화에 상당한 기여’와 DNSH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주요 일반 기준을 제시했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와 해체를 위한 재원을 확보하고 그 재원이 원자력시설 수명 만료 시점에 가용함을 입증해야 한다, ▲극저준위를 포함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운영 중이어야 한다,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운영을 위한 구체적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EU 위원회가 앞의 일반조건과 함께 부가조건을 달아 녹색 분류체계에 포함한 원자력 활동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핵연료 주기 전반에 걸쳐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며, 핵변환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혁신적 전력생산 시설의 연구, 개발, 실증 및 배치다. 둘째는 난방이나 수소 생산을 위한 공정 열과 전기 생산 등을 위해, EU 회원국이 자국 법률에 따라 2045년까지 건설허가를 내준 신규 원자력시설의 건설 및 안전 운전이다. 셋째는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기간 연장을 위해, EU 회원국의 규제 당국이 자국 법률에 따라 2040년까지 승인한 기존 원자력시설의 개선이다.

EU가 녹색 분류체계 초안에 포함한 원자력 활동은, 신규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최초운영허가 만료 원전의 계속운전을 불허하는 우리나라 탈원전 정책과는 정반대다. 원자력이 청정 수소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원임에도, 탈원전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우리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탄소중립을 위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혁신형 소형원자로도 수출용으로만 고려하지, 국내 건설·운전은 생각조차 않고 있다.

여전히 논란이 있긴 하지만, EU 분류체계에 원자력이 최종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녹색기술 선정에 엄격한 EU조차도 원자력을 기후변화 완화에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제라도 우리 정부는 시대착오적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고, 원자력을 탄소중립 이행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성철환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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